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와 승객의 간격
2020.11.27.
한국에서는 당연히 주민등록증이 소지자의 얼굴과 기본 정보, 그리고 지문까지 담고 있는 제일 믿을 수 있는 신분증이다. 그러나, 캐나다나 미국 같은 사회에서 성원의 신분증은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운전면허증이다. 한국 같은 별도의 신분증이 없는(?) 이들 사회에서 운전면허증은 신분증을 대신한다. 그만큼 성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운전면허증을 소유하고 있다.
운전면허증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해서 정부 기관에서 발급해 주는 것이니 이 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운전을 잘 할 수 있다고 보아야 맞지 않을까? 하지만, 재미있게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인 대부분이 자기 차를 소유한 북미에서도 때로는 사정상 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탈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때 부득이 타인의 차에 동승하게 된 우리는 자기가 운전할 때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브레이크도 없는데 괜히 자기 발을 뻗어 브레이크를 누르려고 행동하는 등 불안감을 노출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타인이 운전할 때 이런 불안감을 느낄까? 많은 남성이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기 싫어한다는 것도 사실은 아내의 운전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의 운전 실력에 대한 과신에 기인하다고 봐야 한다. 술을 먹고도 자신의 운전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연로해져서 반응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데도 직접 운전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다. 오죽하면, 본인의 잘못으로 사고를 내고 입원한 운전사들에게 본인의 운전 실력을 물어봤더니 한결같이 자신 운전 능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는 보고도 있다.
이제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이미 사람 운전자보다 10배 이상 안전하다. 현재 자동차 사고 원인의 81%가 운전자 실수이고, 그중에서도 주의산만이 제일의 원인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이런 원인으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자율 주행 자동차는 운전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자동차 소유와 주차 공간의 필요성을 줄이고, 교통체증을 줄이고, 운전 시간을 자유 시간으로 바꿔줄 것이다. 그런데도, 자율 주행 자동차를 상용화하는 데 최고의 걸림돌은 바로 사람의 신뢰이다. 사람들은 자율 주행 자동차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안심하고 타거나 상용화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법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이런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앞장서서 상용화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 정치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만큼 구성원 수가 늘어나면 대표자를 선출해 그들이 집단 공동의 사안을 대신 결정하고 집단을 이끌어 가도록 위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임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다. 타인의 도움과 대리 행위는 결국 이런 정치만이 아니라 우리 삶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 우리가 무인도나 두메산골에 혼자 칩거하면서 모든 걸 자급자족하며 목숨만 이어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무수한 타인에 대한 암묵적 신뢰에 토대에 살아간다.
농업 종사자가 독극물로 오염되지 않는 안전한 식품을 생산하고, 이를 식품 공급자가 신선하게 위생적으로 처리, 공급한다는 믿음이 없이 어떻게 우리는 식품을 구매할 수 있을까? 이발사가 미용사가 이발 도구로 당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면 어떻게 당신이 머리 손질을 편안히 맡길 수 있을까? 죄 없는 시민을 경찰이 해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경찰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빚을 진 사람이 못 갚을 가능성이 크다면 어느 금융기관이 대출해 줄까? 백신이 우리 몸을 감염으로부터 지켜내 줄 수 있다고 믿기에 아파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가?
인류가 이루어낸 진보와 발전은 결국 타인과 제도에 대한 신뢰 속에서 가능했고, 인류의 역사는 이런 신뢰를 제고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아직도 타인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그다지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자동으로 움칠하게 되는 자기에 대한 믿음이 타인에 대한 믿음보다 강한 우리이지만 이는 생명 보전의 본능 때문이라고 치자, 더욱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길이다. 명백히 데이터가 인간 운전자보다 자율 자동차가 월등히 안전하다고 보여주는데 불신을 버리고, 또 한 번 인류의 발전과 편리를 위해 자율 주행 자동차의 상용화를 반길 일이다. 100% 안전한 자율 주행 자동차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개발될 수 없다. 무수한 사고가 나지만, 사람들은 차를 운전하고,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고 생활을 해 왔다. 그런 사람 운전자보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10배, 100배 안전하다면, 운전이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를 운전의 수고에서 해방해 준다면 흔쾌히 그 도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