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나눔을 꼭 해야 하나요? (참소중한 당신 2017-10)
곽승룡(비오)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전략- 힘든 것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게 싫어 겨울에 난방도 많이 하고, 절제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사고 싶은 물건은 꼭 사야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마음이 완고하고 고집이 강해진다고 하신 마음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는 판단은 내려놓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자신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과 판단하지 말고 자세히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과 감정이 지속적으로 계속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는 무슨 기억이나 혹시 불편함과 상처를 받아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개는 이성적으로 자신의 이런 행동을 판단하고 후회하면서 또는 난 본래 그래 하며 그냥 면죄부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느낌의 감정들을 자세히 바라보아 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자기 성찰을 깊게 하는 것이 요청됩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느끼는 것은 분명한 이유 그리고 사건이든 사고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 많은 사람들은 생각과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부부관계, 자녀관계, 직장에서 동료들과의 관계 심지어 성당에서 교우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의 토대에는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 대해 모르고, 그것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여러 장애가 되는 형태들이 있지만 두 가지만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나는 자기애적이고 자기중심적 관계를 취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부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개 남편들이 부인에 대한 사랑이란, 직장 잘 다니고 돈 잘 벌어다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부정될 수는 없지만 사실 사랑은 인격적인 소통으로 확인되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매사를 혼자 결정하면서 부인을 결과적으로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또한 남편의 유년시절 과거에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생겨난 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한편 둘째로 친화력이 없고 자신의 내면으로 움츠리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를 스스로 힘들게 해 가족들에게도 힘든 그 모습이 전달됩니다. 이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과거의 자기 삶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 정신의학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양육이 일관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부모는 자녀가 예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부모역할이 같아야 하는데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말과 감정과 행동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곧 용돈을 줄 때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관계가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상대방, 예를 들어 가정에서 남편은 자신의 일방적인 태도와 말로 부인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들지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부인은 어느 정도 남편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를 좀 도와주는 차원에서 그가 모르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이제 절제와 이웃사랑에 대한 복음적인 이해를 자세히 나누고자 합니다. 절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세한 이해와 함께 이루어자는 선물로 드러납니다. 단순히 내가 어려서 가난하고 어려운 삶에 대한 보상 내지는 내가 너무 이기주의라 그렇게 강퍅하게 산다고 판단하지 말고, 내 영혼을 내 방식대로 추리하지 말며, 하느님의 빛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자세히 바라보면 분명 하느님의 은총으로 복음 안에서 절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절제와 이웃사랑에 대한 복음의 가르침을 나누고자 합니다. #절제 :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마태 6,16). 단식은 음식을 자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단식의 근본인 절제와 포기와 지배가 드러나야 합니다. 모든 것,창조된 것, 감각, 느낌, 돈, 명예 등을 지나치게 탐욕스럽게 추구하지 말아야 함을 뜻합니다. 이러한 절제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선물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 하십니다”(2코린 9,7). 전통적으로 사막의 수도자들에게 절제에 대한 수덕생활의 지침은 세 가지를 특별히 강조합니다. 첫째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둘째 몸의 건강이 목적이고 그로 인한 노동할 수 있는 힘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셋째 몸은 정신과 마음 곧 기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수도원에서 있었던 음식에 대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한 수도자가 기도 중에 예수님의 환시를 보았다며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수도원장은 주방담당 수도자에게 “그에게 고기 좀 먹이라!”고 주문을 하였답니다. 이런 경우는 셋째 지침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대중적인 격언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먹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 위해서 먹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습니다. 옛 성인들이 말씀하시길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웃사랑과 보상 :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루카5,34) 초기 수도자들의 역사를 읽어 보면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단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식이 지니고 있는 의미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는 혹시 초대된 사람을 위해 식탁을 꾸미셨듯이 세상을 준비하신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 우리는 공짜로 그분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이웃사랑이 바로 보상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단식을 하기 위한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첫째 이유와 원리는 이웃사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풍요 속에 살아가는 자가 다른 이들을 위해 한 끼를 기꺼이 포기합니다. 다른 이유도 항상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사랑이란? 삶의 참 필요들이 거대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조금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이란? 어떤 행복과 정직한 환경을 축제로 승화하기 위해 친구들과 식탁에 앉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십일 동안 단식하셨지만 역시 그 많은 식사에 참여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의 선을 위해 말씀을 하시곤 하였습니다.
필자는 지난여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 대교구의 마리아 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동방영성을 서방교회에서 살아가는 마리아 센터는 캐서린 휴엑 도허티 여사(1896~ 1985)에 의해 설립된 마돈나 하우스입니다. 마돈나 하우스는 복음의 정신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입니다. 선교의 성공 여부는 결코 그 성과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전적으로 공동체 성원들이 서로 사랑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마리아 센터에는 “I am third”라는 문구가 중앙에 걸려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첫째이고, 이웃이 둘째이며, 나는 셋째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행동을 통해 분명 우리는 자신의 과거의 삶 때문이 아니라 지금 복음의 예수님 때문에 나누고 절제하며 실아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