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인가?
최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데 대해 비난이 많다. 야당은 장외 투쟁까지 나서고 있다.
여당은 그동안 야당의 태도로 보아 원만한 찬반투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강행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합의가 안 되는 경우에도 절대로 표결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야당은 여당이 표결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회의장 출입을 봉쇄하고 의장석을 점거 하였다. 여당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으로 최근에는 국회에서 당연한 행사 같이 되어버렸다. 1989년 이후 야당의 반대로 헌법에서 정한 예산의결 기한인 12월2일 이내에 예산안이 통과 된 것은 1992년, 1994년, 1995년, 2002년, 4회에 불과하고 그 외에는 모두 헌법의 기한을 넘겨 의결하였다. 국회부터 헌법을 안 지키는 것을 예사로 하고 있다. 법정기일을 지키기 위해 강행처리 할 경우 언론이나 국민은 여당이 소수를 위해 아량을 베풀어야 하고, 야당도 물리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이라고 양비론(兩非論)을 편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 정치에서 의견이 대립되어 도저히 합의가 안 될 때 표결하여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은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해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야 간에 의견이 다를 때 표결하여 다수결로 해결하는 것은 다수의 횡포라는 인식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만 중요하고 다수의 의견은 무시되어도 괜찮은가? 어느 정당이 다수당이라는 것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는 것은 다수당이 책임지고 정책을 추진하라는 뜻이다.
현재와 같이 소수당이 물리력에 의해 표결을 막는 관행이 허용된다면 다수의견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70% 국민이 찬성하고 30%가 반대하는 정책의 경우에도 추진이 안 될 것이다. 미국과 FTA 협상의 경우 대다수의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 야당이 잘못되었다는 자동차 협상의 경우에도 현대, 기아 등 국내 자동차 업체는 현행 협상 결과가 국내업체에게 유리하므로 빨리 FTA 협상이 발효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야당은 FTA 협상 비준을 물리력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야당은 왜 표결하는 것을 막는가? 찬성하는 국민의사는 무시되어도 괜찮은가? 이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미국과 같이 일정한 경우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 진행 방해)를 허용하여 소수당이 충분히 의견을 표시할 기회는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경우 어떤 정책에 대해 첨예하여 대립되는 경우에도 충분한 토론 후에는 표결로 결정한다. 표결 자체를 소수당이 폭력으로 막지는 않는다. 미국의 의료개혁법안 경우에 야당인 공화당이 극력 반대하였지만 장기간 토론 끝에 최종적으로는 표결하였고, 그 결과 여당인 민주당 의도대로 의결 되었다. 금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다시 법안을 고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물론 표결을 통한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다수결에 의한 표결 강행을 비민주적으로 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책임 정치에도 맞지 않다. 선거를 통해 집권당이 된 정부, 여당은 선거를 통해 위임 받는 정책을 소신껏 추진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원만한 합의만 강조하면 소수당에 의해 발목이 잡히어 위임받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수당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국민은 다음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다수결의 원칙을 부인하고 물리적으로 표결을 봉쇄하는 관행을 묵인하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과거 유신독재 또는 군사정권 시절 정통성이 약한 정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하는 과정에서는 물리적인 반대가 정당성이 있었다. 당시에는 민주적인 절차로는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정통성 있는 정부이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시가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으므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표결을 막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의회선거, 보궐선거 등 국민들이 의사표시 할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혹자는 한나라당도 야당시절에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악순환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야당도 다음에는 여당이 될 수 있다.
국민이 원만한 합의만 강조하면 소수당은 다수당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무조건 반대부터 할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도 다수당이 더 비난 받는다면 야당이 타협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의 입장에서는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으므로 항상 야당에 끌려 다닐 수는 없을 것이므로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폭력과 날치기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 제도 등을 보완하여 소수 의견반영의 기회는 확대하되, 최종적으로는 표결로 결정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폭력으로 의사진행 등을 방해하는 행위도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 선사연 칼럼 전체 목차와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십시오. → [선사연 칼럼] |
필자소개
최종찬 ( jcchoijy@hanmail.net )
(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조달청 차장, 기획예산처 차관,
(전) 건설교통부 장관, 대통령 정책기획 수석비서관,
(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현)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저 서
최종찬의 신국가개조론, 매일경제신문사, 200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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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바탕의 선거에서 선출된 대표들은 어떻게 봐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