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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 삼각산 진관사(津寬寺)를 찾아서 ③
-그밖의 당우ㆍ비림(碑林)ㆍ진관사 태극기비-
나가원 바로 옆에 있는 수각(水閣)
수각 앞의 종무소(宗務所)
종무소 옆의 동정각(動靜閣). 범종각입니다.
동정각 편액은 탄허스님의 친필 글씨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대산 상원사에 범종각도 동정 각이라 했는데 그 편액도 탄허스님의 글씨였었는데 여기서 다시 봅니다. 편액을 미처 못 찍었네요.
『나가원 아래에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모지붕의 목조건물로, 1975년에 진관스님 이 신축한 것이다. 건물은 계단석이 있는 가구식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 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사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기둥에는 낙양각이 장식되 어 있다. 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으며, 기둥 외부로 주련(柱聯)이 있다.
건물 내부는 진관사의 범음을 전달하는 범종(梵鐘)이 걸려 있는데,1974년에 조성된 것으 로 높이 160㎝, 구경 91㎝, 300관의 대형범종이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서별원(西別院)
1층은 공양간입니다.
공양간 앞 항아리
진관사에서는 청국장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합니다. 청국장을 먹어 보고 소개했더니 늘 구입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혹 필요하신 분들은 사찰 방문시 구입해 보세요.
홍제루(弘濟樓)
진관사 경내로 들어서는 홍제루는 앞쪽에 '진관사(津寬寺)'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고 경내 안쪽으로는 홍제루(弘濟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중앙 계단통로에는 문이 있어 문 에는 인왕상(仁王像)이 그려져 있습니다. 밤에는 문을 닫아 겁니다. 안내글을 옮깁니다.
『진관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초입에 있는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형식 의 건물로서 1층은 석주기둥으로 구성되었고 2층은 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1977년에 진 관(眞觀) 스님이 신축한 건물이다.
절에 진입하는 출입구로 경내에 들어서려면 누각 아래의 중앙 계단통로를 이용해야 하는 데, 건물 1층은 석주를 세워 하부구조가 드러나 있으며, 석주에는「대종대시주비」가 새 겨져 있어 조선후기 진관사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외 석주 좌우로는 목조로 만든 출입구가 있으며, 출입구에는 사천왕문을 대신한 듯 인왕 상이 단청되어 있다. 이외 2층은 현재 강당으로 사용되는데,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아 사찰을 참배하고 집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으며, 외부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러 진관사를 찾는 참배 객들의 휴식처로도 사용되고 있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홍제루(弘濟樓) 편액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는 법인데, 여 기의 금강역사은 입을 다물고 있네요. 눈을 부릅뜨고 공격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나 라연금강이 분명합니다.
밀적금강(密跡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 (密跡金剛)은 입을 다물고 ´훔´ 소리를 내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는 범어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로, 나라연금강은 출발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의미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은 소멸의 단계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방어 자세를 취 하는 것입니다. 또, 이 두 역사가 내는 소리는 합쳐서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 징하는 진언 ´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라연금강은 힘이 엄청나게 세서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밀적금강은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으로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본서(本誓)가 있으므로 밀적(密迹)이라 합니다.
진관사 앞면
이 중앙통로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바로 경내입니다.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있는 문은 안쪽에 대문 형태로 있습니다.
진관사의 경내 진입문이 있는 홍제루 모습
이 앞으로 난 길은 등산로로 이 길을 통해 북한산 비봉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최근에 놓은 세심교(洗心橋)
진관사 진입로 및 담장
여기 담장 안 저 앞에 보현찻집이 있는데 예전에 한 번 들어가 보니 운치가 좋더군요. 길을 따라 일주문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오솔길로 가는 곳에 비림(碑林)이 있는데, 여기에 부도 1기와 송덕비 2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진관사 공적비와 사적비가 있습니다.
혜월당대선사우성탑(慧月堂大禪師宇性塔)
이 부도는 혜월당 대선사의 묘탑(墓塔)으로 둥근 지대석 위에 석종형(石鐘形)의 탑신(塔身) 을 올렸는데 "혜월당대선사탑(慧月堂大禪師塔)"이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정삼품전공사명자선송덕비(正三品全公士明慈善頌德碑)
정삼품전공사명석교송덕비(正三品全公士明石橋頌德碑)
삼각산 진관사 공적비와 사적비
삼각산 진관사 공적비(三角山津寬寺功積碑)
거북의 입을 잘 보세요. <불교미술방>을 열심히 보신 분은 거북의 양쪽 입가에서 무엇이 나오는 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기 싹이 뻗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불교미술방에 연재되고 있는 강우방 교수의 설에 의하면 ‘영기 싹’이란 무엇인가? 영기 싹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에 충만한 대생명력(靈氣)의 화신(化身)들을 구성하는 최초 의 그리고 최소의 단위 모양으로, 생명의 최초의 새싹을 말합니다. 대생명력(영기)의 싹이 므로 ‘영기 싹’이라 이름 지은 것입니다. 보통 용면(龍面)이나 연꽃에서 볼 수 있는데 거 북의 입에서도 보게 되네요.
