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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감정들(1)-거룩한 기쁨-
베드로전서 1:6~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오늘 본문 말씀은 로마 제국의 가혹한 핍박 상황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 각처에서 각종 이교의 압력과 로마 황제 숭배의 압박과 맞서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고 이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러한 진실한 신앙의 국면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참된 신앙에는 거룩한 감정들이 담겨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을 3절에서 언급하였고, 6절에서는 핍박 중에서도 ‘크게 기뻐함’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함’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된 신앙은 단지 교리적인 지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반드시 경건한 감정을 늘 함께 동반하게 됩니다. 참 신앙에는 교리적 지식과 더불어 거룩한 감정이 담겨 있으며 거룩한 의지에 따른 신앙적 행동과 함께 합니다.
특별히 거룩한 감정들은 신앙을 생기있게 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거룩한 감정 없는 신앙은 마치 생기없는 인조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감정 없는 냉랭한 교리적 지식이나 거룩한 감정 없는 신앙적 행동이란 진정한 신앙의 열매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과 같아서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거룩한 감정이 뒤따릅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기록들과 신앙인들의 신앙적 체험을 살펴보면, 참된 신앙에는 지극히 복스러운 거룩한 감정들이 늘 나타나곤 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이 거룩한 감정들에 대한 성경적 기록과 우리의 체험들을 중심으로 거룩한 감정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참 신앙에는 거룩한 기쁨이 나타난다는 것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았듯이, 참 신앙은 거룩한 기쁨이 나타납니다.
베드로전서 1:8 말씀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모진 박해 속에서도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과 장차 천국에서 받을 상급에 대한 기대로 인한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포악한 압박과 재산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갔는데, 때로는 경기장에서 사자와 곰 같은 야수 앞에 던져지는 일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죽은 뒤의 부활과 천국에서 장차 받게 될 영광스러운 상급에 대한 확신 때문에 내면 가득히 채워지는 거룩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렇듯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의 심령은 거룩한 기쁨으로 충만한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들은 환난 중에도 기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2 이하에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치기를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신앙적 핍박뿐 아니라 삶의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도 낙심치 않고 여전히 성령의 위로와 격려를 힘입어서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신앙을 가진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 중에 인내하면서 점점 그 인격이 영글어감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의 성화된 인격의 그릇 안에 놀라운 축복을 이 땅에서도 주시며,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그러한 시련과 역경마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섭리인 것을 받아들이며 낙심치 않고 그 시련을 당하되 여전히 기뻐하면서 환난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기쁨을 본인의 삶에서 직접 경험하며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착고에 채인 채 갇히게 되었으나 슬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감옥에 찾아오셔서 지진을 일으키시고 감옥 문이 열리고 발을 꽁꽁 묶고 있던 착고가 풀려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밤 감옥을 맡은 간수장과 그의 식구들 전체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도 기뻐하며 찬송하였을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인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기뻐하라고 써 보냈습니다. 빌립보서 4:4 말씀에 이르기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르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인에게 하나님께서도 복을 더해주십니다. 시편 37:4 말씀에 이르기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를 인하여 핍박 중에도 기뻐하며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여전히 신앙적 소망 가지고 기뻐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기쁘게 하려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느헤미야 8:10 말씀에서 이르기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그의 삶에 힘을 주십니다. 활력과 생기를 주십니다. 이렇게 활력이 충만해진 사람은 본인만 생기있게 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생기를 줍니다. 기쁨과 활력을 나눠줍니다. 그리하여 참 신앙인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활력소가 됩니다. 행복 비타민을 나눠줍니다. 그래서 우울한 자, 슬픈 자, 낙심한 자, 지친 자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회복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자, 즐거워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기쁨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22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 곧 기쁨과 즐거움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위로부터 부어지는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즐거움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사야 35장에 보면 장차 메시야 시대 곧 우리 주님과 성령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날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와 즐거워하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또한 로마서 14:1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참 신앙을 가지고 또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그 단적인 열매로서 기쁨과 희락이 충만해지는 열매를 반드시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기쁨을 얻도록 주님에게 믿음으로 딱 붙어 있읍시다. 성령으로 우리 심령이 충만하도록 늘 깨어 말씀과 기도 가운데 지냅시다. 그러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은 환경과 여건을 초월합니다.