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에 대한 이론공부를 하다보면 “아이구! 뭐가 이렇게 어려워?”하실 겁니다.
그럴 때는 ‘몰라도 좋다. 그냥 한 번 쭈욱 읽어본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제1회
화자와 어조
강의가 어렵지요?
사실 여기에서 어려운 강의를 않는다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듣기 위해 여러분이 고생할 필요가 없지요. 반복해서 여러분께서 강의를 받으시면 일단 여러분은 시 창작에 대해서만은 대단한 실력을 갖게 되실 것입니다. 화자와 어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화자는 퍼소나(persona)라고도 하는데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시의 화자(話者)'라하구요 그 퍼소나의 말씨, 목소리 즉 시의 어투를 '어조(語調)'라 합니다. 화자와 어조는 시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함께 우리가 시를 쓰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시다싶이 그 화자와 어조에 따라서 시의 전반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시의 주제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1.화자란 무엇인가
먼저 권영택, 최동호 역의 『문학비평용어사전』을 보면 퍼스나는 고전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하는 "가면"을 가리키는 라틴어였다. 여기서 극의 등장인물을 지칭하는 "극의 퍼스나" 라는 용어가 생겨났으며, 결국에는 영어 작품에서 개인을 가리키는 "퍼슨(person)이 유래하게 되었다. 최근의 문학논의에서 "퍼스나"는 흔히 설화체 시나 소설의 1인칭 서술자, 즉 "나"에 대해 적용되거나, 혹은 서정시에서 우리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서정적 화자에게 적용된다. 고 되어 있습니다.
또 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을 보면 "문학은 그냥 쓰인 채로 있는 글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이 특정한 어조로 특정한 사물에 대하여 특정한 사물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을 보면 시 역시 문학의 한 갈래인 이상 담화형식을 갖게 되는데, 시 속에는 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화자라 하는 것입니다.
황동규님의 <楚家(초가)>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요새 무서워요. 모든 것의 안만 보여요. 풀잎 뜬 江에는
살없는 고기들이 놀고 있고 江물 위에 피었다가 스러지는 구름
에선 문득 暗號(암호)만 비쳐요. 읽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혀
짤린 꽃들이 모두 고개들고, 不幸(불행)한 살들이 겁없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달아난들 추울 뿐이에요. 곳곳에 쳐
있는 細(세)그물을 보세요. 황홀하게 무서워요.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여성입니다. 여성은 시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탈(가면)중에 하나입니다. "황홀하게 무서워요"라는 역설까지 동원된 이 시의 화자는 주위의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회의와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런 공포감은 여성화자가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을 관람할 때 사건이나 의미 못지않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인공을 보고 극장에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등장인물이 극중의 사건에 잘 어울리지 않거나 주제와 동떨어진 개성이나 정체성을 보여줄 때 아무리 좋은 내용과 주제를 지녔다 하더라도 작품은 성공하기 어렵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시의 화자 역시 시의 다른 요소들과 긴밀하게 어울리고 일체가 되어야만 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영랑. 김소월, 한용운시인 등의 시에서는 여성 화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오히려 여성화자가 나타남으로 그들의 시가 성공하게 된 것은 역시 이 여성 화자가 시적 분위기라든지 주제, 시인의 태도 등을 잘 살려 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시라는 것 안에 따로 시인의 목소리 말고 무슨 주인공이 있느냐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 속에는 그 시인 자신이 되었던지 이처럼 다른 사람이 화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황동규는 분명 남자 시인입니다.
나희덕님의 <사표>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희덕(羅喜德, 1966년 ~ )은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평론》의 편집자문위원. 1998년 17회「김수영문학상」, 2001년 12회 「김달진문학상」, 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부문, 2003년 48회「현대문학상」, 2005년 17회「이산문학상」, 2007년 22회「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날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창밖으로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하늘에 대고 몇 장이나 사표를 썼다.
갓난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두고 나와
남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심정.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눈망울을 뒤로 하고
내가 밝히려고 찾아가는 그곳은
어느 어둠의 한 자락일까
이 어둡고 할일 많은 곳에서
師表(사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사표를 쓰게 된다면
그 붉은 노을을 언제 고개를 들고 다시 볼 것인가.
하늘에 대고 마음에 대고 쓴
수많은 사표들이 지금 눈발 되어 내리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눈길을 밟고 따라와
교실문을 가로막는데
나는 차마 종이에 옮겨적을 수가 없다.
붉게 퇴진하는 태양처럼
장렬한 사표 한 장 쓸 수는 없을까
이 시 속의 화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선생님입니다. 날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출퇴근을 하느라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승으로서의 사명감이 투철한 선생님이기도 하구요.
아마 여러분께선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이미 마음속에 한 편의 영상이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 영상 속의 주인공이 바로 퍼스나, 화자인 것입니다. 이 시 속에는 지난 시간에 배운 아이러니 중의 펀이 있는데 아시겠습니까?
