|
(ㆍ북한 인권의 심각성)
ㆍ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의문.
ㆍ미국의 북한 인권법
ㆍ한국의 반응
ㆍ한국교회의 역할
(2)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총회의 결의문.
ⅰ. 북한 인권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민족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인권단체와 양심세력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현안이 되었다. 그들은 “180만 명을 굶겨 죽이고 58만 명의 자국민을 일상적인 고문과 강제노역으로 내모는 나라가 지금 이 지구상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의 수치”라고 말한다.
ⅱ.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북한의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 없어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를 통해 2003-2005년까지 3년 연속 북한인권결의문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북한이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자 국제사회는 2005.11, 사상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북한 인권상황 결의안’을 상정하여 통과시켰으며, 2006ㆍ 2007년에도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는 계속 불참 혹은 기권을 반복하다가 2006년 반기문의 유엔사무총장 출마로 인해 처음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입장을 바꿔 또 다시 기권을 택했다.
ⅲ. 2006년 초 미 시사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에는 1905.11.17과 2005. 11.17, 딱 100년간의 시차를 두고 이 두 날에 ‘한국의 국치’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1905.11.17은 일본이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체결의 날이다. 2005.11.17은 우리 정부가 UN의 대북 결의안 표결에 기권한 날이다. 칼럼은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핑계로 인권 결의안을 기권했는데, 그 기권은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1905년의 수치스러운 사건처럼 금방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조선/2007.11.24)
ⅲ. 북한 인권 상황은 이미 민족적 울타리를 넘어선 세계의 문제다. 북한 인권 문제를 남북관계의 특수 사정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유엔 총회 인권위원회의 ‘대북 인권결의안’ 채택에 처음으로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다.
(3) 미국의 북한 인권법
ⅰ. 미국 국무부는 2004년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을 수단ㆍ짐바브웨ㆍ이란ㆍ벨로루시ㆍ미얀마 등과 함께 인권탄압국가로 지목하고, 인권 유린 사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재판을 거치지 않은 처형ㆍ실종ㆍ임의구금ㆍ정치범수용 등을 감수한다. 감옥은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며 고문은 일상적이다. 임신한 여성 수감자를 강제로 낙태시키고, 신생아가 태어날 경우에는 감옥에서 출생 즉시 살해한다. 또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어부 등 486명을 납치했으며, 지난 2000년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던 김동식 목사를 납치했다. 북한 여성들이 납치범이나 가족에 의해 중국으로 팔려 가는 사례가 있으며, 중국어를 못하는 여성들은 강제노동이나 매춘을 하며 사실상 수감자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한다.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100달러 내외로 신부로 팔리어 가기도 한다. 또한 북한의 국내 언론은 철저한 검열을 받으며, 정부 공식노선을 벗어난 보도를 할 수 없다. 개인의 국제전화는 엄격하게 통제되며, 일반인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 인터넷 서비스는 평양의 고급호텔에서 외국인들에게만 제공된다. 또한 1994년 이후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공안에 검거돼 북송된 탈북자들의 경우 투옥ㆍ처형된다. 2004년에만 탈북자 1894명이 중국이나 제3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ⅱ. 미국 의회는 2004.10, 상ㆍ하원 모두 ‘북한인권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의 내용은 북한을 다룸에 있어서 인권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으며, 인도주의적 지원의 투명성을 높이고, 취약한 탈북자들을 도울 방안들을 활성화하며, 라디오방송의 확대와 직접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다가가며,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적 의무사항을 준수할 것과 유엔난민담당관실이 탈북 난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나아가 이 법은 북한 정권에도 인권상황을 개선하도록 인센티브(incentives)를 제공하고 있다.
ⅲ. 북한인권법을 의회에 제출한 짐 리치 의원은 제출 배경에 대해 “단지 어떤 정부(북한)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학대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시대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인권문제 중 하나가 북한인의 상황이다. 미국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돕고자 한다. 한마디로 이 법은 지금 학대받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이 법의 통과는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보편적 가치, 인류 보편의 법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 대해 세계 사회가 주목하고, 그들을 돕는 데 공동의 관심을 갖길 원한다. 물론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면 당사자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인권의 그늘에 빛을 비추길 거부한다면 그 그늘은 갈수록 더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이 법이 한반도 긴장을 촉발시킬 것이며, 남북의 화해 협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ⅳ. 미국 국무부는 2009.2,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도 “북한은 사법제도 밖에서의 살해, 실종, 자의적 구금, 고문, 정치범에 관한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탈북자와 북한 방문자, 국제기구 관계자 등의 증언 등을 통해 구체적 사례들을 적시했다.
