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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선택과 결과
룻기 1:1~5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선택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선택의 기회를 주신 것은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결과는 수많은 선택의 관문을 통하여 이뤄졌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선택하여 그 뜻이 성취한 사람은 지난날의 모든 선택이 잘 되었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내 뜻대로 선택하여 성취된 것이 과연 잘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잠 24: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든 것의 완성이라면 내 뜻대로 성취하는 것이 성공이요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원한 세계 곧 하나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 합당한 영혼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은혜요 축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총명으로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 이루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사사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고 사울이 왕이 될 때까지 350년 기간을 말합니다. 그때를 가리켜서 영적 혼란기 혹은 영적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당시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지도자가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은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으면 세상의 것에 매이게 됩니다. 세상의 것이 커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잘못된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고 말았습니다.
첫째는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1절에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목적은 가나안 거주민에 대한 심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들로 극심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자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그들도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때 베들레헴에 흉년이 임한 것입니다. 그 흉년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영적으로 조금만이라도 눈을 뜨고 보면 하나님의 진노이고 징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합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자에 대한 표현에 대하여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떻게 행위를 하든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빛은 세상에 밝히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진리는 광명천지에 온전하게 드러나 있지만 감춰져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의 마음에 담긴 죄로 인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어둠에 갇히게 됩니다. 절망하고 자기의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도무지 나의 힘으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커다란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빛을 발견하면 그 빛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크게 느껴집니다. 스쳐 지나갔던 모든 것들이 새삼스레 가치 있고 돋보여집니다.
저는 50대 초반에 탈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수술은 먹을 것 다 먹을 수 있었기에 세끼의 식사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먹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배를 꿰맨 자리가 아물기까지 대소변을 보지 못하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때는 대소변을 제대로 보는 것이 행복인 줄 몰랐습니다.
그 후로는 오늘까지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시원하게 볼 때마다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 때의 고통이 없으면 이렇게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의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견뎌라. 네 안에서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까지 견디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기도를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고백해보십시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사랑임이 와 닿을 때까지 기도하여 보십시오!
흉년이라는 징계가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 생각이 들어오고 이를 피하려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은 누구입니까? 그는 신앙의 길을 걸었던 갈렙의 11대 후손입니다. 그들이 거주하였던 베들레헴은 그의 선조 갈렙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얻은 땅이고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기업으로 얻은 땅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땅은 장차 메시야가 태어나리라고 예언이 담겨 있는 약속의 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라고 하면 당연히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지난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원리를 까맣게 잊어버렸기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서는 홍수 대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탄 방주에서 뭍으로 나오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대조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교차하면서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응용하자면 추위는 더위를 맞기 위한 과정이요, 낮은 밤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흉년은 풍년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깨달았다고 하면 당연히 풍년을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였을 것입니다.
왜 저들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들에게 영적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배가 없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없고 예배가 없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에 빠져 헛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적 지도자와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셋째는 자기 정체성이 사라질 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멜렉은 ‘왕의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좋은 이름입니다. 나오미는 ‘즐거움, 우리의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말론은 ‘병든 자’란 뜻입니다. 기룐은 ‘낭비’란 뜻입니다. 부모의 이름은 좋은데 그 자식들의 이름은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들의 일생이 그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큰아들 말론은 항상 병약했던 것으로 보이고, 둘째 기룐은 낭비가 심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이 자식에게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에게는 기울어진 모습을 보일까요? 그 이유를 1절에서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라는 말씀에서 ‘거류하였는데’라는 내용이 영어성경에서는 ‘went to live’ 라고 하였습니다. 목적이 살기 위하여 이방인의 땅 모암으로 처자식을 데리고 간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잃으면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됩니다. 살기 위하여 지혜를 짜내고 살기 위해서 방법을 찾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해결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바울이 고백한대로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바르게 잡을 때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제 경우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코로나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백신 주사를 맞아야 합니까? 아니면 거부해야 합니까? 이렇게 물었지요. 그랬더니 말씀이 내 안에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막 16:18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시며 백신을 맞아도 된다는 sign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말씀이 내 안에 담겨 있으면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성령께서 내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암송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머물 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합당한 생명체로 성장하는 것이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정체성이어야 됩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3절과 5절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자손이 끊기는 저주로 말입니다. 이것을 흑암이요 지옥의 그림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모든 결과는 헛되고 헛된 죽음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거주한 지 십 년쯤” 되어 아들 둘이 모압 여인을 아내로 얻었지만, 아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명이 끝이 났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선택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화려한 결과를 얻고 사람들에 의하여 부러움을 얻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생명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헛되고 헛된 대로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을 잊지 않고 순종하며 나의 정체성 곧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고 오직 주의 뜻을 따라 바른 선택을 하므로 믿음의 좋은 결과를 얻어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