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도민일보 2024년 6월 28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맨숀을 맨손이라 부를 때
홍혜향
스무 해째 살고 있는 장미맨숀 장미는
벽에 안 피고 월급통장에 꽃이 핍니다
한 달에 한번 쓰윽 지나가는 구름처럼 핍니다
전날 물을 흠뻑 준 싱싱한 장미
25일은 꽃밭의 당도가 올라갑니다
마트로 병원으로 몇 송이 꺾어갑니다
혹한기를 견디는 마지막 숫자
꽃이 필 몇 송이가 남아 있습니다
맨숀을 맨손이라 부를 때
맨바닥에 맨몸 같습니다
헌 집 옆에 새 집이 지어진
로얄맨숀은 올해 내내 분양중입니다
층마다 현수막이 손짓합니다
햇빛 가득한 새집이 부러워 눈으로 들어갑니다
테라스가 있는 고급으로 지어진 맨숀이어서
맨손에 쥐어지지 않습니다
매월 집을 짓느라 늙어갑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주거래 은행 대출이 남아 있지만
내 꽃밭의 당도는 13브릭스
매월 꽃이 피고 집니다
♦ ㅡㅡㅡㅡㅡ 한 달에 한번 월급통장에 꽃이 핀다. 지나가는 구름처럼 꽃은 잠시 피었다진다. 물려받은 재산 없는 도시의 월급생활자는 집 장만하는데 평생을 바쳐야한다고 한다. 대견하고 흐뭇하게 마련했던 집, 스무 해 째 살고 있는 장미맨션은 아직도 갚아야 할 주거래은행대출금이 남아있는데, 새로 지은 맨션 분양현수막에 자꾸 눈이 간다. 비교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행복이라 여길 수 있을 터인데. 층마다 테라스가 있는 고급맨션이 부러운 지금이 맨손처럼 느껴진다. 새로 지은 고급맨션이 동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맨손이다. 새집으로 옮겨갈 상상에 꿈의 당도는 13브릭스, 매월 들어오는 월급통장이 어찌 고맙지 않을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