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순간- 단독자의 고백
• 이재훈
틈
틈에 대해 생각한다. 경험의 틈을 생각한다. 시간의 틈.감정의 틈. 말의 틈. 상상의 틈. 비유의 틈, 사고의 틈, 환회와 절망의 틈 틈에 대해 쓴다. 틈틈이 틈을 생각한다.틈을 생각하는 순간이 시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다른 시간
절연된 시간, 구석의 시간 느린 고독의 시간, 장롱 속의 시간, 홀로 오래 앉을 수 있는 술집 구석의 시간 멍때리는 시간, 자주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말이 태어난다. 하지만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어느덧 그런 삶이 되었다. 그게 사람살이라고 말한다. 나는 늘 다른 시간속에 들어가고 싶다. 다른 시간 속을 살고 싶다. 다른 시간 속에 오래오래 멍하니 누워 있고 싶다.
타인
친구를 만난다. 동생을 만나고, 친구도 동생도 아닌 지인을 만난다. 선생님을 만난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은 시인 친구. 시인 동생, 시인 선생님이다. 쉬운 사람들이 아니다. 때론 얘기를 하다 왠지 서글퍼져 눈물 지을 때도 많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설레고 신나는 일이다.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은 영혼을 나누는 일이다. 어느덧 아무런 자의식 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일상의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타인을 통해 나를 본다. 타인의 눈빛을 통해 내 눈을 들여다본다. 타인의 눈동자에 비춰진 나의 가식을 본다.
기적
예수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광주리를 남겼다. 물 위를 걷기도 했다. 이 황당하기만 한 기적을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믿음의 힘은 기적을 사실로 만든다. 나는 때로 기적을 믿는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기적은 얼마나 시적인가. 기적의 힘이 구원을 슬엿 엿보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해보는 것이다. 시도 믿음의 힘이 있어야 가능한 문장들이 너무 많다. 그 믿음의 힘으로 시는 하찮고 흔한 세계를 격변과 구원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단독자
하나의 성향을 갖지 않는 것 하나의 이름과 신념에 빠지지 않는 것. 이데올로기를 신뢰하지 말 것. 내 속에 구원에 이르는 성을 건축할 것. 나의 종교를 만들 것. 가장 완고하고 유연한 단독자가 될 것. 내 종교의 신도는 아무도.두지 말 것. 그 속에서 몸을 꿈틀거릴 것. 혼자만 침묵할.것. 이 세계의 징표를 혼자만 느낄 것. 시에 대고 소근거릴 것.
저물녘
저문다는 것에 예민해진다. 해가 질 때. 노을이 들판을 물들일 때, 낙엽이 붉게 물들어 갈 때,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 때, 내 머리칼이 새치로 하얗게 변해갈 때, 저물거나.물드는 건 시들어가는 것. 늙어가는 것. 소멸해가는 것이다. 저물고 늙어가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언제 나는 알았을까. 아마 선험적으로 알았으리라. 오직 사람만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 끔찍하게 생각하겠지.
기차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호남선 기차를 탄다. 기차를 타며 여러 생각을 한다. 이 기차를 타고 먼 남도에 가서 시를 얘기한다. 어딘가로 떠나는 이유가 시를 얘기하는 것이 라 생각하니 뭔가 모를 벅참이 있다. 이 기차에 사를 얘기하러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기차에서는 사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은 늘 낭만적인데 왜 시의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까. 나는 왜 늘 피곤할까.
결핍
결핍 없는 자가 어디 있을까. 시는 결핍의 산물이 아닐까.늘 나의 고요함에 대해. 나의 식물적 습성에 대해, 우리집의 신교적 가풍과 큰집의 무속적 가풍에 대해. 늘 게으르고 머뭇거리는 습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가 그런 묵언의 습관을 해방시켜 주었다. 가장 절실한 말, 가장 속악한 말이 머릿속에서 웅얼대었다.
숭고
라다크 판공초의 물을 보며 태초 원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레에서 투르툭으로 산맥을 따라 이동하며 보았던 히말라야의 속살은 이곳이 지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박한 산소 때문에 가는 숨을 쉬며 조심조심 올랐던 곰파 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동해의 밤바다를 마주했을 때는 갑자기 공포스러웠다. 나는 늘 원시의 감각이나 근원의 사유를 좇는다.
