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시집 ≪절대 고독≫ (1970)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2-
작품 감상의 길라잡이
아버지의 사랑과 외로움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가족 간의 사랑과 희생이라는 평범한 삶의 진실을 평이한 시어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어버이의 사랑과 희생을 노래하고 있는 우리 시가들이 대부분 어머니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이 시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하여 관조와 고독이 대부분인 김현승의 다른 시들과는 달리 이 시는 가족을 위해 말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제시하여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에서 아버지는 각자 다른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자식을 기르는 아버지로 돌아오면 모두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생활한다는 내용을 노래한 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집과 같이 거룩한 존재이다. 집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 곳에 주소를 두고, 이름을 적을 뿐 아니라,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집은 언제나 한 곳에 우뚝 서서 자리를 지킨 채 말이 없다. 집이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아버지도 항상 말없이 사랑과 근심으로 자식들을 돌보고 앞날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고독한 존재이다. 식구들을 위한 매일의 수고와 삶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풀어야 하는 외로움으로 인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겉으로는 태연해 하거나 자신만만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무감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존재이다. 단순히 아버지로서의 권위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들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아버지는 잠시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렇게 힘겨운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속으로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아버지의 깊은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 곧 자식들의 올곧은 성장과 순수뿐이다. 비록 세파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사는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소망대로 자식들이 순수하고 올바르게 자라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 모든 고독과 노고를 깨끗이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시의 주된 모티브는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기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존재이며,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때로는 아버지 자신이 고통과 고독에 빠지더라도 가족에 대한 희생과 사랑의 정신만은 변함이 없다. 이 시는 평범한 일상적 시어로, 가족 내에서의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와 역할을 반복과 열거의 기법을 사용하여 구체화(희생, 사랑, 고독 등)하고 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한 시인의 인생관을 내포하고 있는 이 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고독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인간들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김현승은 남달리 고독의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를 끈질기게 추구한 시인으로, 이 작품 역시 '아버지의 고독'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좋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3-
▦ 내용 고갱이 ▦
1. 성격 : 사색적
2. 어조 :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
3. 표현상 특징
(1)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한 시인의 인생관을 내포
(2) 일상적인 언어를 통하여 가족에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줌.
(3) 반복, 열거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희생, 사랑, 고독 등)을 형상화함.
4. 제재 : 아버지
◎ 시의 구성 돋보기 ◎
[1연] 아버지의 존재-분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2연] 아버지의 희생
[3연] 아버지의 사랑
[4연]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자식의 장래를 염려하는 모습
[5연] 아버지의 고독-남몰래 고독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6연] 아버지의 존재
[7연] 고독을 치유 받는 아버지
▣ 시어 깁고 더하기 ▣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① 집 밖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
② ‘바람’은 세파(世波)의 어려운 삶을 의미
*아버지 : 일상적이고 평범한 존재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을 형상화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스런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전전반측(輾轉反側)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시각이 잘 압축되어 있다. 즉 어린 자식들은 아버지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버지에게 어린 자식들이 소중한 존재(삶의 의미)임을 드러낸 것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① 아버지의 꿋꿋한 모습과 나약해 보이는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② ‘눈물’이란, 아버지가 눈물을 자식들 앞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자식에 대한 근심과 걱정, 삶의 괴로움이 술 마시는 모습 속에 어려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감옥을 지키던 사람도/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 집 밖에서의 아버지의 삶. 분주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 아버지의 희생과 고독은 자식들을 통해 위로 받음.
*어린 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 : ① 자식들의 순수하고 올바른 성장
② 아이들을 통해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여 줌.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4-
*때 : ① 부정(不正), 불결(不潔)의 의미가 아닌, 어렵고 고된 삶
↕ ② 세상에 나가 ‘더럽혀진 양심’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오욕(汚辱)’
*피(血) : 자식들이 간직한 이미지->① 아이들의 순수, 순박한 마음, 천진난만함.
② 올바른 성장을 의미. 청교도적인 윤리 사상 반영
☺··· 주제는 바로 ☞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
★ 연구 문제 ★
1. 이 시의 ‘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나는 아이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외롭지 않게 보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였다.
② 혼란스러운 현실이 닥쳐오면 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느끼며 현실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③ 나의 누적된 피로는 아이들이 순수하고 올바르게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깨끗하게 씻어지곤 했다.
④ 나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를 만들어 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했다.
⑤ 중년 시절, 나는 술을 마시며 힘겨운 삶을 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