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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故최일환 목사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효자 효부는 잘되게 하십니다.
창세기47:1~12
2016년 5월 8일 장안중앙교회 어버이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설교: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의 어버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모공경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져 가정 질서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의 인간됨의 기본 윤리인 효의 원리가 파괴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현대 사회를 “가정파괴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원리가 효(孝)입니다.
현대사회에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는 가정공동체에서 효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효가 회복되면 가정에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공교육에서는 대학입시, 취업위주의 교육이 대세다 보니 윤리나 도덕, 효에 대해 깊이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는 “성산 효 대학원 대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를 세운 목사님은 말하기를 “효가 이루어지면 가정이 회복된다. 그러기에 교회가 효를 갈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효자 효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시길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효자 하면 누가 생각납니까? 효부(孝婦)하면 금방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라는 여인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런데 효자(孝子)는 누굴까 얼핏 생각이 잘 안날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어머니를 모시면서 동생들을 부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봉독한 요셉도 효자 중에 효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이삭도 효자고 다윗도 효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효의 종교라고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조상 제사를 안 한다고 불효 종교라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말씀 곳곳에서 효에 대하여 심각하게 가르치시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출20: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27:16절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1:18절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21절/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잠30:17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출21:15절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구절은 모두 구약성경에서 가르치는 부모 공경에 대한 구절입니다.
불효는 한마디로 어떤 죄라고요? “죽을 죄”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분명하게 교훈합니다.
엡6:1~3절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골3: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이 외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부모 공경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살고 있나요?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나요?
오늘 어버이주일에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요?
오늘 저는 봉독한 본문과 두 군데를 더 살펴보면서 효자효부, 세 사람을 살펴보려 합니다.
1. 요셉의 효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다른 처첩들의 돌 봄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어미 없는 불쌍한 아들이니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짠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배다른 형들이 요셉을 시기 질투했습니다. 그러다가 17살에 형들의 시기질투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기막힌 연단과 섭리로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요셉이 아버지 노후를 봉양하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요셉의 효도는 어떤 효도였나요?
1) 요셉은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그 10명의 형들, 그들의 직업은 양과 소를 기르는 목축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하는 사람들을 천민계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애굽에서 10여년 노예로 살았던 요셉이 그런 문화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애굽에 찾아온 아버지 야곱을 바로 왕에게 당당하게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직업을 당당하게 소개합니다.
요셉은 국무총리로서 자기의 부모가 천민취급당하는 목축업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애굽 귀족과 정치인들에게 업신여김과 창피를 당할 우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출신환경과 자기 부모를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십니까? 혹시 자기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녀가 아닙니까?
우리의 부모님들 세대는 여러 가지 환경이 여의치 못한 세대였습니다. 일제의 통치하에서 자라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6,25라는 엄청난 전쟁을 겪으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견디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인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녀들은 부모가 글을 모른다고 창피하게 여기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초라할 몰골, 부모의 초라한 직업, 그것이 부끄럽다면 과연 그런 우리는 누구입니까?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모습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까지의 삶이 누구의 은혜로 된 것일까요?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는 자신을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요, 더 나아가 그 부모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창피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그런 자식을 어찌 하나님이 복 주시겠으며 어찌 은혜를 주시겠습니까?
에베소서6:2절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셨습니다. 네가 잘된다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보세요.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네가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망하고) 일찍 죽게 되리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길 축원합니다.
2) 요셉은 형제들과 화목을 이루는 자녀였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의 최고의 효도가 무엇일까? 아마도 그 중에 하나는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고 서로 돕고, 서로 이끌어 주며,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요셉의 형들은 과거에 요셉에게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못된 짓을 했습니다. 동생을 잡아 죽이려 하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 고통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죄를 용서 할 수 있습니까?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간지 13년, 풍년7년, 흉년2년 도합 22년을 감쪽같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은 것을 숨겼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모습을 보세요, 요셉은 그들을 용서합니다.
창45:5에 보면 요셉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그들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전혀 아끼지 않고 베풀어줍니다. 한마디로 요셉은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의 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형제화목을 통해 부모에게 효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형제간에 불편한 사람은 없습니까? 물질문제로, 유산문제로, 또는 예의문제로 서로 불화관계에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는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설사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불효입니다. 부모 앞에서 최고의 효도는 형제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요셉은 부모를 봉양하는 자녀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노후를 공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힘들게 했던 형들과 동생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창47:12절을 보세요.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여기 “봉양”란 단어를 다른 성경에서는 “부양”이라고 했고 “공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제공하다” “양육하다” “채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부모님을 봉양해야 합니다. 먹고 살 수 있도록 노후를 모셔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요셉의 이런 효도의 결과가 뭡니까? 그는 잘되는 사람이었습니다.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그의 나이 39세 때 아버지를 만나 모십니다. 그때 아버지는 130세였고 그때부터 17년을 애굽에 거주하고 147세에 죽어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 말은 요셉이 애굽에서 최소 26년 이상 총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애굽 왕이 그를 인정했고 그를 신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110세를 살았는데 얼마동안 총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도 애굽의 온 나라가 그를 애도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효자는 /반드시 잘됩니다./
2. 유다의 효도입니다.