열째 행의 사표는 학식과 인격이 높아 세상 사람의 모범이 되는 일, 작게는 선생으로서의 모범이 되는 일이구요. 열한 번째 행의 사표는 사직한다는 뜻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두 개의 똑 같은 사표란 낱말을 병치함으로 주제를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2. 화자와 시인
시에는 화자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습니다. 의외로 화자의 개성이나 특성을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작품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숨겨져 있든 겉으로 드러나 있든 화자가 모든 시에 내재해 있고, 또 모든 시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어조와 운율, 이미지와 정서 등이 그렇듯이 화자도 시의 중요한 구성 원리인 것입니다. 또 시의 화자는 흔히 시적 자아, 상상적 자아, 가상적 자아, 서정적 자아, 서정적 화자 등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자에 대해 주목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화자와 시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 할 것이냐 이질시 할 것이냐. 또 동일시하면 어느 정도나 동일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시 속에서 궁극적인 화자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의 화자와 시인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시인의 개성과 몰개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시는 어떤 장르보다도 시인의 주관적인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기에 시 창작은 곧 '자기표현'으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즉 시인은 시 세계 속에서 자신의 감정, 관념, 정서, 태도 등을 담아내고 자신이 주관적으로 보고 느끼고 발견한 사물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의 화자를 시인 자신과 동일한 인물로 간주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독자들이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시 속에서 만나는 화자와 그의 목소리를 시인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나, 한 편의 시를 창작할 때 내 세우는 화자가 곧 그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는 시인 개성의 표출이요, 시의 화자는 곧 시인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고은님의 <잉크>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두 살배기가
내 책상 원고지에
김형균이가 찍어다 준 원고지에
잉크를 몽땅 엎질렀다
글 쓴 원고지 흩어 거기에 엎질렀다
너 이놈!의 이까지 튀어나오다가
그 호통 앗차 하고 숨 돌려
내 얼굴 환한 웃음으로
잘했다 잘했다 하고 얼러주었다
이건 뭐
아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잘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애써 쓴 글
그 글이 잉크로 다 지워져 없어졌다
그 廢止(폐지)
그 소멸 지나서
나는 다시 쓰리라
죽음 없이 어이 새로우랴
이 땅을 실컷 노래하리라 밤이여
두 살배기 차령이가 이것을 가르쳤다
둥기둥기
새 세상 노래하리라
둥기
고은의 이 시에는 상상력에 기초한 예술적 가공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기억에 의해 체험을 그대로 밀고 나가며 그로부터 깨닫는 삶에의 지혜와 각오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인 나는 문필가로서 시인 고은 자신인 것은 우리 모두가 금방 알아 챌 수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일인칭 화자로 드러나 있는 그는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면모와 다짐을 아무런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늦둥이로 얻은 딸 두 살배기 차령이가 원고지에 잉크를 엎지른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시가 이루는 정경은 환히 손에 잡힐 듯합니다. 그 일로 하여 "죽음 없이 어이 새로우랴 "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화자의 육성으로부터 자전적 인물로서 시인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 독자들로서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이렇듯 시인과 화자와 시인이 동일인물로 설정되는 것이 개성론입니다.
김남주님, <봄날에 철창에 기대어>를 읽어보겠습니다.
(전라남도 해남 태생으로 전남대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3선개헌과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1973년 국가보안법 혐의로 복역하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이후 〈진혼가〉등 7편의 시를 《창작과비평》에 발표하여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1992년 제6회 「단재상」문학부문상, 1993년 제3회 「윤상원상」, 1994년 제4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문학 활동 이외에도 전남·광주 지역에서 활발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였다. 1978년 재야활동 동지인 박광숙과 결혼하였다.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다시 징역 15년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84년 첫 시집 《진혼가》를 출판하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석방되어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상임 이사를 맡으면서 활발한 문학 활동과 사회참여 활동을 병행하였다. 창작 이외에도 프란츠 파농, 파블로 네루다 등의 외국의 진보적인 문학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하였다.
수감 후유증과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운명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 군이 있다.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되었다. 2000년 그의 시에 곡을 붙인 안치환의 헌정앨범 《Remember》가 발매되었다.)
봄이면 장다리밭에
흰나비 노랑나비 하늘하늘 날고
가을이면 섬돌에
귀뚜라미 우는 곳
어머니 나는 찾아갈 수 있어요
몸에서 이 손발에서 사슬 풀리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요 우리집
그래요 어머니
귀가 밝아 늘상
사립문 미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목소리를 듣고서야 자식인 줄 알고
문을 열어주시고는 했던 어머니
사슬만 풀리면 이 몸에서 풀리기만 하면
한달음에 당도할 수 있어요 우리집
장성 갈재 넘어 영산강을 건너고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영암이라 월출산 천왕 제일봉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 찾아갈 수 있어요
조그만 들창으로 온 하늘이 다 내다뵈는 우리집
이 시인의 집은 전남 해남입니다. 그렇게 반국가혐의로 핍박을 받던 시인이지만 지금은 군에서 생가를 복원한다고 하니 참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요.
아무튼 여기에서 화자는 옥중의 수인으로 나옵니다. 그 감옥 안에서 고향과 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화자가 시인 자신이 아닌가하게 됩니다. 또 고향 해남을 향하듯 장성 갈재, 월출산 천왕봉을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화자와 시인은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동일 인물입니다. 바로 화자의 개성론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