(4) 한국의 반응
ㆍ관망론
ㆍ적극적 참여론
① 관망론
a. 한국의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양심단체들.
(a) 외면 내지 무관심.
ⅰ. 국내 인권이든 세계 인권이든 인권문제만 나오면 열심을 내던 사람들이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고의적으로 못 본 척하고 무관심하게 대응한다.
ⅱ. 그들의 변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사실 확인이 안 되지 않느냐?”
“인권을 가지고 북한 정권을 흔들려고 하느냐?”
“북한 인권 문제는 사실이 과장됐다.”
“중도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문화적 특수성에 따른 예방범죄 차원의 고유 행형(行刑)절차 성격이 있다.”
“북한은 그래도 남한과 다른 자주적ㆍ민족주의적 국가다.”
“남한에도 인권문제가 심각하므로 북한 인권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북한인권 실태는 보수우파들에 의해 과장됐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라 직접 확인하지 않고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국내의 1만 2천 여 탈북자들은 믿을 수 없다.”
“반북대결주의다.”
“당장 압박을 가하는 것보다 점진적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집착은 과한 것이며 그에 대한 북한의 반발은 당연하다.” “‘차이’에 대한 존중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북한에도 납득될 수 있는 접근을….”
“북한 인권문제는 체제에서 불거진 문제도 있지만, 그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더 많다고 할 때, 그 체제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인권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북한을 자본주의나 남한의 기준이 아닌 북한의 잣대로 북한 인권문제를 검토하자.(내재적 접근론)”
“북한 인권을 위해 북한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엔 재앙이다.”
(b) 북한 정권만 눈에 보이고 북한 동포는 안중에 없다.
ⅰ. 이들은 북한의 범죄적 상황을 감싸주며 묵인하는 것이 결국 남북교류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언젠가 민족통일을 자연적으로 이루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북한 동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ⅱ. 이들은 민족의 역사적인 동질성만 강조할 뿐이며 민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인류사회의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같이 살겠다”는 공감대는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의 사고는 북한에 대한 ‘동족애’라는 구호에 휘말려 모든 이성적ㆍ양심적 판단을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동족애인가?
ⅲ. 미국의 조지 부시 전(前)대통령은 강철환의 책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의 체험 수기를 읽고 “북한 인권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왜 한국민들은 김정일의 인권 유린에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한다.
b. 민족을 가장 크게 외치는 남한의 김ㆍ노ㆍ문 등의 진보정권들.
(a)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들.
ⅰ. “한반도 평화가 더 중요하다.”
ⅱ. “우리가 북한 인권을 거론해 봐야 실익도 없이 남북관계만 해친다. 장기적 견지에서 볼 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접어두는 것이, 그래서 북한정권을 유지시켜 개혁으로 인도하는 것이 대북문제를 풀고 북한 인권문제도 해결하는 길이다. 우리가 북한을 지원해 살기가 나아지면 인권도 좋아질 것이다.”
ⅲ. “인권의 기본적 이념은 생존권 보장이다. 생존권 없는 인권은 없다. 인권은 먹고사는 부분의 해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에 더 많은 식량 의약품 비료를 보내는 것이 급선무다.”
ⅳ. “북한 체제와 인권을 놓고 볼 때 무엇이 더 우선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ⅴ. “북한 인권을 논할 때 ‘한반도 평화권’이라는 인권을 우선순위에 놓고 얘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유엔마저 북한의 인권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인권마저도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인권은 어느 개인, 집단, 국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ⅵ. 위의 논리들을 정리하면 “첫째, 인권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지만, 둘째,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하는 만큼, 셋째, 남북 간 긴장완화를 통해 북한 인권의 점진적 실질적 개선을 도모하면서, 넷째,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b) 문제점.
