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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성찬주일
뿌리가 튼튼한 삶
열왕기하 17장 34-41절, 시편 99장 1-9절, 빌립보서 3장 2-11절
한 문 덕 목사
[세계 성만찬 주일, 예배와 모임의 차이]
오늘은 세계 성만찬 주일(World Communion Sunday)입니다. 세계 성만찬 주일은 1936년 미장로교회에 의해 시작되었고, 1940년 미교회협의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에 의해 교회력에 포함하도록 결정 했습니다. 이후 1982년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WCC) 모임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교회들이 10월 첫째 주일을 성만찬 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하고 성만찬 예식서를 내놓음으로써 전 세계의 교회가 함께 지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계 성만찬 주일을 지키는 전 세계 교회들은 오늘 모든 교회들의 공통 성례인 성만찬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제정하신 주님의 식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사랑하셨기에 감당하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합니다. 다른 언어, 다른 전통,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전 세계 21억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베푸신 이 축제의 잔치를 통하여 모두가 하나님의 한 백성이며, 거룩한 성령의 한 공동체임을 되새깁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포함한 예배를 드림으로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를 받고 저 세상으로 파송되는 것을 하나의 틀로 가지고 있습니다. 즉 ‘모임’과 ‘만남’, ‘보냄’의 형식을 지닙니다. 만남 예전에서는 기록된 하나님 말씀인 성서를 읽고, 선포된 말씀인 설교를 들으며, 성찬식을 통해 살아계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과 성찬이 예배의 구성 요소로 온전히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예배라고 부르고, 성찬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모임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보를 보면 모임 안내에 주일예배와 모임, 기도회 및 성서배움터라고 되어 있고, 주일예배를 제외한 나머지 모임은 주일 오후 모임이나 화요 기도회, 수요 기도회, 월삭 기도회, 떼제 기도회로 되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매주 성찬식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봉헌과 감사기도가 성찬을 대체합니다.
봉헌이라는 것은 바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 공손히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를 주셨고, 또 성자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드리는 예물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일부이지만, 그 뜻은 우리의 삶과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자신 전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관한 설교들과 생명사랑교회의 예배]
세계성만찬주일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예배에 관하여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게 되었는데,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매년 한 두 번은 반드시 예배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부임한 이후로 지금까지 예배와 관련하여 네 번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2017년 11월 26일과 12월 3일에 “참된 예배”, “주님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연속 2회, 2018년 7월 22일에는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께”라는 제목으로, 올해 3월 24일에는 “은총의 바다에서”라는 제목으로 설교 했습니다.
이 설교들을 통해 지금 한국교회가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지, 그리스도교 전통이 말하는 예배는 무엇이며 고대 이방신들을 달래던 제사들과 어떻게 다른 지, 예배의 구성 요소 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의 예배 안으로 파고 든 세상의 잘못된 습관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제가 언급한 것들이 전부 기억나시나요? 만약 잘 모르겠거든 우리교회 다음 카페에 들어가셔서 제가 했던 설교를 한 번 더 읽으시거나 들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예배와 모임에 대해서 좀 얘기하겠습니다. 예배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중요한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공간은 죄인인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떨리는 마음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끌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 첫 세 구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한 공간은 우리들의 마음을 겸손하고, 엄숙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 공간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힘겹게 얻은 이 예배실에 그저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예배하는 공간에 대해서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지금의 우리 예배 공간은 지하이면서도 쾌적한 편이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더 그리스도교적인 상징과 세속과는 구별되는 분위기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예배처소를 마련한다고 할 때에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또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어떤 예배 공간을 창출할 것인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영원과 순간,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 온 과거와 주님의 약속이 펼쳐질 미래가 만나는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일예배를 오전 11시에 딱 한번 드립니다. 예배가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시간이라면, 여러분은 최소 예배 시작 10분 전에는 교회에 와야 합니다. 예배학을 전공하는 안덕원 교수가 한국의 교회들을 방문하고 쓴 책이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찾아서>입니다. 그 중 한 부분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예배 시작 15분 전, 이미 본당에는 약 4분의 3의 좌석에 회중이 착석한 상태다. 미리 와서 조용히 기도를 하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서 들어오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도들이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가 예배에 참석했던 교회들 중 가장 조용한 교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20쪽)
