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4.16>을 기억한다는 건
: 실적과 평가가 중요하니 ‘가만히 있으라?’
세월호는 배의 균형을 잡는 평형수를 버리고 더 큰 이윤을 위해 그 자리에 물건을 채웠습니다.
지금 우리 복지관들도 마땅함을 넣어야 하는 자리에 ‘평가와 실적’ 따위를 채워 넣고 불안한 항해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복지관을 배로 생각해봅니다.
우리 복지관호號가 출항했습니다. 세월호는 균형을 잡는 평형수를 빼고 그곳에 짐을 실었습니다.
많은 수익을 내려고 그랬습니다. 배가 기울었을 때, 평형수가 없으니 복원력을 잃고 침몰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복지관호도 평형수를 넣어야 할 자리에 ‘실적과 평가’만을 넣고 운행하는지 모릅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도우려는 마땅함을 바닥에 채워 실천의 균형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복지관호는 많은 실적을 내려고, 평가 잘 받으려고 이 자리를 비우고 여기에 실적과 평가 따위를 채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외부 지원이나 후원 공모 따위가 줄어 복지관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
그렇게 기울었을 때 복지관호는 복원력을 잃고 침몰합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이루게 도와야 한다는 마땅함이란 평형수를 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회복지사들은 이미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복지사들은 침몰하는 복지관을 버리고 또 다른 복지기관으로 떠나면 됩니다.
일할 곳이 여전히 많으니 적당한 다른 배에 다시 올라타면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복지관의 일방적인 서비스 앞에 주체의식과 역량을 내려놓았던 주민은 배와 함께 침몰합니다.
이웃이 없고 인정을 잃어버린 당사자와 지역사회는
염치와 자존심을 잃고 자기 인생에서마저 소외되어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는 마땅함을 좇아 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평가 최우수 복지관으로 선정되었다고 그곳을 견학하지 않습니다.
서류로는 최우수일지 모르지만, 실제도 그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숫자로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요구받는 평가와 실적 잘 나오는 방식으로 일하면 오히려 마땅함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이제 이렇게 뜻을 잃고 실적만 채우는 방식으로 일하면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성찰하게 한 가르침입니다.
수많은 아이의 목숨 값으로 뒤늦게 이걸 배웠습니다.
더욱 두려운 건, 이 사건 이후에도 복지관의 실천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현실을 탓하는 구명조끼 입은 사회복지사들을 만나는 겁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 주문처럼 이야기했던
‘하나의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마땅함을 좇는 우리 실천도 작아 보이지만, 이런 작은 실천이 모여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달라지고, 제도의 변화까지 이룰지도 모릅니다.
이런 변화의 전제는 ‘하나의 움직임’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내 몫이 있다는 겁니다.
어떠한 바람도 없이 적용조차 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그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배에게 ‘순풍’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상이 없는 이에게는 순풍마저도 폭풍으로 느낄지 모릅니다.
바람(wish)이 없는 이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바람(wind)도 없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아이들을 기억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맡은 일 속에서 어떻게 원칙을 적용할지, 마땅함을 좇아 일할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 실천의 평형수를 생각합니다. 균형 잡힌 세상은 나부터, 내 실천에서 시작합니다.
- '복지관 지역복지 공부노트' 가운데 (2020,구슬꿰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