ⅰ. 북한 동포의 인권문제에 침묵함으로 북한 체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정책이 올바른 판단인가?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면 대북 교섭력이 커지는가? 무조건 퍼주면서 북한 권력에 협조하는 것이 보편타당성 있는 태도인가? 닭장 속에서 양육되는 닭처럼 온갖 비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먹을거리만 제공하는 것이 인권을 위한 것인가? 만약 우리가 인권을 거론하면 북한에 대한 경제 및 식량지원의 통로가 막히게 되며, 결국 북한 주민의 생존권은 더욱 악화될 것인가? 만약 우리가 인권을 거론하면 남북한 관계가 깨지고 전쟁이 발발하므로, 침묵을 통한 평화 유지정책이 최선이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한반도 평화는 한ㆍ미안보동맹 보다 북한의 선의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반민주적ㆍ반통일적 세력인 북한 권력과 함께 ‘민족끼리’를 외치며 종북탈미(從北脫美)의 노선을 지향하는 것을 자주외교라 할 수 있는가? 과연 먼저 경제난이 풀리면 북한의 인권은 저절로 나아질 것인가?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에 재앙이 되는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며, 검증되지도 않은 가상일뿐이라고 비판한다.
ⅱ. 2009.4.20, 일부 좌파 단체들은 처음으로 북한 인권보고서를 만들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제출했다. 그러나 보고서 내용이 구체성을 잃고 추상적이라 북한 인권의 현황을 알 수가 없다. 예컨대 “북한 사회의 원리를 고려하더라도 인권 분야에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신문 2008.1.18자에 보도된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에서 인권문제는 애당초 제기조차 될 수 없다'는 북한 정부 인식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북한 형법 61조 반국가선전, 67조 민족반역죄 등 정치적 범죄에 대한 규정이 너무 광범위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북한 정부가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사형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북한 정부가 구금시설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ⅲ. 좌파 단체들이 그동안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한마디라도 꺼내면 그것을 반(反)민족적 행위라도 되는 양 비난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문제점 지적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서론에서 “남한 내 북한 인권 단체들의 활동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으며, 남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정당화 또는 은폐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된다”고 밝혔다. 말을 거꾸로 하고 있다. 한국의 좌파들은 그 동안 북한의 처참한 인권 상황이 거론될 때마다 대한민국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덮으려 해왔다.(조선ㆍ2009.4.23)
② 적극적 참여론
ⅰ. 한반도와 7000만 한국 민족의 문제 가운데 가장 처절하고 중대한 문제는 인간으로서 한계를 벗어난 동물적 상황에서 생존을 강요받는 북한 동포의 문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이제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유엔 총회 차원으로 넘어갔다. 만약 북한 인권 문제조차 순전히 남의 주도로 해결된다면 우리는 무슨 낯으로 후손들을 대할 것인가.
ⅱ.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북한 동포의 삶의 개선을 위해, 곧,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정상적 삶을 가능토록 하기 위해 북한체제를 보다 민주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정을 뒷받침할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으로 촉구해서 그 방향으로 가면 지원하되, 그렇지 않으면 지원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인권 문제 제기는 남북한 모두에 유익이 된다.
ㆍ북한의 민주화가 북한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ㆍ북한의 민주화는 남북통일에 도움이 된다.
ㆍ인권을 외면하는 정책은 정당화될 수 없다.
ㆍ북한 인권문제는 양심과 자존심의 문제이다.
ㆍ북한 인권 외면은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다.
ㆍ북한 인권 외면정책은 한반도 평화와 무관하다.
