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7절의 '생명체'라는 표현은 '욕망하는 존재'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셨습니다. 욕망 그 자체는 중립적이나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3장에서 하와는 낯선 것을 욕망하게 되어 결핍을 느꼈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일상에서 내가 하는 사소한 욕망이 주입받고 강요당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정하면 욕망들을 다 버려야 할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된 욕망을 찾고 붙잡는다면, 또 물 흐르듯 길을 헤쳐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본래의 욕망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은 쉬지 않고 쥐고 가야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내야하는 임대료는 그곳을 경작하고 노동하고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주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건지시고, 공평과 정의를 임대료로 요구하셨다 들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이 이 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임대료를 내지 않아 쫓겨나는 상황과 자진해서 이탈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저는 어디쯤에 와있는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침 최근에 열왕기하에서 오래 참으신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까지 멸망하게 하심을 읽었습니다. 구약의 역사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통독을 이어가겠습니다.
cf) 그리고 저 다음주는 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월-금에 시험이 있어요. 다음 모임 참석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ㅠ.ㅠ 다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