어느 교회일까요? 소망교회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비판하는 대형교회 중에 가끔 들어가는 교회이기도 합니다만, 교회는 부족하고 실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죄인들의 공동체이기도 하기에 어느 교회나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이 교회를 방문한 예배학 교수는 성도들이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회의 모습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참석한 예배는 오전 11시 예배였다. 10시 30분에 본당에 들어갔는데, 이미 많은 성도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10시 40분이 조금 넘자 종이 울리고 찬양대가 입장하며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중략~ 청파교회의 오르간 연주 또한 회중의 기도를 돕고 마음을 가다듬게 만드는 은근한 힘이 있었다.”(39쪽)
감리교회 중에서 다닐 만한 교회로 손꼽히는 청파교회의 모습입니다. 11시 예배이지만 30분전에 이미 많은 교인이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10시 40분에 찬양대는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이 경건하고 거룩하고 내면을 성찰하고 존재의 근원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시간이 되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일 예배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매우 사소하고 작은 것 같지만, 그 작은 행위 하나를 통해 전부를 볼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명사랑교회 예배의 특징]
우리교회의 예배는 [모임 예전]과 [만남 예전 : 말씀 나누기와 주의 만찬], 그리고 [보냄 예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을 잘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시작하는 초입에 제가 가장 먼저 나와서 회중께 인사를 드리는 것은 여러분 모두를 대신하여 예배 위원들이 예배를 진행하겠다는 것을 허락받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예배가 교회력의 진행 중 어디쯤이며, 어떤 주제를 가지고 예배하는지를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징을 세 번 치는 것으로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데, 이 때 여러분은 성부, 성자, 성령을 생각하시면서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떠올리시고, 동시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 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에는 무려 5번의 묵상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징을 친 후, 목회기도를 한 후, 설교를 마치고 설교자의 기도 후, 감사기도를 드린 후, 축복기도 후입니다. 이 때 오르간 반주가 흘러나오는 데, 여러분 모두는 이 각각의 시간에 거기에 알맞은 묵상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는 오늘의 교회력과 예배의 주제를 떠올리며 예배가 온전히 하나님께만 드려지길 기원합니다. 목회기도 후에는 드려진 기도를 되새기며, 예배를 드리는 온 성도들과 함께 마음을 모으며, 미처 드리지 못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다. 설교 후에는 오늘 목회자를 통해 들린 하나님 말씀 속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을 묵상하고, 일주일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묵상합니다. 감사기도를 마치고는 특별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이미 주신 모든 것과 앞으로 주님께서 약속한 모든 일에 대한 감사를 드리면 좋을 것 같고, 마지막 축도 후에는 오늘 예배 전체를 마음에 담고 이제 다시 주님께서 보내신 삶터와 일터에서 진정한 예배가 시작되도록 다짐한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다섯 번의 묵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말씀을 되새긴다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갈수록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가 지니는 특징 중에 하나는 평화의 인사 시간에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 순서 덕분에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한 분들은 우리교회가 매우 따뜻하고 가족적이며 환대하는 교회라고 느낍니다. 그러니 여러분, 평화의 인사 시간에 여러분 모두 최소 5명 이상의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특히 잘 모르는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라 서로 잘 알 것 같지만, 제가 확인한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있고, 1년 내내 신앙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새로운 교우들이 많이 오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새 교우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우리 교회 공동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따뜻한 배려를 담은 인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에서 또 하나의 조금 독특한 지점은 사도신경이 말씀과 성찬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는 신앙고백을 모임예전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들은 뒤에 신앙고백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이 성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앙고백을 예배의 앞부분에 배치할 경우,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배가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신앙고백의 확신이 적은 초신자나 태신자들, 그리스도교 진리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방문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약 10회 정도 성찬식을 합니다. 성찬식 또는 성만찬 예식이라고 두 가지로 부르는데, 성찬(εὐχαριστία)은 감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성만찬(The Holy Communion)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식탁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하나 되는 경험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성(만)찬(예)식은 말씀 나누기와 함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었는데(눅 24:13-35), 그 때 제자들은 눈이 뜨여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즉 우리 모두는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을 생생하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가톨릭에서는 빵과 잔이 실제로 예수님의 몸이라 생각했고, 루터는 본질에 있어서 빵과 예수님의 몸이 다르지 않다고 했고, 깔뱅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임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주님의 만찬이야말로 성령의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어지는 통로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이 갖는 의미를 올바르게 알고 행해야 합니다.
