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13) -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보고
9월 마지막 주간, 전 국민을 불안케 한 지진의 위험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국회는 진흙탕 싸움으로 파행을 겪고 미르와 K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는 등 시국이 하수상하다. 하늘도 찌푸린 듯 가을비 추적이는 우울한 날씨에 극장을 찾았다. 보고 싶은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한,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1CB4F57EED6D22A)
2009년 1월 15일,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하여 노스케롤리나 살럿으로 가던 1549편은 뉴욕상공에서 새때들과 충돌하여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는다. 두 개의 엔진 모두 추진력을 잃고 한겨울의 차디찬 강물에 추락하였음에도 155명의 탑승자 중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긴박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각본과 연출진의 솜씨가 노련하고 한 시간 반 넘게 이를 지켜보는 감동이 짜릿하다. 아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며 한 번 더 보고 싶다네.
사고기의 기장은 40년 경력의 베테랑, 24분간의 숨 가쁜 위기상황에 침착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기지와 판단력이 정확하고 승무원과 승객 모두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지도력이 돋보인다. 곁에서 완벽하게 도움을 주는 부기장과 승객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승무원도 훌륭하고. 사고 경위와 이에 따른 대처가 적절하였는지를 냉철하게 따지는 관계기관의 조사활동이 눈길을 끈다. 사고발생 후 허드슨 강에 비상착수하기보다 이웃공항으로 우회하는 것이 옳았다는 시뮬레이션에 대하여 긴박상항에 대처하는 인적 요소가 배제되었다는 조종사의 깊은 통찰에 승복하는 조사팀의 쿨 함이 인상적이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2F24F57EED4CC27)
40여 년 전 주역 강좌를 들으며 새긴 교훈이 떠오른다. 자동차의 운전사, 기차의 기관사, 선박의 조타수, 비행기의 조종사 등의 역할과 운명이 승객들의 안전과 생명을 좌우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다고. 내가 전공한 행정학에서는 정부를 선박의 조타수에 비유하며 무사운항과 목적지 도착의 책무를 강조한다. 더불어 협동이 필수요건임을 전제한다.
영화를 보며 느낀 관객들의 소감은 비슷하리라. 세월호의 악몽을 비롯하여 각종 안전사고에 허둥대며 뒷북치는 우리 현실이 아득하고 북한 핵과 경제난국을 비롯한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와 시민의 역량은 믿을만한가.
기적을 이룬 조종사는 말한다. 이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 위급상황에 함께 협력하고 참여한 모든 사람의 덕이라고. 부조종사의 위트가 여유 있다. 그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차디찬 강물을 염두에 둔 듯 7월이었으면 좋겠다고. 위기와 난국을 헤쳐 가는 조타수, 살벌함보다 여유를 갖는 유머감각이 필요한 때다.
* 삶의 운전자는 자신임을 새기며 아침 신문에 실린 칼럼 ‘인생이라는 기차’(중앙일보 2016. 10. 1 졸리앙의 서울일기에서 발췌)를 덧붙인다.
‘인생이라는 기차 여행
오늘 아침 공덕동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어떤 남자가 내게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너무 요란하게 목욕탕을 누비고 다녀 바닥 여기저기를 물바다로 만든다며 고함을 쳤다. 순간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이방인이기에 조금만 잘못해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득 스님 한 분이 내게 해준 말씀이 생각났다. “삶이란 거대한 우주의 정거장과도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만남 하나하나가 놀라운 기적이지요.”.
결국은 우리 모두 행선지가 정해진 KTX에 몸을 싣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는 인생의 기차 안에서도 존재의 비극과 사이코드라마쯤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문제를 만들어내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머리다. 삶의 흐름에 딴지 거는 장본인은 항상 에고다. 존재의 비극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무엇이다. 그것은 죽음·고독·사고·질병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상사다. 피트니스센터에서 나는 하마터면 아무것도 아닌 말 몇 마디에 신경이 곤두서 멘털의 경련에 사로잡히는 우를 범할 뻔했다. 내게 고함친 그 사람 역시 기차에 몸을 실은 한 승객이며 기쁨과 행복의 길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인간일 뿐인데 말이다.
건강은 만인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선물이 아닐 수 있다. 니체는 질병과 사고, 충동과 욕망의 혼돈마저 포용할 만큼 광활한 건강을 이야기했다. 치명적인 병인(病因)은 육체를 괴롭히는 질병보다 존재를 휘어잡는 증오와 탐욕, 시기심 같은 어두운 감정들 속에 있다. 즐거운 기차여행은 그런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림으로써만 가능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피트니스센터를 나선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긍정을 표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기차에 오른다. 창문 밖으로 지나는 변화무쌍한 풍광에 감사하며 기적의 순간들을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