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회자료 20200426> 성경: 눅 16:19~28 제목: 「교회와 천국」 찬송:
< 도입 >
◉ 의학계를 비롯한 각 계의 전문가들은 코비드-19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앙이었던 흑사병에 견줄만한 것이라는 전망들을 하고 있습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길게는 2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흑사병은 1347년에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때도 가장 큰 피해는 유럽 사람들이 입었습니다. 약 3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2,5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최악의 질병이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도를 빠뜨리지 않고 했다고 합니다. “A fame, peste et bello, libera nos, Domine!(주여, 우리를 기근과 페스트, 전쟁에서 구하소서!)” ‘코비드-19’의 재앙 속에 살고 있는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제가 오늘 성경 말씀을 본문으로 ‘교회와 천국’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코비드-19’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때문입니다. 해외에 나갔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겁니다. 제가 그런 기사와 장면을 접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교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전개 >
◉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인데, 오늘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거지이고, 또 한 사람은 부자입니다. 19절.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매일 친구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이며 즐기며 살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부자가 입은 옷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이라고 했는데, 당시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들만이 입던 매우 비싼 옷이었으며, ‘고운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더 비쌌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거지에 대해서는 20~2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지의 이름 ‘나사로’는 히브리어로는 ‘엘리에셀’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한편 21절에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상에서 떨어진 음식은 먹지 않고 쓸어 담아 버립니다. 불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그렇게 버려진 불결한 음식으로 겨우 연명을 했던 겁니다. 몸은 온통 종기로 인해 헐어서 진물이 납니다. 그곳을 개가 와서 핥습니다.
◉ 그러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후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천국에 갔다는 겁니다. 얼마 후 부자도 죽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고통을 당합니다.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던 중에 거지와 부자의 차이점 중에 두 가지가 눈에 띄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밝혀졌느냐 아니냐?’이고, 또 하나는 ‘죽었을 때 천사들에게 받들렸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름을 밝히기가 부끄럽게 산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거구나’,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와서 모셔가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 표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억지로 끌려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 23~28절은 저승에서의 일입니다. 음부로 가서 고통을 당하던 부자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바로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빌어먹던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부자가 소리칩니다. 24절. 완전히 역전된 상황입니다. 세상에서는 나사로가 부자의 집에서 버려지는 음식찌꺼기를 바라보는 신세였는데, 이제는 부자가 나사로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을 바라봐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지옥은 물 한 방울도 귀한 곳입니다.
→ 그러나 아브라함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25~26절. 이 말은 지상에서의 부유함이 저 세상에서는 고난을, 지상에서의 가난함이 저 세상에서는 위로를 받는다는 단순한 인과응보론적 논리를 가르치거나 ‘부자는 무조건 지옥’, ‘가난한 자는 무조건 낙원’으로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자기가 가진 부와 권세로 허영과 향락을 누리며 산 사람보다는, 너무도 가난하여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됐지만 나사로란 이름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이 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부자는 자기의 소원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는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합니다. 27~28절. 자기는 이미 늦어서 어쩔 수 없더라도 자기의 다섯 형제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서 ‘고통 받는 이곳’, 어디요? 음부, 곧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겁니다.
< 교 훈 >
◉ 제가 오늘 설교 본문으로 정하게 된 게 바로 28절 맨 끝부분에 있는 “…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문장을 역으로 생각한 겁니다. “고통 받지 않는 곳에 오게 하소서!” 천국과 지옥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오늘 이 말씀과 연관지어 표현한다면 ‘가고(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 지옥, 가고(머물고) 싶은 곳이 천국’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외국에 나가 있던 동포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믿음에서 떠났던 사람들과 믿음을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교회로, 신앙인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표상이어야 합니다. 지옥 같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 나눔과 적용 >
◉ 살아오면서 지옥 같은 일을 겪었던 때와 천국 같은 일을 겪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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