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공책의 전개과정과 의의
1. 통공책(通共策)의 전개 : 갑신 – 무자 – 신해 – 갑인 – 신유 – 병오통공
(1) 갑신통공(甲申通共, 영조 40년 , 1764년)/보민사(保民司)에서 속전(贖錢)징수
갑신통공은 大市廛의 금난전권만 허용하고 일반 시전의 금난전권은 이완•폐지시키려는 주장(국민대, 김정자, 2009)으로 9廛만 법사(法司, 형조와 한성부)에서 금난전권을 행사하고, 8廛에 대해서는 일반 시전에서 금난전권을 행사하는 통공책
* 보민사(保民司) : 형조와 한성부(法司)에서 관장하던 속전(贖錢, 죄를 벗어나기 위해 내던 돈)에 관한 일 관리부서로 형조와 한성부의 관원이 무보수여서 자의로 금패(禁牌, 난전 단 속시 관리자가 내보이던 패)를 발하여 난전(亂廛, 일반 상인)을 단속하며 지나치게 속전을 징수해 폐단을 일으키자 보민사를 두어 속전의 징수를 맡게 하고 그 수입으로 형조와 한성 부의 관원에게 보수를 지급함.
(2) 무자통공(戊子通共. 영조 44년 1768년) : 갑신통공 완화
한인모‧김치인는 흉년으로 물가가 오르니 육의전(6전/선전(繕廛, 비단)·면포전(綿布廛, 무 명)· 면주전(綿紬廛, 명주)·지전(紙廛, 종이)·저포전(紵布廛, 모시)·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 생 선)을 제외한 일반 시전의 금난전권을 완화 해 원활한 상품의 유통을 하자는 시책으로 소상 인을 보호하는 신유통공, 신미통공, 갑신통공 계열과 소상품 생산자를 보호하는 임오통공 계 열을 종합하여 갑신통공에서 도고(가격조작, 매석매석 하던 상인)문제까지 포함한 통공책
* 육의전/조선일보. 정서용
* 육의전(六矣廛) : 선전(繕廛, 비단), 면포전(綿布廛, 무명, 은), 면주전(綿紬廛, 명주), 지전(紙 廛, 종이), 저포전(紵布廛, 모시),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 생선)
(3) 정미통공(丁未通共, 정조 11년 1787년)
도고(都庫) 및 외방상인(外方商人)들이 서울 장안에서 자유로이 상품을 매매하도록 허용한 정책으로 육의전 이외의 상전(商廛), 공장 수공업자들에게도 상품 판매 허용 및 도고 및 외방 상인들이 서울 장안에서 자유로이 상품을 매매하도록 허용하였다. 이같은 통공책은 봉건 정 부의 재정 궁핍을 보완하려는 목적과 도성안의 상공업 발전추세에 따른 불가피한 정책임.
신해통공 한국판 NEW DEAL,
잘못 된 직간접 규제 철폐, 새로운 창조적인 정책 입안 시책
소상공인, 영세상인, 도시빈민층 등 생계보호
* 정조 신해통공 전격 시행(정조 15년 1791년 정월, 신해)/역사저널 그날
(4) 신해통공(辛亥通共, 정조 15년, 1791년)/시장주의자 좌의정 체제공 건의로 신해년 1791년 정월에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과 난전(일반 개인상인)이 시장에서 물품을 자유로이 매매 할 수 있게 큼 시행 된 통공발매시책으로 경제민주화의 초석
가. 육의전(六矣廛)을 제외한 일반 시전이 소유하고 있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폐지하여 비 시전계(非市廛系, 난전) 상인들의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용인한 통공발매시정책으로
첫째 육의전을 제외한 모든 시전의 금난전 전매권(禁亂廛 專賣權), 즉 독점권을 허용하지 않고, 둘째 설립된 지 20, 30년 미만인 시전은 폐지한다는 통공책으로
* 좌의정 체제공 신해통공 정조 15년 1791년 건의/역사저널 그날
체제공(남인)의 시전상인(인현왕후 민씨 등 노론 등) 혁파 방안 건의 내용를 요약하면
ㄱ. 만들어진지 20 ~30년이 미만의 작은 시전 혁파.
ㄴ. 육의전 이외의 시전은 금난전권 행사 불가.
ㄷ. 지나친 소상인을 고발하는 등 형사권 남용 금지.
남인 학자들의 진보적인 학문과 실학사상 학습
노론의 권력독점의 폐단을 지켜보며 왕권강화와 개혁 필요성 확신
정조개혁을 총지휘한 채제공, 자신의 개혁의지와 꿈을 펼친 신해통공과 신도시 화성 건설
* 채제공(남인,판서, 화성유수, 수원 화성건설 행정책임자.개혁의 지팡이. 방패막이 행동대장) 등 중심 : 시전 혁파와 소상인 활로 개혁정책
----------------------------------------------------------------------------
“좌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금난전권은 국역을 지는 육의전으로 하여금 이익을 독점케 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무뢰배들이 삼삼오오로 시전을 만들어 일용품을 매점하지 않는 것이 없고, 값이 날로 오르기만 합니다. 마땅히 평시서에 명하여 20, 30년 이내에 설립된 작은 시전을 조사해 모조리 혁파하도록 하고 법사(형조와 한성부)에 명하여 육의전 이외에는 난전을 금할 수 없게 할뿐만 아니라 이를 어기는 자는 벌을 주게 해야 합니다."라고 임금이 신하에게 물으니 모두 옳다. 하였다
----------------------------------------------------------------------------
나. 신해통공의 목적
소상공인, 영세상인. 도시빈민층의 자유로운 상행위 보장과 사상의 보호
사도(장헌)세자(1762. 윤 5월 21일. 창경궁 선인문 死, 나굥언 고변, 임오화변) 사당 경모궁 건립 비용(1776년, 서울대 병원내), 영우원(초기 수은묘, 서울시립대 배봉산 자락, 정조 즉위년 1776년 영우원으로 승격) 자리가 안 좋아 수원 화산 현륭원(융릉)으로 이전 비용, 화성 신도시 및 행궁건설 비용 등 재정충당 및 운영 일환
- 1791년 금난전권폐지 : 누구나 자유로이 상행위 할 수 있는 통공 발표 - 신해년에 만들었다 해 신해통공(자유로이 상업활동 행위 허용 : 소상공인 상행위 허용 -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조치. 즉 소통)
----------------------------------------------------------------------------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 2월 12일 정사 1번째기사 1791년
좌의정 채제공이 점포의 폐단을 개혁하는 일로 아뢰다.
