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술 마셔도 되나요?
신자가 술을 마셔도 되는가의 문제는 초신자 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는 신자와 중직자(重職者)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궁금해서 묻고 어떤 이는 합법적(?) 허락을 기대하며 묻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술과 관계없이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러한 신자의 궁금함에 관해 목사는 반드시 속 시원한 답을 줄 사명이 있다. 모호하고 헷갈리는 대답이 아니라 선명하고 근거가 명백한 답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신자도 술을 마셔도 됩니다. 하지만 신자는 술을 마시지 마세요.”
선명한 대답을 기대한 독자는 방금 실망을 넘어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신자가 “된다”라거나 “안 된다”라는 대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성경적이고 선명한 대답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성경적 대답인지 같이 생각해보자.
신자가 술을 마셔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는 1세기에 고린도에 살던 신자가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 먹어도 되는지 묻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 아무런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고린도에서는 시장에 나와 있는 고기는 십중팔구 우상 제사에 바쳐졌던 고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제사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무교(巫敎)에서는 제사 후에 술이나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를 음복(飮福)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나 음복(飮福)하는 것은 신앙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고린도에서는 상황이 좀 더 복잡했다. 당시에는 우상 제사에 사용된 고기가 남아서 시장에 나와 판매되고 있었다. 물론 고기를 우상 제사에 사용했다고 고기에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어떤 독(毒)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어도 해롭지도 않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덕스럽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 고기를 제물(祭物)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신자가 그것을 먹는다면 우상 제사에 동참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고기를 먹어도 되지만 자신은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만일 남의 집에서 고기 요리를 대접받으면 고기의 출처를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술을 마시는 문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술에는 독(毒)도 없고 한 잔 마신다고 지옥에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신자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신실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금주(禁酒) 문화는 불신자들도 다 아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신자들은 자기 동료 신자가 술을 마시기 원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마시지 않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성경을 들고 이렇게 질문한다. “예수님의 최초 기적도 술을 만드는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도 포도주를 마셨는데 왜 신자는 마시면 안 되는가?”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문화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나라처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이스라엘에는 4월부터 9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서 건기의 끝자락인 9월에는 마실 물조차 부족했다. 그렇게 덥고 목마른 상황에서 포도를 수확하여 밟아 그 즙을 마시면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도주=기쁨”의 공식이 탄생했다.
그런데 당시 포도즙은 무한정 공급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사용해야 하는 가정의 양식이었기에 잘 보관해두고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들은 안식일에 포도즙을 마셨고 유월절 예식에는 포도즙 넉 잔을 마셨다.(히브리어로 포도즙과 포도주는 같은 단어이다.) 포도즙은 보관해두면 저절로 발효가 일어나기에 물에 희석해서 어린이도 마실 수 있는 음료수로 만들어 마셨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주 문화는 그렇지 않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음주 문화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술 한잔 받으라고 강요하며 그것을 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 선교사들은 신자들에게 술과 놀음과 축첩(蓄妾)을 금하였고 금주(禁酒) 문화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그가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교회에서 금주전통은 교리는 아니나 건덕(建德)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전 10:23). 이 말씀의 원리처럼 신자가 술을 마시는 것은 가능하지만 유익하거나 덕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신자도 마셔도 되지만 마시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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