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거리배식을 끝내고 싶었는데
떠날 때는 올 해로 2년 수개월 동안 계속해온 네팔 거리배식을 끝내려고 마음먹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록다운이 끝나고 대부분의 거리의 사람들이 다시 일자리를 얻거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들려왔고. 미얀마 난민 긴급구호금과 네팔 거리배식을 위한 모금을 동시에 하는 것도 어렵고, 250여 명 분의 식사를 주 5일 동안 실시하던 분들이 사정 때문에 주 2회로 줄였는데 식사 참여자가 많지 않다는 말을 전해 왔기 때문이었다.
급식비를 계속 송금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받는 사진으로 배식의 상태와 참여자들의 숫자를 파악하기 힘 들었고, 거리배식을 주 2회로 줄이면서 상의 한 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줄인 현지 교회의 처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서 굶주리지 않고 생명을 부지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현장을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지인의 도움으로 지프를 타고 밥을 짓는 교회에 도착하였다. 식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은박지 도시락에 밥을 담고 달 스프를 비닐로 포장하고 있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은 큰 솥으로 한 번에 지었고 달 스프는 두 솥에 가득 끓여서 식혔다. 적당히 식은 달 스프를 국자로 일일이 떠서 비닐봉지에 담고 입구를 고무 밴드로 너 댓 번 돌려서 묶는데 서너 사람들이 함께 작업을 하는데도 1시간 가까이 걸렸다. 네팔 교우들이 달을 봉지에 담는 과정을 물끄럼이 바라보노라니 나의 마음이 조금씩 눅어졌다.
우리는 도시락과 달 스프와 물을 가지고 바그마띠 강변으로 갔다. 강변에는 대략 백 수 십 명의 사람들이 강변 둑 콘크리트 블록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코로나 록다운이 해제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서 여전히 거리에서 생활하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숲 속과 화장터의 지붕 위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산봉우리를 넘어서 강변으로 온다고 하였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화장터 앞쪽에 있는 공원 뻐슈뻐띠나뜨에서 배식을 하였는데 경찰이 모이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이 경찰을 피하여 바그마띠 강변으로 모인다고 하였다.
배식을 책임지고 있는 현지 목회자가 나에게 배식을 나누어 주라고 하였으나 청을 거절하고 그 자리에 모인 한 분 한 분과 손을 잡고 악수를 하였다. “자이 머씨”라는 크리스천끼리의 인사를 하며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건강과 행복을 빌어 주었다.
제 멋대로 뻗은 부스스한 머리칼, 표정 없는 얼굴, 불안한 눈빛 그리고 굳게 다문 입, 마른 체구에 굽은 어깨와 때에 찌든 옷들이 외로움과 슬픔, 굶주림과 아픔을 말하였다. 그들은 죄인처럼 눈을 내리깔고 덫에 치인 산짐승처럼 두려움에 쫓기고 있었다.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슬픔과 아픔,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예우 받지 못하는 비참함과 절망, 거리에서 뒹굴며 밥을 구걸하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의 좌절된 꿈과 희망, 비명과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이 속히 일자리와 잠자리를 해결하고 고향 부모형제에게 자랑스럽게 안부를 전하고 친구들과 예전처럼 우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길을 간절히 빌었다. 그들 중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청년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은요?”
“고향에 계셔요.”
“보고 싶지요.”
“예.”
“그럼 가셔요.”
“차비도 없고 갈 수도 없어요.”
“그래도 부모님은 기다리셔요.”
“보고 싶지만 갈 수가 없어요. 돈 벌어서 가려고요.”
그의 말꼬리가 흐려지더니 눈에 눈물이 괴었다.
슬픈 눈빛이 내 가슴을 쳤다. 그의 고통과 고독이 핏줄을 타고 흐르며 내 영혼을 흔들었다. ‘돈 벌어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가려고 하는 그 마음, 그의 실낱같은 희망’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순간 그의 희망을 위하여, 그가 고향집으로 돌아갈 날을 위하여 거리 배식을 끝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그의 희망을 사기 위하여, 그의 작은 꿈을 응원하기 위하여 거리배식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나를 울렸다. 비단 그 청년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하여 좌절당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사기로 하였다. 한 끼 식사 해결을 위하여 바그마띠 강변에 모이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 떠나는 날 까지 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사랑의 식사를 나누기로 다짐하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청년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길 기도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리배식에서 만난 5개월 된 야쿱 마지 아기와 임신한 어린 제니쌰가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아기는 어머니가 밥을 먹으러 오면서 안고 왔는데 울지도 않고 방긋방긋 잘 웃었다. 아기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환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지 어둡고 무표정했던 사람들이 아기를 보고 따라 웃었다. 아기의 밝은 웃음이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었는 지 사람들이 아기를 어르며 함께 웃기 시작하였다.
제니쌰에게 “자이 머씨”라고 인사를 했더니 곧 바로 근심스러운 얼굴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하였다. 배가 부른 것으로 봐서 2월이나 3월에 아기를 낳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돌보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직감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그들을 축복하며 아기 야쿱이 추운 겨울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따스한 옷을 선물하기로 하고 제니쌰의 출산에 필요한 산모용품도 준비해주기로 하였다.
아가방에 가서 옷을 사려고 하였는데 생후 8개월 된 손녀를 둔 주원장님께서 손녀의 옷을 물려주겠다고 하였다. 그가 오늘 아침에 보기 만해도 따스하고 예쁜 모자와 양말까지 달린 털옷과 셔츠와 바지들과 예쁜 장난감을 많이 보내주었다. 야쿱이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옷을 입고 따스하고 행복한 겨울을 보낼 것이었다. 야쿱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제니쌰의 출산용품은 네팔에서 구입하기로 하였다. 그는 자기를 닮은 예쁜 아기를 낳을 것이다.
지금 네팔로 가는 나의 마음이 가족을 보러 가는 것처럼 기쁘고 설렌다.
모금도 힘 들고 때로는 경비를 지원하며 시험에 빠지는 일로 인하여 올 12월로 거리배식을 끝내고자 하였는데 끝내기는커녕 청년의 꿈을 응원하게 만들고 야쿱과 제니쌰를 품고 돌아오게 만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린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다시 땅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의 가슴 속에 우리 모두가 함께 있다. 배식을 받는 자도, 배식을 위해 모금하는 자도, 배식을 위해 헌금하는 자도 다 함께 하나님의 심장 속에 있다.
2022.12.4.주일 아침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