ㆍ‘북 붕괴=한국에 재앙’은 미신이다.
a. 북한 민주화는 북한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ⅰ.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 교수(노벨경제학상)는 “민주적인 정부에서는 심각한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과의 무조건적인 화해・협력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문제 등을 꾸준히 제기해 정권의 성격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진정으로 북한을 돕는 길은 북한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함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권 문제 제기는 결코 북한 붕괴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유보가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거짓 약속을 하게 만들고, 또한 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목조르기 상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권문제를 외면한 채 “퍼주기 정책이야말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길”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환상이며, 남ㆍ북한 모두에게 시행착오의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ⅱ. 과거 서방국가들은 소련 및 공산권 국가들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이들 국가의 인권개선을 요구했다(1975년 헬싱키 협정 등). 소련의 인권운동가 사하로프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솔제니친을 시베리아에서 구출해 내고 그들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준 것도 미국의 인권 압력이었다. 100년 이상 내려온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은 미국 및 서방국가들이 인종차별정책에 압박을 가한지 4년 만인 1993년에 최후를 맞았다. 김대중 전(前)대통령은 1970년대에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 정부를 향해 “인권을 탄압하는 유신체제를 지원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으며,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한ㆍ미 정상회담과 김 전(前)대통령의 사면을 연계해 압력을 가한 덕분이었다고 한다.
b. 북한 민주화는 남북통일에 도움이 된다.
ⅰ. 인권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에 동일선상에 놓여 있지, 결코 그 문제로 인해 통일문제가 손상될 이유가 없다. 혹자는 큰 틀에서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북한 인권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고 하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듣기는 좋지만 사실은 허구이며, 가식이고, 대중영합의 포퓰리즘이고,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지나지 않는다.
ⅱ. 과거 남한 진보정권의 정책 목표는 ‘평화통일’이었고, 그 수단은 ‘햇볕정책’이었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을 개발해도 ‘일방적 퍼주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또한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북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예컨대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그러면 전쟁 난다”, 상호주의를 강조하면 “그러면 전쟁난다”, 납북자ㆍ국군포로 석방을 거론하면 “그러면 전쟁난다”, 핵 폐기와 개혁개방을 촉구하면 “그러면 전쟁난다”는 논리로 국민을 겁주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 공고화’와 ‘분단의 고착화’와 ‘반통일’에 기여했고, 북한 동포의 시름과 고통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변화는커녕 남남갈등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ⅲ. 따라서 우리는 북한 정권에 대해 적어도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인권은 영토, 민족, 주권, 이념,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하는 개념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의 특수성, 점진적 개선, 남북관계 악영향 등의 이유로 그 해결을 결코 미룰 수 없다. 올바른 민주주의는 ‘타협의 원칙’을 존중하지만 ‘원칙의 타협’은 거부한다. 우리는 인권 문제가 남북관계에 장애가 된다는 편견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깨져버리는 평화라면, 그것은 추구할 가치도 없는 위장 평화다.
c. 인권을 외면하는 정책은 정당화될 수 없다.
ⅰ. 남북관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 주민의 삶이다. 그것이 남북관계의 목적이다. 통일은 그 다음이다. 북한 주민의 삶의 조건과 인권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 남북대화는 남북 지배층이 서로 이해타산을 맞추는 정치거래일 뿐이다. 북한 주민의 고통을 접어두고, 남북한 대표들이 모여 ‘냉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노래한다면, 그것은 동포의 고통 위에 구축된 ‘사이비 평화체제’일 뿐이다. 과연 그것이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것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북한 주민들은 인권을 탄압하는 김정은 체제를 지원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오히려 크게 실망할 지도 모른다.
ⅱ. 그러므로 북한의 세습독재정권에 대한 침묵과 무조건적인 포용은 결코 ‘우리 민족끼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한 ‘수령 독재와의 공조’이다. 그것을 남한의 진보 정권은 ‘민족 공조’라고 불렀고, 북한 정권은 ‘우리 민족끼리’라고 불렀다. 결국 북한 동포를 살리는 올바른 민족통일은 더욱 멀어져갈 뿐이다.
ⅲ. 북한 지도층은 사라질 수 있으나 북한 주민은 비록 인권이 유린되어도 없어지지 않고 오래 남을 것이다. 인권에는 좌파도 우파도 없다. ‘도덕성’을 잃은 대북정책은 점차 생명력을 잃어가게 마련이고,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생존권 및 자유 보장을 선포하는 인권’이라는 대명제를 회피하는 어떠한 정책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d. 북한 인권문제는 양심과 자존심의 문제이다.
