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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의 목회 활동 (6)
유혹을 이기는 삶
아펜젤러는 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매우 확고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악이란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정의했으며 이것의 실체는 사탄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사탄은 선한 모든 것을 반대하며, 그 자신을 높이려는 존재로 정의한다. 또한 사탄은 비물질적이며 보이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능력이 있으며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어 사람의 삶을 욕망과 실패로 가득 채우며 이러한 사람을 항상 찾고 있다고 한다.
베드로전서 5:8-9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위의 말씀처럼 사탄은 때로는 의심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때로는 욥을 넘어뜨리듯 종교와 삶의 고통을 연관시키기도 하고, 이단적인 생각과 관념으로 설득하여 잘못된 말씀을 전하고 모든 세속적인 장소, 주류와 향락이 있는 곳, 교회의 불화가 있는 곳을 쉬지 않고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유혹, 고난, 협박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군인처럼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처럼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과 실천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위해서는 늘 싸워야 하는데 군인이 전쟁 중에 큰 고난을 경험하지만 순종하며 이를 잘 감당하면 할수록 더욱 영광이 큰 것처럼, 우리 기독교인은 교회를 세우고 주변 기독교인들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은 불확실한 싸움이 아닌 승리의 깃발을 드는 싸움이기 때문에 겁을 내지 말고 최후 승리를 얻은 자들처럼 믿음 을 굳건하게 하며 대적하는 삶을 살고 끝없이 유혹을 이기는 삶을 통 해 나중에 영광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고 말씀을 선포했다.
그리스도와 기독교인의 능력
모든 인간은 종교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성은 다양한 종교에서 나름 구원의 정의를 내리며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성 하나만을 가지고는 인간은 구원에 이룰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종교는 구원에 대한 진리, 확신이 없기 때문에 허공의 뜬구름 잡듯이 실체가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해서 그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아 구원에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다고 했다. 그 계시는 내세와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믿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종교는 선하고 유용한 것을 가르칠 수 있지만 인간이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죄와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고통, 고뇌에 대해서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또 모든 종교 위에 있는 기독교, 즉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구체적인 사실과 진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성경 곳곳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성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적과 사실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신의 속성은 마치 거북이는 날 수 없지만 독수리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성적인 한계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신앙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구체적인 이적과 표적은 그냥 그분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래전부터 예언된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견고 하며 하나하나 확실한 증거를 나타낸다고 했다. 이사야서 7장 11절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고 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이러한 말씀은 신약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믿었고 이러한 표적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증표는 우리를 통해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나타낸다고 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그의 사역뿐 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주장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아펜젤러는 그러면서 현대과학과 철학에 대한 것을 말했다. 특히 과학은 이러한 능력을 부정하고 있지만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만 수행하는 것뿐이지, 그 힘이 어디서 나오고 그 물리적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밝히며 기적의 여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은 신앙의 능력과 기적을 다루지 못한다고 했다. 과학은 두뇌에 대해서 또한 이외의 많은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두뇌의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도 과학이 밝히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과학과 같이 제한된 도구로 알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아펜젤러의 설교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아펜젤러는 세상적인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매우 자세히 이해 하려고 했으며 이에 대한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종교로서 기독교가 어떻게 대처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분명히 전달했다.
사도행전 2장 22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진정한 복
시편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아펜젤러의 설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것의 기초가 됨을 주장한다. “미국이 무슨 나라가 될 것인가를 넘어서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미국이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하는지 보다 분명한 목적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했다. 아펜젤러는 자신의 모국인 미국이 여전히 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즉 이단 종교, 25% 넘는 문맹률, 세속, 물욕 등 비판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국가의 조직과 모습에 대해 부끄럽고 당황하여 숨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폴리머스(Plymouth), 델러웨어 (Delaware), 서배너(Savannah)의 사람들의 신념을 바라보자. 비록 그들이 타인을 위하여 디딤돌이 되어야 해도, 먼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전파를 위한 근본적인 목적을 희 망으로 두기 때문에 우리는 움직인다.”
청교도가 미국 땅에 정착했지만 그 전에 이미 존재했던 유럽의 세속적인 식민지 정책과 그에 따른 죄의 모습이 가득 넘치고 있다고 해도 복음을 받아들인 미국이 다른 점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정직하게 행하고자 하는 생각, 결정하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다가 갈 수 있는 따뜻한 심장이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모습은 청교도적인 미국의 정신이 여전히 곳곳에 넘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아펜젤러는 당시에 오지였던 멕시코 지역을 순회하는 선교사와 그 수행원들의 비유를 들기도 했다. 기자가 멕시코 지역을 순회하는 선교사에게 “방어 무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에 선교사와 그 수행원들은 “주머니에 있는 칼이나 가위 그런 것이 아닌 주님만이 우리의 근본적인 기쁨이 되며 힘이 된다. 그 아들이 자유케 하신 참 자유는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 자유이며, 이것 안에 우리의 힘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의 배후에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있다. 진정한 힘은 수와 물질적인 자원에 있지 않고 민주주의 조차에도 있지 않으며 그 힘의 기초는 그리스도인의 감정, 도 덕성, 영성에 있음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기독교 국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펜젤러의 설교는 레위기 25장 10절, 잠언 14장 34절의 말씀을 가지고 그의 나라인 미국 혹은 기독교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레위기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 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잠언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아펜젤러가 생각하는 기독교 국가라는 의미는 단순히 잘살고 행복하고 복지를 누리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 국가는 여전히 사회에 욕심과 세속적인 불완전한 모습이 존재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 즉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기독교 정신이 강하여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의미했다. 위의 성경 본문처럼 희년을 선포할 수 있는 나라, 공의가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었 다.
이러한 의미로서 아펜젤러는 세속주의, 부도덕성, 로마가톨릭과 대항해야 한다고 했다. 세속주의와 부도덕성이 근대문명을 삼켜버린 것을 우려했고 너무 차갑게 변해버린 사회의 모습이 이로 인해 생겨났다고 했다. 또한 로마가톨릭은 더 이상 형식주의, 교회에 답습하는 정통이 중요하지 않고 순수한 복음이 중요함을 깨닫고 이를 회복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특히 가톨릭의 외형적인 사제들의 조직과 전통이 아닌 성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결국 기독교 국가가 이러한 모습을 펼쳐야 하는 것은 기독교의 참된 정신인 자유를 선포하며 억눌리고 슬퍼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해방과 구원을 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것이 기독교 국가와 공동체가 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이다.
위의 모습을 살펴보면 초기 개신교 선교사의 모습이 사뭇 문화우월주의라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더라도 자신들의 모습을 자각하고 되도록 근대문명을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적인 사상 진정한 자유, 평화, 사랑,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을 전파하려고 노력했음을 상기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한국교회총연합에서 발행한 <한국교회 선교사 전기 시리즈>의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의 생애와 신앙"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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