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10장 주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자
고후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고후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고후10:10 그들의 말이 그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고후10: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전정가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
자신이 가치 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12) 흔히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있는 부인에게 물어보면 영 아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
자기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칭찬 받는 사람은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진짜 훌륭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자기의 속마음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행동함으로 칭찬을 유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이 땅에서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에 결코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칭찬하는 사람
우리는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만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바울은 자신은 주님께 속한 사람으로서(7) 주님의 일을 수행하고(5) 주님의 능력으로(4) 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님께 칭찬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18)
나는 누구에게 속하여 있습니까?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5) 우리는 어느 곳에서 일하든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식구들 사이에서나,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나, 성도들 사이에서 우리는 철저히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복종하며 사는 삶은 철저히 주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생활 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께 칭찬 받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 얼마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바울처럼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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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비난을 인용해 말함
☞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이라는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는 10절의 ‘그들의 말’을 반영한 것이다. 대적들은 바울이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해야 할 말을 면전에서는 못하고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서 겨우 편지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울의 동기에 대한 곡해에서 비롯된 부당한 비난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인데, 그들은 이것을 무기력하고 비겁한 회피로 읽고 있다. 바울은 답답한 마음에 과연 나 바울이 그런 사람인가 반문하고 있는 셈이다.
2절 단호히 대하려 함
☞ 바울은 1절의 ‘대면하면 유순 … 떠나 있으면 담대’라는 구도를 역으로 뒤집어서 ‘(떠나 있으면 유순) … 대면하면 담대’하기를 너희가 원하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8절)가 있다. 그러나 그는 무작위로 이 권세의 칼을 사용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너희’와 ‘어떤 사람들’(티나스)을 구분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대면하면 유순 … 떠나 있으면 담대’의 프레임을 바울에게 씌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울을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로 비난한다. 면전에서 할 말을 다 못하는 것은 바울이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며, 그의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대하려 한다.
3절 육신으로 행하나
☞ 바울은 부당한 비난에 맞서서 자신이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않는다고 답한다. 육신으로 행하는 것은 육신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부정적 표현이다. 바울은 자신이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비난을 ‘육신으로’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바울은 ‘육신에 따라’를 ‘싸운다’는 말과 연결시켜 자신의 싸움이 세상적 차원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싸움이라는 것을 밝힌다.
4-5절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움
☞ 바울은 ‘육신에 속한 것’(무기들), 즉 혈통의 자랑(11:21-22)이나 권위 있는 임재 및 언변(10:10, 11:20-21) 등으로 싸우지 않는다. 바울은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무기로 삼아 싸운다. ‘능력’으로 번역된 ‘뒤나타’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서, 앞의 ‘육신적’이란 단어와 대조를 이룬다. 곧 바울의 무기는 ‘육신적’ 무기가 아니라 ‘강력한’ 무기들이라는 것이다. 이 단어 뒤에 ‘하나님께’에 해당되는 여격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 여격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가 논란이 되는데, 히브리어 어투를 반영하는 하나의 최상급 표현으로 보면 ‘신적 또는 최고로 강력한’의 의미가 된다.(Hughes, Harris 등) 크리소소톰은 이 무기를 설교라고 지목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나아갈 때, 인간의 자랑에 근거한 모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 나아가 사람의 이론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높아진 것(5절)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항해 인간이 쌓아 올린 교만의 성채를 무너뜨린다. 바울은 ‘모든 생각’ 곧 인간의 계략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한다. 이 모든 일이 사도의 강력한 신적 무기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6절 불순종을 처벌함
☞ 바울은 ‘너희의 복종’과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의 불순종을 구분한다. 사도의 강력한 신적 무기들 앞에서 깨져야 할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든 불순종의 행위다. 이 처벌은 고린도 교인들의 복종이 온전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이 온전히 복종할 때, 그들 중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다.
7절 어떤 사람의 주장
☞ 바울이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라고 말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얼마나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들인지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라는 표현은 ‘어떤 사람’(티스)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진술하는 문구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것은 일반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기보다 그리스도께 특별히 속한 것, 곧 사도 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육신적 자랑거리들을 근거로 자신의 사도 됨을 주장하면서 바울의 사도 직분을 공격했다.
8-9절 주께서 주신 권세
☞ 바울은 자신에게 ‘주께서 주신 권세’가 있다고 밝힌다. 이 권세를 주께서 그에게 주셨기 때문에 바울이 이를 자랑할지라도 결코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다. 다만 그는 이 권세를 주님이 의도하신 목적대로, 곧 교회의 세움을 위해 사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권세에 대해 자랑을 하더라도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무너뜨리려는 것도, 놀라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10절 대적들의 평가
☞ 대적들은 바울의 편지가 무겁고 힘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대면해 있을 때는 약하고 특히 말이 시원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말’은 말의 기교 또는 수사학적 자질을 가리킨다. 이 면에서 바울은 무시당하고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고린도전서 2:2)만 알기로 작정했던 일의 결과일 뿐이다.
11절 항상 동일함
☞ 바울은 대적들의 공격과 달리 자신은 떠나 있을 때나 대면해 있을 때나 항상 동일한 사람임을 밝힌다. 편지할 때나 말할 때나 행할 때나 그는 항상 같은 사람이다. 그는 결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