ⅰ. 북한 인권문제는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양심의 문제이고 민족 자존심의 문제이다. 북한동포의 고통은 한없이 깊어지는 데도 그 참상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우리의 양심과 자존심을 포기하는 정신적 자살 행위이다. 정치적ㆍ사회적 권리는 고사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비참하게 살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북한 당국에게 생존조건의 개선 노력을 분명하게 말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제지원을 보장하면 될 것이다. 그것이 동족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요, 양심이다.
ⅱ. 탈북자 망명을 돕는 독일인 의사 폴러첸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해 침묵한 독일의 역사를 안다. 나는 내 눈으로 북한의 참상을 보았다. 그건 자연 재앙이 아니라 한 독재자가 만든(man-made) 것이다.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또 인도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의사로서 굶어 죽어 가는 북한 주민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러나 실상을 알고도 방관한다면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ⅲ. 대표적 아우슈비츠 수기 ‘나이트(Night)’를 쓴 엘리 위젤은 자기 눈앞에서 아버지가 맞아 죽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죽었다. 그는 후에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학살이 진행될 때 많은 유럽인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학살은 나치만의 책임이 아니다. 침묵은 학살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인간의 목숨과 존엄성이 위협 받을 때는 국경을 초월해 나서야 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위첼은 2006.10, 하벨 전 체코 대통령과 본데빅 전 노르웨이 총리와 함께 북한 인권 보고서를 내고, 유엔에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을 요구했다.
ⅳ. 인권 유린에 대한 시비는 당연히 할 소리를 하는 것이기에 남북관계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 북한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정책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의 근본 가치에 대한 배반일 뿐 아니라 북한정권으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엄청난 거짓말과 범죄를 계속 저지르게 방조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만수대의사당 방명록에다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고 태연하게 썼다. 수백만 명이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 목숨만 이어가는 그곳을 향해.
e. 북한 인권 외면은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다.
ⅰ. 대한민국은 자유 국가이다. 자유는 노예 상태에 대한 분노와 전투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북쪽에 수십만 명의 동족을 노예처럼 가두고 부리는 수용소가 여러 군데 있는데 “그것 없애지 못할까”라고 말 한 마디 못하는 국가라면 자유인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면 소극적일수록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추락하고 그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ⅱ.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는 과거 노(盧)정부의 대북 태도가 북한 인권 신장에 장애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자칫 국제사회로부터 민족의 인권문제에 등을 돌린 인권 냉담국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도덕적이지 못하고, 정직성에 문제가 있는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고립시키고 더 큰 손실을 초래케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대의에 따라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편에 선다면, 우리는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국제 공조 속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f. 북한 인권 외면은 한반도 평화와 무관하다.
ⅰ.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랑하던 햇볕정책은 그 의도한 바대로 북한을 개방시키고 통일을 앞당겼던가? 북한 퍼주기를 통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개방은커녕 더욱 문을 잠근 채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도와준 꼴이 되었다. 이제 북한이 핵을 가짐으로써 그만큼 통일의 길은 멀어졌다.
ⅱ. 북한은 개혁 개방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인 채 남한을 봉으로 삼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툭 하면 “전쟁난다”고 협박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해서 “같은 민족에게 쏘겠느냐?”는 식의 무사태평한 풍조가 조성되고 있으니 안보의식도 마비되었다.
ⅲ. 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이면서 동시에 대화의 상대이다. 이 같은 이중성 때문에 우리의 대북정책이 딜레마에 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 외면정책이 우리에게 평화를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온 기본 축은 ‘한ㆍ미 안보동맹’이었으며, ‘북한의 선의’가 아니었다. 평화란 남이 우리를 넘보지 못할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갖춰 놓고서 그 토대 위에서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상호교환행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권 교체되면 전쟁으로 갈 수도 있다”는 발언은 북한의 김정일의 엄포를 대변하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
ⅳ. 만약 북한 인권 외면(外面)정책의 목적이 우리의 안보를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기 위한 ‘북한 눈치 보기’와 ‘북한 비위 맞추기’의 유화정책이라면, 히틀러에 대한 당시 주변국들의 유화정책이 실패하고 끝내 2차 대전을 불러왔던 사례를 연상케 한다. 프랑스의 리굴로 북(北)인권위원장은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 원칙을 버리고 전체주의 국가와 대화에 나서면 전체주의 국가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고통 받는 형제들을 기억하고 인권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의 일부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편 유엔 헌장은 ‘인권 존중이 평화’라고 선언한다.
g. ‘북 붕괴=한국에 재앙’은 미신이다.
