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기를 마치며 / 최종호
6월 29일에 있는 야외 수업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 마지막 수업을 남겨 놓고 있다. 나로서는 ‘일상의 글쓰기’를 8학기 동안 공부했으니 대학의 학기제에 견주면 졸업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첫 번째 글을 언제 올렸는지 검색해 보니 2020년 9월 20일이다.
글의 제목이 그럴싸하다. ‘소유는 잠재적 고통을 동반하는가 보다.’ 감회가 새롭다. 그해 여름, 비가 많이 와서 이곳저곳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수해는 내가 장만한 주말 주택을 비켜 가지 않았다. 마당 한쪽의 언덕이 고스란히 아랫집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그 당시, 주말에는 늘 그곳에서 보냈다. 다 쓰러져 가던 농가 주택을 사서 고치고 없던 화단을 만들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텃밭을 가꾸며 그럭저럭 지낼 만했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좋은 일만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마련했지만 문제가 많았다. 측량해 보니 경계가 아랫집과 물려있는 데다가 땅도 뒤쪽이 토끼 꼬리처럼 튀어나와 불만스러웠다. 위쪽에 있는 집터를 사들이지 않으면 쓸모없는 땅이다.
비가 오면 오래된 함석지붕이 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천장을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천장이 젖어 있으면 지붕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고친다고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는데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아랫집에 사는 배관공에게 그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일을 대충대충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 엉터리로 수리해 놓은 곳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불만스러웠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또 어떤가? 근방의 흙이 늘 젖어 있었다. 그곳이 샘터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는 마을 오폐수 사업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시멘트로 두껍게 포장해 버렸다.
이런 골치 아픈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수해까지 당하자 뭘 하려고 이 집을 샀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행복지려고 장만했던 곳이 또, 언제 다른 형태의 고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제목으로 잡은 것이다. 글을 쭉 읽어 내려가다 보니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집은 약 8년을 가지고 있다가 작년 3월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그만하면 텃밭에 작물을 심어 가꾸는 경험도 할 만큼 한 데다 새 집을 장만하는 데 돈이 필요해서다.
엊그제 그 동네를 가 보았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사이좋게 지내던 앞집 사람과 정담을 나누고 싶어서다. 아내와 함께 갔는데 강아지가 먼저 옛 집으로 달려간다. 녀석도 기억에 있는가 보다. 입구에 심어 놓았던 목련이 아주 힘찬 기세로 자라고 있었다. 화단에 꽃과 나무도 놀라울 정도로 무성해졌다. 텃밭에는 흙이 기름져서인지 상추 잎도 크고 대도 아주 굵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주인은 건강 문제로 병원에 가서 만나 보지 못했으나 손수 만든 허브차를 전해주라고 했단다.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커피만 마시고 나오려고 했는데 이웃으로 지냈던 분이 꼭 점심을 먹고 가야 한다고 해서 여러 시간 머물렀다. 오랜만에 왔다고 앞집과 아랫집에서도 이런저런 선물을 챙겨 주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했어요.” 조만간 또 오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8학기를 마치며 소회를 쓰려고 했는데 그만 글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다. 학기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언제 무슨 내용으로 썼는지 글을 읽다 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났던 것이다. 어쨌거나 예전에 비해 글이 형식면에서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내용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른 문우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 같은데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 매번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스럽다. 아직도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해 문장을 써 놓고 몸부림친다. 그래도 계속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