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4년 7월5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홍영철
크고 무거운 돌 하나를 만났다
돌 속에서 사람을 보았다
돌 속에 갇힌 사람을 꺼내고 싶었다
끌과 정과 망치를 집어 들었다
돌에서 사람이 아닌 돌을 깎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손도 얼굴도 벌겋게 물들었다
돌은 점점 작아지는데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돌 속에 갇힌 사람을 꺼내야 했다
끌과 정과 망치를 놓을 수 없었다
아직도 돌에서 사람이 아닌 돌을 깎고 있다
그가 돌 깨는 소리 쟁쟁쟁 허공에 퍼진다
이제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 ㅡㅡㅡㅡㅡ 석공이나 조각가들은 망치와 끌로 돌을 다듬어 조각이나 조형물을 만든다. 사람은 일생 몸과 마음과 생각을 깎고 다듬어 자신을 만든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따로 움직이는 사람이 자신의 실체를 알고 다듬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어느 날 문득 크고 무거운 돌처럼 단단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어떤 개념 속에 갇힌 자아를 깨트려 보지만 ‘날카로운 조각들이 사방으로 틔’어 상처를 낼뿐이다. 겉모습만 보는 남들은 알 수도 없고, 또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내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한순간, 찰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나’가 있다. 자신을 다 꿰고 있는 ‘나’는 정작 나를 모르고, 생각이 또 생각을 만든다. 아집일지, 자아일지 모를 내면을 깎고 다듬을 ‘끌과 정과 망치를 놓을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내면의 틀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인 것이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각각이 아니듯 ‘나’는 그저 ‘나’일 뿐인데....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