때론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포스럽더라도, 그 앞에서 느끼는 생각의 무화를 자꾸만 반복해서 느끼고 싶다.
전언
"너는 완벽한 교훈을 동경하지 말고 너 자신의 완성을 동경하라."(헤르만 헤세)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큰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기 위한 비결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살아라."(니체)
이 두 구절이 지난 이십 년 동안 나를 지탱하게 했다.
미래의 시
시는 종종 미래를 향한다. 미래의 가정 속에서 현재를 점검하고 예견한다. 미래를 점쳐보며 시를 읽는 일은 늘 즐겁다. 설령 미래의 그것이 허황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허황의 부질없이 시를 새로운 것으로 얘기하게 한다. 현재의 시는 늘 미래에 씌여질 시를 예감하며 읽힌다. 그 다음의 시가 어떠한 방향과 언어의 질감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생각한다. 때론 현재의 시가 완미한 세계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음의 시를 걱정할 때가 있다. 즉 그 다음에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걱정할 때가 있다. 읽는 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시단의 공동체는 모두 자기 일과같다고 생각한다. 마치 나의 걱정처럼, 때로는 현재의 시가 여러 허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지점이 많은 시들이 있다. 그 지점이 문제적인 것이다.
밤
이상한 아침을 자주 맞는다. 모든 것이 낯설다.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사는 곳이 맞나 하는 생각, 내가 벌레라면,벌레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혹시 나는 벌레가 아닐까하는 생각 이상한 아침을 맞는 날엔 이상한 저녁을 맞기도 한다. 시는 이상한 아침을 지나 이상한 저녁을 지나 이상한 밤이 되어서야 써진다.
바느질
걱정에 의해 터져 나오는 방언을 받아 적기엔 너무 늙어 버린 것인가. 이제는 언어의 바느질을 한다. 한 땀 한땀.언어를 꿰매고 짓는다. 누더기가 된 시 한 편을 붙들고 허망하게 쓴웃음을 짓는다. 간혹 누더기의 스타일이 새로운 빛과 모양새를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장인의 표정으로 습작 수첩을 매만져보는 것이다.
수첩
수첩은 없어서는 안 될 시적 순간의 공모자가 되었다. 입으로 달싹거리며 첫 행을 외우고, 다시 달짝거리며 두 번째 행을 외우던 시절은 지났다. 금세 잊어버린다. 나이 든다는 것은 기억과 멀어지는 일이다. 무조건 적어야 한다.
하지만 매번 적는 시기를 놓치고, 적으려다가 다시 잊어버리고, 적는다고 마음만 먹거나, 수첩을 가져오지 않거나, 요즘은 스마트폰에 적는다. 가장 손쉽다. 스마트폰이 있더라도 그건 메모일 뿐이다. 시는 종이에 사각사각 팬을 굴리며 적어야 터져 나온다.
음악
한때 음악에 파묻혀, 그 소리의 파동들이 전해주는 영감을 받아 적은 적이 있었다. 이제 음악은 내게 무얼까. 옛 기억을 끄집어내는 오래된 다방의 DJ일까.
사진
사진으로 내 상상력의 많은 부분을 연명했다. 캐논 SLR 카메라를 세 대 썼으며, 서브카메라를 두 대 사용했다.
이제는 모두 떠나보내고, 아주 작은 파나소닉 루믹스 한 대만 남겨놓았다.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많이 찍는다.
자꾸 찍어본다. 혹시, 혹시 엄청난 것을 발견할까 하고 혹시나 하고 찍지만 역시나 별 볼일 없는 것만 자꾸 확인하면서,
흔적
시적 순간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래 머문 시간에 비해 시가 발생하는 순간은 찰나이다. 나뭇잎을 오래 보고 있으면 흔적에 대해 생각을 한다. 흔적의 바람에 대해, 흔적의 사연에 대해. 흔적의 본질에 대해 문제는 그다음이다. 생각을 시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다. 매번 실패한다. 어떤 경우엔 모든 걸 지운다. 어떤 경우엔 한 줄만 겨우 남는다. 겨우 남은 한 줄을 붙들고 그다음 줄을 고민한다. 시는 매번 실패의 반복을 경험하여 겨우 한 편의 꼴을 갖춘다.
이재훈 1996년 '현대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등이 있음.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월간 시인동네 2016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