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밥에만 (종교예화2, 최형락신부저, p364)
안식일에 유태인 셋이서 예루살렘에 갔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가지고 간 돈을 분실우려가 있다하여 전부 모아 상의 끝에 땅에 묻었다. 그런데 셋 중에 하나가 몰래 그곳에 되돌아가 돈을 훔쳐 갔다. 셋은 서로 다투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들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솔로몬 왕에게 가서 셋 중에 누가 돈을 훔쳤는지 판결해 달라고 청하였다. 왕은 그 세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말하였다.
“그대들 셋은 아주 영리한 사람들이니 지금 내가 재판하는 일에 먼저 협조해 줄 것을 바라노라. 그러면 그대들 세 사람의 문제를 내가 명확히 해결해 주겠노라! 한 처녀가 어느 남자와 결혼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되어 처음의 약혼자를 만나 위자료를 주며 파혼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첫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없다고 하며 그 처녀와 순순히 헤어져 주었다. 그녀는 주지 않는 위자료를 가지고 돌아오다가 어느 노인에게 유괴당하였다. 그녀는 노인이 자기가 많은 돈을 가진 것 때문에 유괴한 것을 알고는 노인에게 간청하였다. ‘나는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던 남자에게 위자료를 주면서 약혼 취소를 제의했더니 그 남자는 위자료도 받지않고 나를 그냥 해방시켜 주었는데, 당신도 이와 같은 일을 내게 해주십시오!’ 처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노인도 그냥 놓아주는데에 동의하였다. 그러면 이 중에서 누가 가장 칭찬 받을 행위를 한 사람인가?” 솔로몬은 이야기를 마치고 세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첫번째 남자가 그녀와 약혼했다고 위자료도 받지 않고 약혼을 취소해 준 맨 처음 남자가 가장 칭찬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녀의 의지를 무시하면서까지 결혼하려 하지 않았고 돈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두번째 남자가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처녀야말로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녀는 용기를 가지고만 처음 남자에게 약혼의 취소를 제의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려 했으니 이야말로 칭찬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세번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는 도무지 영문을 모를 소리여서 저는 통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유괴한 사람만 하더라도 돈 때문에 유괴했는데 돈도 받지않고 놓아 준다는 따위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세 남자의 대답을 모두 듣고는 세번째 남자에게 꾸짖었다. “돈을 훔친 범인은 바로 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다른 두 사람은 애정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에 얽혀있는 인간관계에만 신경을 쓰는데, 너는 돈 문제 밖에 생각지 않고 있으니 네가 범인임에 틀림 없노라!”
*하로동선(夏爐冬扇) (종교예화2, 최형락신부저, p364)
하로동선이란 말은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이다. 이는 무용의 물건을 가리키는데 쓸모없는 재주를 부려 무익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개 일반적으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한다.
*물욕과 망신 (종교예화2, 최형락신부저, p364)
눈병이 심한 한 할머니가 의사에게 가서 병을 고쳐주기만 하면 크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의사는 매일 같이 와서 눈에 약을 넣는 반면, 할머니가 보지 못하는 것을 기화로 가구를 하나 둘씩 가져갔다. 그래서 눈병이 거의 나아 갈 즈음에는 집에 가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자기가 갖고 싶은 가구가 전부 자기의 집에 옮겨질 때까지 치료를 질질 끌었던 것이다. 얼마 후 할머니의 눈이 낳았다. 그러자 의사는 약속대로 많은 사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눈이 낳은 할머니는 어찌된 일인지 사례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의사는 할머니를 상대로 재판을 하게 되었다. 어째서 사례를 하지 않느냐고 재판장이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확실히 내 눈이 잘 보이도록 고쳐주면 상당한 사례를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의사의 치료를 받고 나서 내 눈은 전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과 의사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저 의사의 치료를 받기 전에는 내 집에 있는 가구들이 전부 보였는데,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소. 그러니 내 눈은 나아진 것이 아니라 더욱 나빠진 것이 아니오? 그래서 사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히려 의사는 구속 되었으며, 결국 과욕으로 망신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오늘의 묵상 (220619)
제1독서의 멜키체덱은 성경에서 언급된 최초의 제사장입니다.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던 그는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멜키체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여겨지며,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시편 110[109],4)라는 메시아적 신탁은 마침내 예수님에게서 완전히 실현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의 몸과 피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대사제이시며, 새 계약의 중개자가 되십니다.
제2독서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성찬 제정문 가운데 하나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몸소 성체성사를 세우신 내용을 전합니다. 여기에서 ‘기억’(아남네시스)이라는 말은 이천 년 전의 사건을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사제를 통하여 봉헌되는 미사에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거행된 완전하고도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라는 표현은 성체거양 다음에 “신앙의 신비여!”라는 사제의 선창과 함께 바치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현재, 예수님의 죽음을 전하는 과거, 그리고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미래, 곧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지금 이순간에 공존하며 천상 잔치의 영원한 기쁨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앞서 헤로데는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루카 9,9) 하며 예수님에 관해서 질문하였는데, 우리는 오늘 복음을 읽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참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복음의 내용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동작들, 다시 말해서 빵을 ‘들고’, ‘축복하시며’, ‘떼어’, ‘나누어 주셨다’라는 네 동사가 예수님의 성찬 제정문과 엠마오 발현 이야기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쓰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동작의 연속성’을 통해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성찬례를 제정하시고, 부활하신 다음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식탁에 앉아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신 분께서 바로 같은 예수님이심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사제를 통해서 거행되는 미사 안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요한 6,51 참조)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시어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도 이 놀라운 신비로 우리를 당신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또한 주님과 더욱 깊이 일치하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주님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빵’이 되도록 합시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대구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