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사 - 독립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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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1.09. 04:16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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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사 -
독립 협회
1. 교과서 속 주개념
1) 독립 협회의 창립(1896)
아관파천 이후 국가의 위신이 추락하였고, 러시아 등 열강의 이권 침탈이 심화되었다. 이에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국가의 자주 독립을 확고히 하려는 의지와 근대적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민중 계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혁적인 정부의 관료와 개화 지식인을 중심으로 도시 시민층, 학생, 노동자, 여성, 천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독립 협회를 만들게 되었다.
2) 독립 협회의 활동
독립 협회는 독립 신문을 발간하였으며 민족의 자주 의식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또한 독립관(모화관)을 건립하고 강연회 및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민중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민중의 정치, 사회 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 독립 협회는 점차 임원, 관료 등 지도부 중심에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사회단체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자주 국권운동을 전개하여 외세(특히 러시아)의 내정 간섭과 이권 요구에 맞서게 되었다. 그 중 구국 운동 상소문(1898. 2. 22. 자주 독립 선서)은 독립협회 회원 135명이 서명한 것으로 자주 독립 수호와 민중 동원 체제를 통한 국민의 정치 활동 결의를 나타내었다. 또한 만민 공동회를 개최(최초의 근대적 민중 대회. 1898. 3. 10.)하여 러시아의 침략 정책 규탄과 러시아의 군사·재정 고문 철수 및 한·러 은행 폐쇄를 주장하여 성사시켰다.
자유 민권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으로 신체의 자유, 재산권 보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을 주장하였다. 또한 국민 참정권 운동과 국정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박정양 진보 내각을 설립하고 의회 설립 운동을 전개하면서 박정양 내각과 협상하여 새로운 중추원 관제(관선의원 + 민선의원)을 반포하고 우리 나라 최초로 의회가 설립될 단계에 이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관민 공동회를 개최(1898. 10)하여 독립 협회 등 여러 단체, 정부 관료, 학생, 시민이 참가하였으며 국권수호와 민권 보장, 국정 개혁을 주장하는 헌의 6조를 결의하였다. 하지만 수구 세력의 개혁 정치에 대한 반발로 황국 협회를 내세워 만민 공동회를 탄압하였으며 대의(代議) 정치에 대한 고종의 불안감이 고조 되었고 이권 탈취의 기회를 잃은 열강의 사주로 독립 협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3) 독립 협회의 의의와 한계
민중에 바탕을 둔 자주적 근대화 운동이었으며 만민 공동회 등을 통해 국권 수호, 민권 신장을 추구하였다. 갑신 정변과 갑오 개혁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나 독립 협회는 민중 개화 운동과 결합하여 민족주의 사상과 자유 민권의 민주주의 이념을 확산시켰으며 이후 전개될 애국 계몽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배척의 대상이 주로 러시아에 집중되어 있었고 오히려 미, 영,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2. 확장 개념
독립 협회를 널리 알리는 글
이제 대조선국이 독립국이 되어 세계 만방을 어깨에 겨누니 이는 우리 대군주 폐하의 위덕이 떨침이요, 우리 대조선국의 유사 이래의 광명이요, 우리 이천만 동포의 행복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념할 실적이 없으므로 이에 공공의 의견으로 독립 협회를 발기하여 전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새로이 세우고, 전 모화관을 새로 고쳐 독립관이라고 하여 옛날의 치욕을 씻고 후인의 표준을 만들고자 함이요, 그 부근의 땅에 독립 공원을 이루어 그 독립문과 독립관을 보전코자 하니 성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돌아보건대, 그 공역이 커서 큰 비용이 들 것이니 힘을 합치지 않으면 성취를 기약치 못할 것이다. [대조선 독립협회 회보 제1호]
육대주와 동등하여 만국과 나란히 하는 것은 폐하의 권리이고, 폐하의 백성이 되어 폐하의 강토를 지키고, 그 정치를 거슬리고 법률을 어지러이 하는 신하가 있어서 종사를 해롭게 하면 탄핵하여 성토하는 것은 저희들의 권리입니다. 어떤 자가 말하기를 민권(民權)이 성하면 군권(君權)이 반드시 줄 것이라 하니 그 무식함이 이보다 심함이 있겠습니까? 만일 오늘날 국민의 의논이 없으면 정치·법률이 따라서 무너져 어떠한 화가 일어날지 모르니 ······ [윤치호 등의 상소문(1898)]
3. 관련 지식
1) 관민 공동회 헌의 6조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합심하여 황제권을 공고히 할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해당 부처의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함께 날인하여 시행할 것.
3.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담하여 맡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한 범죄는 공판하고,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은 정부에 그 뜻을 물어 과반수가 동의하면 임명할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2) 독립 협회의 한계
"조선에서는 해·육군을 많이 길러 외국이 침범하는 것을 막을 까닭도 없고, 다만 나라 안에 해·육군이 조금 있어 동학이나 의병 같은 지방의 도둑떼나 평정시킬 만하면 넉넉하다. 만일, 어떤 나라가 조선을 침범하고자 하여도 조선 정부가 세상에 행세만 잘 했을 것 같으면 조선을 다시 남의 나라 속국이 되게 가만 둘 리가 없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외국과 싸움할 염려가 없는데, 만일 조선이 싸움이 되도록 일을 할 것 같으면 그 때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독립 신문, 1897년 5월 25일]
위 내용을 보면 첫째, 동학 농민 운동이나 의병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둘째, 당시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외세의 침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 협회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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