차대를 거행하였다. 좌의정 채제공이 상에게 아뢰기를,
"점포의 폐단을 바로잡아 개혁하는 일은 평시서의 장부를 상고해 보건대,
30년 이래로 생겨난 명목은 단지 두세 가지의 점포에 지나지 않으니, 햇수가 오래되고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한정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육의전(六矣廛) 이외에 백성의 일상 생활과 가장 관계가 깊은 채소와 어물 등의 점포 같은 것은 마땅히 고려해 보아야 할 것들인데
혹 원래의 점포를 혁파하거나 혹은 점포의 이름만 남겨두고 난전(亂廛)은 철저히 금지한 뒤에야 백성들이 살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또 들으니 신이 경연에서 아뢴 뒤로 어물 등의 물가가 갑자기 전보다 싸졌다고 하니, 개혁을 하고난 뒤에 실효가 있을 것은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
다. 신해통공의 폐단
자유로운 상업활동은 커다란 사상(경강상인, 평양 유상, 객주 등 국내무역, 송상, 만상, 내상(동래) 등 대외무역 독점 및 매점매석(관상도고와 사상도고 등 등장)을 낳았고 이런 거상들은 물건을 매점매석 해 물가상승 초래와 상인층의 계층분화를 초래했으며 직접적인 피해자인 도시빈민층, 소상공인의 반발과 급기야 농민항쟁의 한 원인 되기도 하였다.
* 참고
관상 도고 : 시전상인, 공인 등 상품을 매점매석하거나 독점 상행위
사상도고 : 경강상인 ,개성 송상, 의주 만상, 평양 유상, 동래 내상, 객주, 여각(소금과 어물만 취급) 등 상품을 매점매석하거나 독점 상행위
라. 정조의 신해통공의 의의
자유로운 상행위 보장, 시장의 논리에 의한 가격결정 가능성 제시 등으로 상업구조 변화와 유통 및 화폐경제발달은 조선후기 상업의 발전 및 촉진 계기 마련
시전의 경제력 약화는 노론벌열과의 정경유착 고리 단절과 준론에 탕평정책 시행 가능 및 남인집권층 정치자금 확보
소상공인, 영세상인, 도시 빈민층 생계보호 등은 정조의 민심 존중 및 민본정치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음.
* 벌열(閥문벌벌閱) : 나라에 공로가 많고 권세와 실력있는 사람 또는 가문으로 안동김씨, 경주김씨, 남양홍씨, 여흥민씨, 풍양조씨 등
(5) 갑인통공(甲寅通共, 정조 18년 1794년) :1794년 갑인년에 이루어진 통공발매정책(通共發 賣政策).으로 육의전(六矣廛)을 제외한 시전(市廛)의 특권을 모두 폐지하고, 자유 상인과 수공업자들도 도성 안에서 자유로이 상행위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한 일종의 상공 유통정책이다.
18C에 들어 인구 급증과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사상(개인상인)들은 시전상인들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금난전권에서 자유로운 종루(鐘樓), 광교통(廣橋通), 동대문 밖 이현(梨峴), 서소문 부근 칠패(七牌), 광주 송파, 양주 누현 등지에서 상행위를 통하여 번창해 갔고 또한 과도한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 행사는 물가가 상승을 유발하자 정부에서는 사상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금난전권을 점차 완화시키다가 1787년에 정미통공, 1791년 신해통공에 이어 1794년 갑인통공령을 발표하였다.
(6) 병오통공(丙午通共, 헌종 12년 1846년) : 제2의 신해통공, 풍양조씨,소론,노론 영의정 권상하가 주장
금난전권 확대 조짐을 통제, 축소하는 통공발매 정책으로 금난전권이 육의전은 물론 수세 권, 1 ~ 2종의 전매(전속), 입전(선전, 비단파는 가게) 등 여러 형태로 복구 조짐에 통제하고 축소하는 조치였으며 신해통공보다 예외 물품 종류가 많아졌다. 그러나 신해통공처럼 시전상 인과 일반상인이 함께 자유롭게 상행위를 보장했으나 여전히 국역을 면제해 주지 않았다.
2. 통공책(通共策) 의의
가. 새로운 자본세력. 즉 사상이 시전제도와 같은 보수적·특권적·봉건적 상업조직을 타파하 고,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요구를 관철하여 상업의 촉진과 발전의 새로운 계기 마련
나. 탕평책을 수행하기 위한 노론 벌열의 세력약화와 남인집권층의 정치자금 확보 등 정치적 의도 아래 진행된 경제개혁 정책
다. 도시빈민층과 영세상인 및 소상공인이 보호받을 수 있었고, 사상의 대두와 조선후기 유 통 및 화폐경제 발달 및 상공업 발전
라. 상업유통구조 및 체제의 변화. 즉 폐쇄적인 독점적인 유통구조(시전상인 등)에서 개방적 인 유통경제구조(생산의 잉여생산물 증대 및 확대)로의 변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