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4개에 2천원!
솔향 남상선/수필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재력가는 돈 되는 일이라면 기를 쓰고 투자하여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벌이할 것이 없어 철빈(鐵貧)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곤경에서 헤어나기가 어려우며, 돈 많은 부자들은 남부러울 게 없이 살고 있다. 한 쪽에선 외제 승용차다 호화주택이다 하며 호사를 누리는 데도 또 다른 한 켠에선 은신할 데가 없어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글세 신세에 붕어빵 장수, 아픈 몸으로 인력거를 끌어 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일요 점심 무렵이었다. 게다가 짓궂은 눈발은 시린 볼때기를 얼얼하도록 장난을 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행인들이 오가는 건널목 길목에는 군고구마를 파는 매사냥꾼 모자를 쓴 아버지의 손길이 바빠지고 있을 때였다. 몸도 불편하신 아버지가 손수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써서 걸어놓은 <군고구마 4개에 2천원>이라 쓴 포장마차 표지가 바람에 펄럭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출출할 때가 되었는지 포장마차 앞에는 군고구마를 사려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다섯이나 되었다. 잠시 후에 허름한 차림의 노파 한 분이 다섯 살 정도는 돼 보이는 손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손자는 군고구마가 먹고 싶었던지 할머니를 졸라대는 성화에 노파는 발걸음한 눈치였다. 순간 할머니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노파는 아마도 돈이 없었던지, 아니면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바로 앞에선 수전노로 소문난 k할아범이 군고구마 하나를 사서 우기적우기적 자기 입만 챙기고 있었다. 곁에 있는 어린 꼬마나 노파에게 대추씨만큼이라도 베푸는 마음을 써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걸 못하는 k할아범 수전노(守錢奴)였다.
군고구마 장수 아버지는 돈이 없어 손자가 먹고 싶어하는 걸 사 주지 못하는 노파가 안쓰러워 보였던 거 같았다. 무슨 생각을 했던지 불판 위에 있던 군고구마 3개를 떨어뜨리는 거였다. 아차, 하는 순간에 군고구마 1개는 깨지고 2개는 일그러지는 거였다. 군고구마 장수 아버지는 떨어져 뒹구는 3개의 군고구마를 주워서 노파의 손자에게 쥐어주면서 하는 말이,
“이건 못 팔게 된 상품이니 우리 꼬마나 먹어라.”
하는 거였다. 군고구마를 그냥 거져 주면 상대방이 미안해 할까봐 일부러 그런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신밖에 모르는 수전노 k할아범과 대비가 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진정 백만 불로도 안 되는 배려의 마음이었다. 세상이 삭막하다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슴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있는 분들이 있으니 우리의 삶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잠시 후에 불쑥 나타난, 중학교 다닌다는 군고구마 장수의 아들이 와서 하는 말이 ,
“아빠, 몸도 안 좋으신데, 이만 들어가세요, 제가 대신하고 들어갈게요.”
라고 말하는 거였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더니 어쩌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버지 마음을 빼다 박아 놓은 것 같았다. 반포보은(反哺報恩)하는 효심이 가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수전노’런 말이 나왔으니 그 얘기 좀 더 해봐야겠다. ‘너와 내가 더불어 우리로 함께 사는 사회’구현에 반갑지 않은 말이지만 그 유래부터 좀 살펴봐야겠다.
<수전노(守錢奴)는 돈을 모을 줄만 알지 한 번 손에 들어간 돈은 도무지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돈에 인색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 하겠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한나라의 마원(馬援)이라 전하고 있다.‘부자가 귀하게 되려면 남에게 잘 베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수전노와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전해지고 있다.
수전노의 시조는 조선 세종 때 대제학을 지낸 변계량이었다. 개인적인 성격이 말할 수 없이 쪼잔하여 작은 물건이라도 남에게 빌려 주는 법이 없었다. 죽마고우가 찾아와도 술 한 잔 따르고는 그게 아까워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또 한 잔 따르고 그렇게 바라보기에 받아먹는 친구가 그 술을 아까워하는 옹색한 모습에 그만 기가 질려 술을 먹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저장해 둔 음식에 구더기가 생기고 냄새가 나도, 썩으면 갖다 버릴망정 남에게는 주는 법이 없었다니 얼마나 지독한 노랑이였는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라 하겠다.
요즈음 우리 주변엔 수전노는 아니라도 지나치게 아끼고 절약하는 분들이 많다. 그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석인성시(惜吝成屎)’란 고사성어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니 안타까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고가의 옷이나 좋은 그릇은 왜 그리 아끼는 것일까! 그건 바로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미래가 현재가 돼도 즐기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제일 좋은 옷은 언제 입을 건가요?" "값비싼 그릇은 언제 쓰실 건가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입거나 쓰려고 아껴둔다고 말한다. 실제 로 수수하게 사는 대부분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평소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저렴한 신발을 신으며 싸구려 그릇을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안타깝게도 대개의 사람들은 제일 좋은 것들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내 아내가 바로 그리 하다가 소풍 길 마친 분들이다.
현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인간성 부활을 위해서는 군고구마를 파는 아버지 마음 같이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저밖에 모르는 수전노로 살아서는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는‘석인성시(惜吝成屎)’의 삶을 살아서는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한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돼서는 아니 되겠다.
군고구마 파는 포장마차 표지판의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씌어진 글씨,
‘군고구마 4개에 2천원!’
거기엔 아픈 몸이지만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도, 책임을 다하는 가장의 마음도, 함께 있었다.
어떤 책에서도 맛볼 수 없는 감동이 꿈틀대고 있었다.
첫댓글 제가 소풍마치는 날에는 수전노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평소에 많이 베풀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