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도덕은 [인]--근친간의 정애--이 기본이 되어 있으며 그것을 가까이에서
멀리로 미치게 해가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야할 길이라고 하며 그 구체적 내용으로서
인,의,예,지,신 등의 덕목을 설치하고 그것을 수학하여 충분히 몸에 익히는 것을
덕을 쌓는다고 말하며, 덕을 쌓은 사람은 유덕한사람, 즉 [군자]라고 하는것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덕목을 수학하여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 유가에서 말하는 [인]은 곧 [효]를 말하며, [의]는 곧 [충]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노자는 [노자 도덕경]의 맨첫머리에 '세간의사람들(주로 유가를 가르킴)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도는 절대불변의 도가 아니다. 또한 덕목으로 명명되어 있는것은
절대불변의 덕을 이름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유가의 도덕은 인간의 진정한 의지할만한
것이 될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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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항상 변함없는 도가 아니다. 그 이름이 명명될 수 있는 것은
항상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도덕경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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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현상은 모두 매립하는 두 개의 것이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고 서로 상호전화함에 의하여
비로소 성립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이 세계의 현상은 시간, 공간, 물질, 힘, 운동, 질량을 불문하고, 모두 상대적으로만이 존재하며,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학설은 후에 아인슈타인 등에 의해 과학-물리학 으로 실증되었다.)
이 때문에 [인(어짐)]이라고 하면 한편으로는 [불인(어질지 않음)]이 예상되고,
[의]는 뒤집으면 [불의]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모두 입장과 견해에 따라 변화하고 언제 어디서나
절대 변하지 않는것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채가 일사 분란하게 운행하고 계절이 틀림없이 순환하고 주야가 확실하게 교체하여
만물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며 유전하는 우주현상을 볼 때, 거기에 시간과 공간에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노자는 이론만으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 추구한 결과, 상대성을 초월한 절대불변의 실재(근본원리)를 체득하고, 이것이야 말로
만물의 시원이요 근원이며, 절대 배반당할 일이 없는 진실이라고 하여 이것을 [도(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무)]는 절대불변의 실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자체는 아무런 작용을 갖지 않는다.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것은 실재로서의 도가 아니고, "도의 작용"이다.
즉 도에는 "실체로서의 도(무)"와 "작용으로서의 도(유)"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도의 작용"의 쪽을 노자는 [덕(유)]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도-실체-무-절대적
덕-작용-유-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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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작용)는 만물을 낳으면서도 그것을 자기것으로는 삼지 않고, 위대한 작용을 하면서도 공적으로
삼지 않고, 생성화육 하면서도 지배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의 작용을 덕(현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가, 즉 공자,맹자는 인의예지 등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분별지"에 의한
"작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덕이 손상되고 진정한 덕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분별지 [分別智] -- 생멸 변화하는 물심(物心)의 모든 현상을 분별하는 지혜. = 상대지 [相對智]
작위 [作爲] --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그렇게 보이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
[인(어짐)]을 최고로 몸에 익힌 사람(상인)은 항상 애써 어질고자 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의식적인 것이요 작위이다. 그래도 그것을 밖으로 나타내어 남에게 자랑삼아 과시하지 않으므로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의]를 최고로 몸에 익힌 사람(상의)은 항상 의롭고자 하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더하여,
자기가 의롭다는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한다. 이것은 2중 작위이다.
[예]를 최고로 몸에 익힌 사람(상례)은, [예] 이고자 하며 그것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아,
이쪽의 예에 대하여 상대방이 예로써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것(예)을 강요하려 한다
그리하여, 예의라는 것은 인간의 진심이 엷은 곳에 있는 것이요, 다툼의 시초이다.
[지]--앞 일을 아는것,하나를 듣고 열을 아는것--에 이르러서는 도에서 보면 진실성이 없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고 열등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것이다.
만약, 북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모르는 사람의 발을 밟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히 사과한다.
그러나 그것이 형제의 발이라면, '어어~' 할 따름이요, 부모자식 간이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볼 뿐 격식차린 인사는 요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예(예의범절)는 친함과 진심이 엷은 경우에 필요하다.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싸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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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완전한 작용이 숨겨지면 [덕]이 문제화 되고, 자연(도)의 덕이 나타나지 않게 되면 [인(어짐)]이 설파되며, 인이 쇠퇴하면 [의]가 외쳐지고, 의가 쇠퇴하면 예의범절이 번거롭게 된다. (도덕경 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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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치하철에서 다른사람의 발을 밟으면, 어찌 해야 할까요? 하하하...
위의 내용이 혹시 저만 재미있음 어쩌지 하는 염려가...하하
그럼 다음에 재미난 글있으면 또 올려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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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처음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