ⅰ.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엔 재앙이다”는 말을 했다. 그 후부터 “북한이 붕괴하면 하루는 신나겠지만 다음날부터는 불행이 시작될 것”, “북한의 붕괴보다는 핵을 보유한 북한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식의 주장들이 뒤를 이었다. 그 이유는 서독보다 경제력이 약한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ⅱ.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국민소득은 서독의 3분의 1이었다. 이런 격차에서의 통일도 나중에 ‘통일 대재앙’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시절 몰라서 당했지 지금이라면 통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독일은 통일 후 매년 GDP의 5%를 동독 지역에 쓰고 있고, 경제성장률 하락과 실업률 상승을 겪었다. 세금증가에 따른 국민 불만이 커지고 동ㆍ서독 간 계층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ⅲ. 그러나 다른 한편 서독은 동독의 붕괴로 지게 된 부담의 몇 천억 배도 넘을 이익을 얻었다. 정치ㆍ외교ㆍ안보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역사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동독의 국토와 인구가 가진 가치만 따져도 서독이 진 부담과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금 다시 독일 통일 이전으로 돌아가서 동독의 붕괴를 서독의 지원으로 막고 통일을 멀리 미루자고 한다면 찬성할 서독의 지도자가 과연 있겠는가.
ⅳ. 지금 북한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우리의 역량은 서독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경제수준은 과거 동독의 그것에 크게 못 미친다. 우리는 우리의 경제 규모에 맞추어서 북한의 붕괴를 감당하면 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적 부담은 총액이 아니라 부담 속도의 문제이므로, 우리 예산의 작은 부분만으로 붕괴된 북한의 상황 관리는 가능하다고 예측한다. 대량 탈북에 의한 난민도 통제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북한 붕괴는 국가 생존의 보장, 북한 주민에 대한 구원, 동북아 평화 등 숙원을 일거에 해결하며, 북한 붕괴를 통한 통일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것이며, 북한 붕괴가 재앙이라는 것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실 북한의 붕괴가 재앙이 아니라, 붕괴해버린 북한 땅에 중국이 들어오는 것을 못 막으면 그것이 재앙이 될 것이다.(조선/양상훈)
ⅴ. 물론 우리가 북한 붕괴를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몰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는 언젠가 폭포를 만날 수밖에 없는 길로 흐르고 있다. 그 폭포를 재앙으로 만드느냐, 민족의 복음으로 만드느냐는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우리는 북한의 정권과 민중을 분리해서 도울 필요가 있다. 돕는 방법에 대해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ⅵ. 매년 12.10은 ‘인권의 날’이다. 1948.12.10,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인권의 날’(57회)은 북한인권 국제대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서울 선언’을 채택했다. “1. 탈북자에 대한 보복은 중단되어야 한다. 2. 정치범 수용소는 해체되어야 한다. 3. 납북자는 생사 확인과 송환이 이뤄져야 한다. 4. 조직적 인권 유린이 중단돼야 한다. 5. 식량ㆍ의약품은 어린이에 최우선 배분돼야 한다. 6.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촉구한다. 7. 국제사회가 북한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 것을 호소한다. 8.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간다.”
ⅶ. 대회 주제가인 ‘유리병’의 노랫말은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의 ‘광인일기’ 서문에서 따왔다. “커다란 유리병 속에 갇힌 사람들 있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곳에 잠든 사람들/ 영혼의 생명을 빼앗긴 슬픔 사람들 있죠/ 머지않아 그들은 숨이 막혀 죽어 가겠죠/ 어떤 사람들은 말하죠,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 유리병/ 안의 그를 깨우는 건 고통만 줄 뿐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깰 수 없는 유리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어/ 한 두 사람이라도 눈을 뜬 사람 있다면/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 갇힌 그들을 꺼내야 해요/ 눈물 속의 빛나는 희망/ 그 자유를 위해.”
첫댓글 오메~
"북한 인권"에 대해 이렇게 자세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