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를 튀기다/조혜경
휘리릭. 낡은 수레바퀴가 구르듯 호루라기가 울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메마른(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메마른) 군상들을 둘러보았다. 간이의자에 나란히 앉았던 노인들은 미동도 없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뻥 한다니까. 아, 뻥이요. 엉거주춤 섰던 나는 얼른 집게손가락을 양쪽 귀에 밀어 넣었다. 순간, 세상이 멍해졌다. 동시에,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솟아올랐다. 폭발의 진동이 심장을 울렸다. 검은 철망 속에서 쌀알과 말린 가래떡이 뭉게구름처럼 혼비백산 흩어졌다.
둘러앉은 표정들이 환해졌다. 볕 쬐는 닭처럼 꾸벅이던 노인들의 허리도 젖혀졌다. 환한 수다가 트럭 주변에 자글거렸다. 노파들은 그것 보라는 둥, 생초보인 나를 쳐다보며 순하게 웃었다. 얼마 만인가? 주름살 속의 맑디맑은 눈망울을 보았던 때가. 어린 손녀를 위해 기꺼이 마른 품을 내어주던 할머니의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빈터의 마술사였다. 트럭 난간을 다 내린 채, 구겨진 짐칸 위에 기계를 놓고 공연을 했다. 한 보시기를 한 자루로 만들었다. 폭탄 같은 까만 기계를 둘러업고 그가 마을에 오는 날이면, ‘우리’ 집 옆으로 오라고 서로 잡아끌었다. 시끄러워 미안하다고 떠주는 한 바가지 뻥튀기는 그날 밤 집집이 맛좋은 수다를 불러왔다. 동네 아이들은 열 일 제치고 마술사의 곁을 맴돌았다. 뻥이요 소리에, 갑자기 불 켜진 한밤중의 바퀴벌레들처럼 날쌔게 담 뒤로 숨었다.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튀어나와 흩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고 각축전을 폈다. 메뚜기처럼 뛰느라 한나절이 어떻게 지나는 줄 몰랐다. 말린 곡식이 사카린 가루를 업고 달콤 바삭한 과자로 태어났다. 커다란 폭탄처럼 생긴 새까만 기계가 마을에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종일 행복했다. 땀에 전 놀이에 하루해가 짧았다.
이제 새댁 거여. 멍하니 옛 기억에 사로 잡혀있다가, 여주인의 생색에 정신이 들었다. 자기 것 할 차례라니까. 금방 혀. 그녀는 튀긴 옥수수를 봉지에 쏟아 쥐여주며, 품삯을 받았다. 사이사이, 기다리는 손님들과 대화도 주고받았다. 그녀의 돈주머니에는 벌써 꼬깃꼬깃한 쌈짓돈이 쌓였다. 거스름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열 때마다 색색의 돈들은 구겨진 몸을 비틀며 서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튀겨주세요. 걱정 마슈. 이곳에서 장사한 지 30년이 다 돼 가. 다른 데는 파리 날려도 여긴 줄 섰자녀. 다들 이리로 오지 다른 데로 안 가여. 맞아요 맞아. 다들 이때다며 걸쭉한 사투리에 훈수를 두었다. 한 시간 너메 기다려도 요기로 와. 시간을 채울 말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뻥튀기는 가난한 시절, 풍요의 상징이었다. 쉼 없이 먹거리를 챙겨야 했던 어머니에게는 가성비 좋은 간식거리였다.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곡식들이 모여들었다. 누룽지만이 아니었다. 색색의 바구니에는 채소 말린 것이나 약재용 뿌리, 차를 끓이기 위한 둥굴레, 보리 등도 차례를 기다렸다. 볶은 가지도 좋아. 가지로 뭐해요? 반찬 해도 되고 물도 끓여 먹고. 그때 또 호루라기가 울었다. 벌써? 두 번째 기계가 행복한 반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손수레를 앞에 두고 양말을 팔던 노점상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배운 대로 빨리 귀를 막으라는 듯이 눈짓을 했다. 아, 나? 괜찮여. 하두 많이 들어서 이제 터지는 소리가 안 나면 이상허지.
