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4년 6월 21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다음에
한명희
물의 힘으로 물풀들은 떠 있고
흙의 힘으로 나무들은 굳건하다
별들이 어둠에 기대는 것처럼
잠시 어둠 속으로 숨기도 하는 것처럼
사실
무지개도
하늘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기대어 쌍무지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여기에 기댄다
다음에
다음엔 꼭
♦ ㅡㅡㅡㅡㅡ 우주의 어떤 존재도 대상과 맞물려 있다. 물이 없으면 물풀이 없고, 흙이 없으면 나무도 없다. 밤하늘이 아니면 별을 볼 수 없고, 빛의 반사로 무지개가 생기듯, 어떤 존재도 대상 없이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시인은 기대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데 사람은 왜 기댈 곳이 없을까? 모든 자연물이 순간순간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데 유독 사람만이 다음에, 다음부터, 다음으로..... 현재가 아닌 다음에 기대는 걸까? 내가 없으면 너도 없고, 우리도 없고 세상도 없다. 지금 살아 숨 쉬는 내가 현재 나의 존재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현재가 다음이고, 미래다. 다음에 기대는 건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