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 2024년 6월 14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빈집
김정민
뒤꼍의 대나무 뿌리 구들장을 장악하고
들락날락 바람이 돌쩌귀 빠진 문짝을 열고 닫던 집
임종도 없이 죽어버린 괘종시계를 떼 내고
포클레인 버킷을 들어 올려
장승처럼 지켜선 용마루를 누른다
꿈 버무렸던 흙벽도, 서까래도
병색 짙은 신음처럼 무너진다
게으른 골목 깨우던 워낭소리 쪽마루에 걸쳐두고
뻐꾹 소리에 피곤 달래던 아버지의 그림자
기와, 연목, 대들보에 매달려 버팅기다 내처진다
‘원룸 두 동 지으면 끝내주겠다’
평평하게 땅을 고른 포크레인 남자의 말끝에
언뜻, 오빠 얼굴에 미소가 번졌던가
마당가에 쪼그린 아버지, 엄동설한에 어디로 가시나요
이승과 저승을 잇는 속울음
뿌연 먼지 속에 구덩이를 파는데
♦ ㅡㅡㅡㅡㅡ 어떤 집이든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돌보지 않으면 어느새 폐옥이 되고 만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로 비워져 있던 집이다. 주인 없이 홀로 늙어가는 집이다. 마냥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헐기로 한 모양이다.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이든, 평평하게 고른 땅이 돈으로 바꿔질 것이다.
멈춘 지 오랜 괘종시계가 떼어지고,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집이 사라지는 중이다. 오빠는 원룸 두 동을 떠올리며 그저 흐뭇하기만했을까. 용마루와 기와, 연목, 대들보와 서까래가 포클레인의 위력에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인의 속울음을 알 것 같다.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 같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진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첫댓글 교수님의 평론 덕분에
시가 너-- 무 좋아진듯 합니다 ㅎㅎㅎㅎㅎㅎ.....
오랜 지병으로 좋은 시간 누리지 못한 아버지
시간이 지나도 아픔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네요
아버지의 체취가 첩첩이 묻어나는 고향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 찡하게 전해오는 시였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집도, 사람도, 생활 환경도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