삼각산 진관사 사적비(三角山津寬寺寺跡碑)
삼각산 진관사 공적비(功積碑)와 사적비(寺跡碑)
삼각산 진관사 일주문
일주문 편액이 한글로 되어 있네요. 한글로 되어 있어 반가운데 이왕이면 운치 있는 전서 체로 썼으면 운치를 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주문은 아마도 헐거나 다른 문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보다 훨신 앞에 일주문을 만들고 있었습 니다. 아, 그것을 사진에 담았어야 했는데 간과했네요. 그것은 이런 석주가 아니라 나무 로 만들고 있더군요. 앞으로는 진관사에 들어오려면 일주문을 지나고 극락교를 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진관사에서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
일주문 밖 극락교에서
극락교에서 다시 한 번.
극락교에서 바라본 일주문
앞으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진관사가 서울 시민의 쉼터가 되고 귀의처가 되는 안락처 가 되기를 합장하고 물러납니다.
예전에 이 극락교 바로 앞까지 음식점이 즐비하여 고기 굽는 냄새와 술냄새가 퀘퀘하게 진 동하여 어지러웠었는데 몇 년 전부터 모두 소개시켜 깔금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사찰환경이 더욱 쾌적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제 일주문 밖의 어지러움도 정리되어 그 곳에 일주문을 새로이 목조로 세우고 있는 불사가 진행중입니다.
진관사 입구에 커다란 돌로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뉴스 에서 본 바가 있고 불교신문을 통해서 이 비가 제막되었음을 알았는데 진관사 경내에 있는 줄 알고 경내를 찾아봐도 없더니 진관사 진입로 초입에 있더군요. 아마도 진관사와 북한 산을 찾는 이들이 모두 두루 볼 수 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458호
이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는 작년 불기 2555년(2011) 8월 10일, 광복절 제 66주년을 앞 두고 제막되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 비는 한국독립운동(韓國獨立運動) 중심에 섰던 초월(初月. 1878~1944) 스님이 보관했던 태극기 형태를 비에 새긴 것으로, 초월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서울지역 항일운동 거점사찰인 진관사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조성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비의 경위와 유래
태 극 기
三角山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네 보았냐 보아 그리던 太極旗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太極旗를 오늘 다시 보앗네 自由의 바람에 太極旗 날리네 二千萬 同胞야 萬歲를 불러라 다시산 太極旗를 爲해 萬歲萬歲 다시산 大韓國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獨立新聞)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
『진관사 칠성각 해체복원 불사 중에 독립신문을 비롯한 신문 6종 20점이 태극기 안에 싸 인 채로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1919년 중국과 국내의 항일독립운동에 실제 사용된 것으 로, 진관사가 당시 서울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거점 사찰이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진관사 태극기> 비를 감상하는 것으로 이번 금선사에서 진관사에 이르는 사찰순례와 산행을 마감하고 버스정류장이 있는 하나고등학교 앞으로 가는데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어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진관사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성종대왕의 후궁 심씨의 묘표(墓表)였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다 하니 다음에 보너스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 다음은 성종대왕후궁 숙용심씨묘표(淑容沈氏墓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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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간 쯤부터 사진이 달아나 버렸어요. 성덕대왕 후궁 심씨의 묘표라~ 궁금해지는군요.
여기는 정상적으로 보이는데아났군요. 그 중요한 비가 안 보이겠군요. 저는 잘 보이나 아마도 조만간에 아나겠지요. 다시 작업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성대왕 후궁 심씨 묘표에 대해서는 이미 염화님이 진관사 사진에서 올린 바가 있습니다. 좀더 사연과 경위를 모두 적시해 보려 합니다. _()_
사진에 배꼽이 많아요.인해 보세요 _()_
사진을 다시 작업해서 올렸습니다.인해 보세요. _()_
사진 다 잘 나와요. 한 번 다녀와서 인지 더 새롭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_()_
다행입니다. 또아나면 안 되는데... 감사합니다. _()_
진관스님 진(眞) 과 진관사 진(津) 이 다르군요. 잘 보 았 습니다, ()()()
참진 과 나루진 의 의미는 무었 일 까요. 제대로 안읽은 표시 인가요
진관사(津寬寺)에는 진관 스님이 두 분 계십니다. 곧 진관(津寬) 스님과 진관(眞觀) 스님이지요. _()_
진관(津寬) 스님은 고려 초기 때의 분으로 진관사를 세우신 분이고, 진관(眞觀)스님은 현재 진관사의 법주로
진관사를 중창하신 분이죠. 진관(津寬)이란 부처님의 진리를 넉넉히 인도한다는 의미가 있을 터이고,
진관(眞觀)이란 진리를 관(觀)한다. 또는 진실의 눈을 말하겠지요.
궁금증이 산듯 하게 풀렸 습니다. 진관 스님이 두분이 시군요.()()() 감사 합니다.
서울도심에 유서깊은절이 참으로 많네요...그림으로 잘 보고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_()_
서울의 명찰이 숱하게 많습니다. 하나하나 찾아갑니다. 다음 후보는천사를 꼽고 있습니다. _()_
다른 곳일 수도 있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진관사 이곳저곳을 참배하고 둘러보아거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