첫째, 성찬은 ‘감사의 만찬’(Eucharist)이라는 명칭대로 예수님의 삶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감사하는 예전입니다. 둘째 성찬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오늘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러야 합니다. 셋째 성찬은 나 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빵에서 나누어진 조각들을 먹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잔을 받습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 모두는 전 세계 교회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찬은 예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행하신 나눔의 식탁임과 동시에 미래에 하나님께서 베푸실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식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21세기 일반 가정의 가장 전형적인 식사 모습은 어떨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누구와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며 삶을 나누나요? 사진을 보시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가족 사진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3대가 함께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삼촌,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찍은 모습인가요? 21세기 가족 사진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소모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차라리 디지털 매체들과 또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만약 새로운 예배처소를 마련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반려견과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를 지나 22세기 교회로 남으려면 말이지요.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나, 애견인 1800만명(2018년)의 시대의 사람들도 여전히 뿌리가 튼튼한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보다는 스마트폰, 사람들보다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더 원한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애정과 안정감, 관계 속에서 오는 기쁨과 든든함입니다. 스마트 폰이나 반려 동물들이 사람보다 더욱 사람에게 더 든든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창세기는 동물들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없어서 사람을 만들어 주셨고, 사람들끼리도 서로 불신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 주시기까지 했는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히려 사람이 아니라 기계, 하나님이 아니라 동물에게서 더 친근함과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고 그 방향으로 가려합니다.
저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인간미 넘치는 사람 공동체가 필요하고, 사람의 부족함을 넘어 더 완전함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를 두고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의 신앙고백과 삶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러합니다.
오늘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땅에 정착한 앗시리아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도록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시켜 교육도 하고 사자를 풀어서 혼도 내고 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셨지만, 이들은 옛 관습에 따라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듯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부어 만든 우상을 섬겼고, 그런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자녀와 후손들도 그대로 따라하였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진정한 뿌리는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치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돈과 권력에 넘어지거나 속지 않으려면 어디에 우리 삶의 토대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앗시리아 사람처럼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거나, 또는 둘 모두 양다리를 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가 있거나,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근본은 하나님이시며, 예배이며, 말씀이며, 기도입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가,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가 따르는 주님의 율법과 계명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튼튼하게 할 것이라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이런 저의 믿음이 곧 여러분의 믿음이고, 또 그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든든히 서 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먼저 불러 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예배를 회복하게 하여 주소서.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들리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우치시고, 보이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혼돈의 시대, 참된 믿음으로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소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예배하여 뿌리가 튼튼한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세상을 창조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날에 우리를 한 자리에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만나고자 나온 생명사랑 믿음의 식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일렁이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평화와 위로가 우리를 감싸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드리려고 나옵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사랑의 징표로 드리는 이 예물을 온전히 받아 주시옵소서. 가난으로 하루가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소서. 그 때 우리가 드린 예물을 사용하여 주소서. 우리가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고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생명이 온전히 주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존재의 근원이시며 생명의 뿌리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마르지 않는 샘 곁에 여러분의 삶의 나무를 심으십시오!
* 축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과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제는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과 은총과 능력이 하나님만을 참되게 예배하고 진정으로 섬기는 생명사랑교우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