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400여년 만에 표충사 선원 문을 다시 연 서래각(西來閣) 선원장 혜오(慧悟)스님을 깊어가는 가을에 만나 법담(法談)을 들었다.
기자에게 연한 녹차를 권한 혜오스님은 “아상(我相)에서 뛰쳐 나오려면 화두를 들어야 한다”면서 “그럴 때 대장부가 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염라대왕 머리 꼭대기까지 박혀 있는 게 아상입니다. 아상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 도(道)에 이를 수 없습니다.”
표충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직후 주지실을 수좌들이 정진할 수 있는 선방으로 선뜻 내놓을 만큼 선원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혜오스님에게 서래각 선원을 열게 된 뜻을 질문했다.
“참선은 불제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익히는 아주 좋은 수행법입니다. 호국성지인 표충사 도량에 선원이 다시 문을 열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많은 도인(道人)이 배출돼 중생구제의 원력을 폈으면 하는 원력을 평소 갖고 있었습니다. 영축총림 방장 월하스님의 배려도 큰힘이 되었습니다.”
서래각 선원은 본래 무량수각(無量壽閣)으로 ‘밀양 최고의 명당’이며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효봉스님이 정진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무심경지 이르면 ‘매일 좋은날’
- 도(道)는 무엇이며 어떻게 체득할 수 있습니까.
“불(佛)은 아주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법(法)은 깨끗한 것에서 광명이 나오는 것으로 마치 ‘맑은 빛’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도는 깨끗한 것에서 나온 광명이 일체처(一切處)에 걸림 없이 골고루 비추는 것을 가르킵니다.”
혜오스님은 “본래 지니고 있는 청정한 본바탕을 사람마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다생겁에 지은 업력 때문”이라면서 “업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화두선을 들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화두는 일체의 모든 망념을 여의고, 오로지 깨끗한 자리에 이르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 공부하는데 있어 화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화두는 소를 기를 때 도망가지 않도록 말목을 치는 것과 같고, 강을 건널 때 필요한 배와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깨닫고 나면 본래 화두는 없습니다. 꿈을 꾸거나 꿈에서 깨거나 화두는 여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무심(無心)이라는 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무심을 알지 못하면 절대 도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 무심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무심은 단순하게 ‘마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어떤 경우에도 끄달리지 않고 완전히 화두로 뭉쳐 있을 때를 진정한 무심이라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정진하다 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일체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매일 매일 좋은날’이 된다고 혜오스님은 강조한다. “무심을 넘어서면 평등법(平等法)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도를 깨닫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화두를 들고 열심히 참선을 해야 합니다.”
- 참선을 하는 본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열심히 화두를 참구하면 자기의 깨끗한 본체를 발견하게 되고, 움직이는 ‘이 몸’은 없어지고 맙니다. 결국에는 ‘생각하는 몸’마저 사라지는데 이를 견성(見性) 또는 열반(涅槃)이라고 하지요.”
- 스님께서는 ‘도의 행함’을 강조하시는데요.
“〈금강경〉을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상을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라는 아상 때문에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됩니다. 아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도의 행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상을 버리라는 것은 곧 상대의 처지가 되어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무심의 경지를 지나 평등법에 이르면 도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의 행함이 되는 것입니다.”
“아상 버리고 진일보”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혜오스님이 교학(敎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스님은 “부처님 이후 지금까지 ‘무식한 도인’은 없었다”면서 “교학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달마스님 이후 수행자들이 화두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를 이룬 어른들 모두 경문에 뛰어난 분들이었습니다. 경을 보고 습득해서 실천으로 가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선과 교를 놓고 어느 것이 높고 어느 것은 낮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스님은 “염불이나 독경, 주력도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좋은 수행법”이라면서 “근기에 맞는 공부방법을 선택해 열심히 정진하면 결국은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서울을 ‘깨달음의 자리’라고 가정할 때 대전과 대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서울에도 빌딩이 있고 대전 대구에도 빌딩이 있지만 여기에 혹하지 말고 진일보하길 바랍니다. 서울에는 남대문도 있고 남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화두를 공부하다 막히면 어른스님들의 점검과 지도를 받는 자세를 가질 때 바로 아상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가능합니다.”
- 재가불자들이 마을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오.
“부처님 당시에도 유마거사가 있었고, 육조스님 때는 방거사가, 원효대사 시절에는 부설거사가 있었습니다. 재가에서 참선공부를 하면 스님들보다 더 큰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가는 동(動)에서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동에서 공부하면 도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정(靜)과 동을 떠난 공부가 큰 대도인 것은 물론입니다.”
혜오스님이 표충사 주지 취임 이후 재가선원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스님은 한달에 한번 정도 재가선원 대중들에게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금(金)을 쥐고 논을 사고 밭을 사는 것’과 같다”면서 “일체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도의 깨달음을 이루도록 정진하라”고 당부한다.
- 출가사문에 들어선 젊은 스님들에게 주실 당부의 말씀은.
“요행이나 비법을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하게 됩니다.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뛰어난 비결이 나오고 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화두 자체가 수행”
혜오스님은 “화두는 도를 깨쳤다고 놓는 것도 아니고 안 깨쳤다고 해서 드는 것도 아니다”면서 “화두 자체가 수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항상 일념으로 화두가 자리 잡고 있어야만 비로소 일행삼매(一行三昧) 일상삼매(日常三昧)가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10월29일 저녁과 30일 오전 두 차례에 걸쳐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스님과의 대담을 마치면서 마지막 질문을 드렸다. “만약 어떤 수좌나 불자가 스님에게 도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혜오스님은 주저함이 없이 이렇게 답했다. “독수리는 하늘을 높이 날고, 고기는 강물에서 펄쩍 펄쩍 뛴다 하더라.”
1940년 8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스님은 유학자 김응구(金應九) 선생에게 유교 경전을 두루 익혔다. 1954년 3월 김해 모은암 법철(法徹)스님 문하에서 불교 경전을 배웠으며, 1964년 당대 선지식인 향곡(香谷)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한 뒤 참선공부에 전념했다. 이후 문경 봉암사 주지, 부산 묘관음사 주지, 영축총림 보광선원장, 선학원 중앙선원장, 양산 미타암 주지 소임을 보았다.
향곡스님이 열반한 뒤 월하스님(영축총림 방장)의 법제자가 되면서 법호를 무방(無方)으로 받았다. 묘관음사 주지 시절 선원을 중흥한 스님은 2001년 표충사 주지로 부임한 후 서래각 선원의 문을 여는 등 납자(衲子)를 양성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