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여건과 환경을 뛰어넘어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속 깊은 곳에서 샘솟듯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즐거움과 행복이 너무 크기에, 죄 사함을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너무 크기에, 작고 사소한 일로 인하여 불편함이 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좀 있다 해도 그러한 장애 때문에 마음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삶에 실패를 맞고 때로 인간 관계에서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 다 망가진 것 아닙니다. 그러한 일을 겪었어도 여전히 우리는 부자입니다. 근본적인 잣대에서 이미 우리는 성공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잃는다 해도, 아무리 큰 것을 손해본다 해도 우리가 슬픔에 빠지기에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반열에 선 자요 천국을 상속한 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잠시 어려운 일을 겪는다 해도 설사 신앙 때문에 순교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면 주님께서 남겨놓으신 고난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기에 더욱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참 신앙인으로 기뻐하며 살아감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러한 신령한 기쁨, 영적인 기쁨, 내적인 기쁨을 가지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이러한 기쁨이 어디론가 새나가고 마음이 푸석푸석하고 메마르고 냉랭하고 공연히 슬프고 외롭고 눌려 있다면, 이것은 지금 영적으로 아픈 것입니다. 병이 든 것입니다. 영적인 감기와 독감과 질병에 걸린 것입니다. 속히 치료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과 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는 곳마다 잔치가 벌어져서 늘 기뻐했었던 것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 계신 곳에는 창기도, 세리도 모여서 함께 먹고 마시며 잔치를 누렸습니다. 이처럼 주님 가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쁨과 행복과 만족으로 인하여 날마다 마음으로 잔치하며 즐거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사울 왕은 성령을 받았으나 하나님 대신에 권력을 더 사랑했고,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령의 근심거리가 되었고 그는 마침내 성령이 떠나고 공황장애, 불안, 두려움, 공포에 의하여 스스로 쫓기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찾아와 그 마음을 사로잡고 그는 망하는 길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대신에 이 세상 권력을 더 사랑하면 망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면 망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삼손은 성령을 받았으나 나중에 이방 여인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 그의 내면에 있는 성령은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빈 마음을 더 채우려고 육신적인 사랑을 추구했고 결국은 망하는 길로 내려갔습니다. 세상 것들은 잠깐은 즐거움을 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마음을 빼앗고 몰두하게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마음이 도리어 공허해집니다. 허전해집니다. 마음의 참된 기쁨은 사라집니다. 세상 노래, 세상 드라마 등 육신적인 즐거움은 도리어 마음을 텅 비게 만듭니다. 거칠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것들은 성령의 참된 즐거움과 행복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마음의 참된 기쁨의 전대에 구멍을 내는 것들입니다. 세상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육신적인 드라마, 영화, 음주 등을 일체 피하십시오. 그것들은 성령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막는 것들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차분하게 읽고 묵상하며 늘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갖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믿음의 성도들끼리 즐거이 교제를 나누는 것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내면에 참된 양식이 쌓이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신령한 기쁨과 즐거움이 안으로부터 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환경과 여건을 초월한 만족과 기쁨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지켜주며 활력과 생기를 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당시 세상이 팍팍하고 사는 게 힘들고 핍박까지 있었지만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였습니다. 대부분 노예 출신 성도들이 많았으나 그들은 그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날마다 즐거워하며 박해를 받아도 그 얼굴에 미소와 마음의 행복과 상냥한 말과 관대하고 용서하며 축복하는 삶의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다시 한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우리가 얻게 된 그 놀라운 구원의 값진 은혜들을 마음 깊이 늘 되새기는 자가 됩시다. 영원히 멸망당할 우리를 만세 전에 택정하시고 부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홍 같이 붉은 죄를 영원히 속량하사 깨끗하게 해주신 은혜를 기억합시다. 우리를 위하여 저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신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합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런 저런 시련과 환난을 당할 때에도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사 함께하심으로써 불과 물을 통과할 때에도 함께 건너게 해주심도 기억합시다. 장차 우리가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그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떨지 않고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주심을 인하여 담대할 수 있는 은혜 베푸심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바 이 땅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기도에 응답주시며 우리들에게 때를 따라 공급해주심으로 우리를 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져주신다고 약속해주셨으니, 이 약속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슬퍼하거나 낙심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잠깐이라도 생활의 염려와 인간관계의 고통 때문에 잠시 근심과 슬픔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장 털어내버리시고, 다시금 영적인 기쁨과 즐거움으로 여러분 심령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백만 장자가 몇 만 원 담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세상 다 끝난 것처럼 근심하며 슬퍼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영적으로 백만 장자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그마한 실패와 고난과 역경과 시련과 박해를 만났을 때 슬픔, 낙심 등이 우리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