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7.水. 비는 그치고 미세먼지는 멈추고 그리움도 가리고
06월2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대비주기도는 오후2시부터 시작합니다. 점심공양을 하고 두 시간 이상을 어떻게 보내나 생각하지만 그게 글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누다보면 어느 새인가 오후1시3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해우소에도 다녀오고, 입안도 행구고, 세수도 해서 정신을 맑게 돌려놓습니다. 그리고 돌계단을 저벅저벅 걸어 법당으로 올라갑니다. 법단의 촛불을 켜고, 좌복을 깔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좌복 위에 단정히 앉습니다. 사실 이 순간이 가장 경건하고 장엄한 생각이 드는 장면들입니다. 도반님들과 주지스님이 법당으로 들어오고 대비주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발심자경문을 절반쯤 읽고는 신묘장구대다라니로 접어들었습니다. 원래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108독 염송하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2시간동안 염송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은 빨리 읽으면 1시간30분도 걸리고 천천히 읽으면 4시간도 걸리지만 역시 누가 읽고 있는지, 왜 읽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읽는다면 더 좋은 대비주 기도가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초발심자경문을 법당 바닥에 놓고 읽다가 좀 더 집중을 하기 위해 두 손으로 가지런히 들고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졸음이 살짝 들이밀었습니다. 처음에는 먼 치자꽃 향기처럼 밀려와 이내 어둠한 머스크향의 우울하고 깊은 나락奈落 닮은 기운이 아~ 졸음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뒷머리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저 무심중無心中에 나른하도록 편안한 상태가 오기 전에 미리 정신을 가다듬어야하는데 한번 이런 기운에 휩쓸리게 되면 이 느낌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대비주를 염송하고 있는데도 눈을 감고 있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대비주 염송을 생각으로 하지 않고 입으로만 하고 있는데도 틀리지 않고 잘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고개가 미세하게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졸린 사람들의 특징인 고개 흔들림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하다보니 나도 느끼지 못할 만큼 미미한 움직임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목이 깜빡~ 뒤로 젖혀지는 듯한 기분 때문에 몸이 움찔** 반응하면서 등 척추를 중심으로 하는 예민한 신경망들이 전신으로 쫙 퍼져나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싸아한 찬 기운이 몰아치고 꼿꼿한 등줄기 따라 푸른 정신이 돌아왔으나 잠시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검은 늪 같은 졸음에 슬그머니 머리를 기대고 있었습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염송을 하다보면 어느 대목에서 운율이 맞지 않아 소리가 멈추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을 합니다. 그럴 때면 비몽사몽 중에 입으로 염송을 따라하던 사람도 자연스레 염송을 멈춰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반짝 정신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게 십여 분 이상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들고 있던 예불문집禮佛文集 옆으로 빛의 덩이가 부서지듯 밀려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오른편으로 약간 돌려 그 빛이 무엇인지 보려고 눈썹을 살짝 찡그렸습니다. 벽과 벽 사이의 열린 문 너머로 네모난 빛의 판이 눈부시도록 무수한 빛의 알갱이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모난 하늘이었고, 빛의 알갱이가 압축되어있는 광명光明의 영토領土였습니다.
대비주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지스님께서 오늘은 날이 더우니 법당 앞쪽의 문들을 열어놓고 기도에 들어가자고 해서 법단 좌우에 있는 두 군데 미닫이문들을 열어 놓았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산들바람이 불쑥 밀려들어와 “아이, 시원해!” 하는 보살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앉아있던 법단 우측의 만공스님 진영眞影이 걸려있는 아래쪽 미닫이와 여닫이 이중으로 되어있는 그 문 말입니다. 그 문의 크기만큼, 처마에 가려져서 하늘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옥색玉色의 처마부터 시작해서 선정실禪定室의 격자문짝과 딱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기 좋을만한 낡아빠진 쪽마루와 수월스님 후원의 밤색 뒷 문짝이 열려있는 채로 우직하게 보이고, 그 앞으로 한 평 남짓한 눈부신 토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네모난 공간에 A₄지 다섯 장 두께의 초여름 햇살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깊고 둔한 어둠속에서 눈 시거운 광명光明을 보았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빛이었을 것입니다. 네모난 빛이 나를 천천히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내 온몸이 나선형 빛의 회오리를 따라 공중으로 둥실 떠올라 너른 빛의 바다를 향해 서서히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발을 네모진 빛의 바다 속으로 텀벙~ 집어넣으려고 할 때 드려오던 대비주 염송소리가 슬그머니 끊겨버렸습니다. 내 입안에서 끊임없이 감돌고 있던 대비주 소리도 자연 스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숨을 고른 후 다시 운율을 맞춘 대비주 염송소리가 들려오자 어느새 나도 좌복 위로 돌아와 대비주를 따라 염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네모난 토방위의 빛의 바다는 문 너머에서 살아 움직이듯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번째 신묘장구대다라니 염송은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주지스님의 목탁소리로 가늠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미묘하지만 목탁소리의 박자가 약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염송이 끝나면 이어서 천수경 염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자, 두 시간에 걸친 대비주 기도가 마무리되었지만 오늘 기도는 한 시간가량 걸린 듯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습니다. 대비주 기도가 끝나고 나서도 잠시 동안 좌복에 그대로 앉아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기도 후後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공양간으로 내려와 잠시 쉬었다가 저녁공양을 위해 자리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래봐야 락화보살님, 무진주보살님과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모두였습니다. 지지난 주에는 두 분이 일요법회에 나오셨다고했는데 마치 일요법회가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 바람직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숫자마저 초창기로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식사는 고북 칼국수 집에서 여름 별미인 콩국수로 먹었습니다. 면발이 굵고 쫄깃해서 맛난 검정콩국수를 먹으면서 서울보살님도, 묘은화보살님도, 운현궁보살님도, 길선우보살님도, 무량혜보살님도 함께 자리를 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거사님들도 역시亦是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