동그라미 파스 장수도 노래에 맞춰 발을 굴리다가 혀 꼬인 말투로 웃음을 흘린다. 파스를 이마에 철커덕 붙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다. 무슨 파스를 이마에 붙여요?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빈정거렸다. 뻥 때문에 놀라서 머리 아플 때 좋아유. 한번 붙여 볼 텨유?
뻥이요, 뻥. 마술사의 아내는 펑 터진 과자를 툴툴 턴 후 한 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얇은 비닐 주머니를 탁탁 흩뿌렸다. 그물망 속 먹거리를 쏟은 후 비닐봉지가 흩어지지 않도록 끝을 돌돌 두 바퀴 돌려 철사 끈으로 묶었다. 검은 비닐에 한 번 더 넣었다. 카드? 안돼. 우린 현찰 치기여. 내미는 현금을 손바닥으로 좍 펴서 돈주머니에 넣었다. 푸짐한 기쁨과 맛있는 장날을 주고받았다. 손바닥 두 개 만한 바구니 하나에, 되돌아온 것은 대형 주머니에 가득한 과자였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맛깔스러운 수다도 한 아름 딸려 보내고, 말 없는 마술사에게 다음 바구니를 넘겼다.
농촌 아낙들의 하루 시작은 새벽이었다. 일찍 온다고 온 나였지만, 이미 의자는 꽉 차 있었다. 튀길 것을 맡겨두고, 장터를 두 바퀴나 돌았다. 사라져가는 시골 오일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껀 언제 해 주는 겨? 도시에 갈 일이 있다는 아줌마의 재촉에 마술사의 아내는 독재자 행세를 했다. 이 새댁 차례여. 다 혀줄 테니 걱정 말어. 금방이야. 항의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마술사의 아내는 나에게 또 시선을 돌렸다. 이제 들어가아. 쌀 섞인 누룽지가 까만 쇳덩어리 안에 부어졌다. 서두르는 나와는 달리 바쁜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순서를 양보하고 싶은 여유들이 서성거렸다.
장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트럭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무엇일까?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먹거리가 튀겨져도 빈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굳게 닫혔던 입이 모처럼 말을 하고, 천장만 바라보던 눈이 끔뻑였다. 허리가 편해 보였다. 두 시간을 걸어온 다리도 편히 쉬었다. 이어지는 수다로 묵은 귀지가 떨어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알차게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젖은 눈가에 걸렸던 외로움을 연신 소매로 찍어냈다.
뻥튀기 옆 의자는 수다 마을의 출입구였다. 그 세상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의 달콤한 삶도 뻥뻥 튀겨서 큰 봉지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잊을만하면 ‘뻥이요’를 외치는 관객들과 동그라미 의자 몇 개면 충분했다. 비닐봉지에 담긴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 자의 여유였다. 가슴속 울분을 뱉는 듯한 함성과 하얀 안개 같은 수증기가 채워주는 장터. 그곳에서 설렘과 따뜻함으로 지친 마음을 달구면, 고달팠던 어제는 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애써 붙잡은 적막도 또 흩어졌다. 한 가닥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다음 장날에는 무엇을 튀길까? 나는 벌써, 말린 찬거리가 빼곡한 창고를 뒤지고 있었다.
첫댓글 말 풍년을 봅니다
이렇게 사물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먼 타국에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열정적인 나날을 보내는 풋볼 님도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셔요.
수다고 튀기고 인생도 튀겨서 풍성한 노후를 만들고 싶어요. 장날의 소소함이 재미있게 잘 드러난 글이 참 정겹습니다.
외로움 사람들, 수다가 고픈 사람들이 많았어요^^
초록별여행자님, 스트레스는 뻥튀기로 다 터뜨려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어울려 사는 삶이 한 편 콩트입니다.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극사실화 같습니다.
듬직한 격려의 말씀들, 감사합니다. 시골에 자주 가다 보니,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 많이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