야곱의 4번째 아들 유다도 효자입니다. 그는 야곱의 4번째 아들이면서도 메시야의 혈통을 이어가는 장자권을 가진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4번째 아들이면서 야곱의 장자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들 장자 르우벤이 아버지의 침상을 범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세겜 성에서 살인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거룩한 성례인 ‘할례’를 이용해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였었습니다. 그래서 4째 아들인 유다가 장자가 되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원인이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효도’라고 믿습니다. 그는 요셉이 국무총리인 줄 모르고 애굽에 곡식을 사려고 갔을 때 막내 베냐민이 금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붙들리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그 사건은 요셉이 그들은 시험한 것입니다.
그때 유다가 나서서 막내를 변호하며 애원합니다. 창44:30절 이하를 보세요.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효가 뭔지를 보여 줍니다. 유다의 효도는 어떤 것일까요?
1) 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는 자기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고는 아버지에게는 죽었다고 속인 문제로 아버지가 겪었던 고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막내 동생 베냐민까지 애굽의 노예로 붙들리면 그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대신 잡아두고 동생은 보내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세요.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그는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이것이 효도입니다.
2) 유다는 동생을 구원하는 구원자였습니다.
33절을 보세요.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베냐민이 도둑질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하며 가나안으로 갈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차라리 노예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애원합니다. 왜죠?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우리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 애원하시듯 유다도 동생을 구원하려고 중보자로 나섰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장자 르우벤은 어디 갔나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서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딸린 자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도 딸린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표자로 나서서 구명을 합니다. 이것이 효자의 모습니다.
여러분은 형제자매가 다 구원 받았나요? 아직 형제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사단의 노예인 것을 믿습니까? 그들이 영원한 지옥에 끌려가는데도 그가 어찌되든 나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구원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엄청난 불효입니다.
내 형제 자매를 남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것이 효도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가신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입니다. 유다는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나요?
유다의 간절한 중보는 요셉과 상봉의 결과를 만듭니다. 요셉이 그 유다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자기를 들어냅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런 효도의 결과가 뭡니까?
하나님은 야곱의 장자권을 유다에게 줍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야곱을 통해 엄청난 축복을 누립니다. 창49:8절과 10절을 보세요. 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기 규(圭)는 Scepter로 "홀" "왕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유다가 왕권을 갖는 장자라는 것이고 그러기에 메시야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효자는 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효자는 /반드시 잘됩니다./
3. 룻의 효도입니다.
효자(孝子)도 잘되지만 효부(孝婦)도 잘됩니다. 효부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룻입니다. 그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남편이 죽었음에도 시어머니를 버리고 자기 족속에게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같은 처지인 동서(同壻)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고부간의 관계를 끊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따라갑니다.
그녀의 효도는 어떤 것인가요?
1) 시어머니와 같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어미님이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룻1:16절을 보세요.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러면서 동시에 시어머님을 죽을 때까지 봉양하겠다고 합니다.
룻1:17절을 보세요.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것이 효도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니 절대로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 이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그녀는 원래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님의 믿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효도 중에 최고의 효도인 것입니다. 아멘?
2) 시어머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여인들은 자기도 시어머니 될 것이면서 시어머님을 제일 힘들어 한답니다. 그래서 시자가 들어간 시금치도 싫어한답니다.
그런데 룻은 그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고향과 동족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거기서 홀시어머니를 봉양합니다. 그러다가 ‘보아스’라는 유력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기질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한 것을 시킵니다. 룻기3:4절을 보세요.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지요? 모르시는 분은 오늘 룻기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기 며느리가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음밀한 일을 시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음녀(淫女)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간음(姦淫)하는 여인으로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 일을 그대로 다 행합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효도(孝道)란 그저 용돈이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함께 봉양하는 것이고 부모님을 무시하지 않고 그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런 효도의 결과가 뭡니까? 잘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보아스의 부인이 됩니다. 그리고 자손을 나았는데 그가 ‘오벳’이고 그 오벳의 아들이 ‘이새’이고 이세의 아들이 ‘다윗’입니다. 그러니 룻은 다윗 왕의 종조모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왕가(王家)의 여인이 된 것입니다. 결국 그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합시다. /효부도 /반드시 잘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옛날 속담에 “효자는 하늘에서 난다” 했습니다. 여기 하늘은 하나님입니다. 이 말은 효자 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만이 참된 효를 할 수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로서 보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효자, 효녀는 잘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잘되게 하십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