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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篇小說
바람이 있는 풍경 < 3회 >
> 3 <
오토바이는 사정없이 폭발음을 내며 달렸다. 고막이 파열될 듯한 폭발음이었다. 현경은 사내의 허리를 잔뜩 끌어안고 등에다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펑퍼짐한 사내의 등이 솟아오른 젖무덤으로 느껴지고, 헬멧을 쓰고 있는 사내의 뒷통수가 커다랗게 확대되었다가 사라졌다.
너무 지나치게 속력을 내고 있는 탓일까? 전혀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을 떠서 바퀴만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분명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고 도로변의 풍경들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터였다.
현경은 오토바이를 멈추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내의 허리를 감고 있는 팔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힘이 빠질수록 오토바이는 더욱 요란한 폭발음을 내었다. 금방이라도 엔진이 터져 버릴 듯했다.
얼핏 사내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아는 사람이고, 오토바이를 탈 때만 하더라도 누구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은데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털컥 털컥, 팔이 한 단계씩 풀려 나갔다. 그녀는 소리쳤다. 오토바이를 멈추라고 악을 써 댔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는 그 순간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것이어서 입만 움직이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털컥 털컥, 팔은 여전히 한 단계씩 풀려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몸을 뒤틀었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기우뚱 하더니 속도감이 살아나면서 움직이지 않던 풍경들이 쏴아 한쪽으로 곤두박질쳤다. 간신히 매달려 있던 팔을 푼 것도 그와 동시였다.
그제서야 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준규씨!
현경은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홍건하게 젖어 있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꿈에서처럼 고막을 찢을 듯한 것은 아니었지만 엔진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계였다. 오토바이 모형을 본딴 시계는 시간을 맞춰 놓으면 삼 분 동안이나 계속해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를 쏟아내 잠을 깨워놓는 것이다.
‘부르룽 부룽 부룽 부르르릉’
그녀는 손을 뻗어 오토바이의 안장, 곧 스위치를 눌렀다. 엔진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사내의 음성이 튀어 나왔다.
―굿모닝!
그러나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밤이었다. 시계는 밤 11시를 약간 지나 있을 거였다. 하지만 그놈의 시계는 언제나 아침이었다. 시간을 맞춰 놓으면 ‘부르릉 부릉 부릉’엔진 소리를 내다가 안장을 콱 찍어 누르면 아침이든 저녁이든,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굿모닝’ 하는 것이었다.
현경은 한동안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요란하게 울려대던 오토바이 소리가 죽은 가운데 촉광 낮은 붉은 전등만 빤히 밝혀져 있는 방 안은 적요했다.
그녀는 손바닥을 쫙 펼쳐 얼굴을 문질렀다. 부숭부숭하고 까칠한 피부가 느껴졌다. 몸의 구석구석이 쑤셔왔고, 두퉁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아니, 수면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탓인지 더욱 심했다. 몸살 기운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대로 누워 다시 잠들고만 싶었다. 도저히 일어나지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게 몽롱하고 가물가물 했다. 얼굴을 몇 차례 더 문질러 보았지만 이물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눈썹 끝에 무겁게 매달려 있던 잠기운을 애써 털어내며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가스불을 켜고 커피물을 올려 놓았다. 어서 정신을 수습해야만 될 거였다. 정신을 수습하는 데는 그래도 커피가 그중 나았다. 빈 속에다 마시면 위벽이 훑어내리는 게 현저히 느껴지고, 그게 또한 아릿하도록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곤 했지만, 커피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방금 전의 꿈을 생각했다. 아마 시계에서 흘러 나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그런 꿈을 꾼 모양인데, 왜 그 마지막 순간에 준규의 이름을 불렀던 것일까……? 절로 쓴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퇴근 시간 무렵 동료들은 어디 가서 저녁이나 함께 하고 헤어지자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이 무거웠으므로 그들과 함께 할 수가 없었다.
“현경 언니, 무척 피곤해 보인다. 정말 쉬어야 되겠어.”
먼저 돌아가 쉬어야 되겠다고 했을 때 걱정스럽다는 투로 표선주가 말했었다. 정말 안색이 안 좋아 보였던지 다른 동료들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자리라면 으레 서로가 붙잡기 마련이었고, 그녀 또한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았지만 몸이 무겁고 욱씬욱씬 쑤셔오는 것이 도저히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온 것이 저녁 일곱 시 반 정도. 아마 그처럼 일찍 들어오기는 처음이지 싶었다.
그녀는 들어오는 대로 시계만 11시에 맞춰 놓고 씻을 생각도 못한 채 그대로 침대에 널부러졌다.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면 그런데로 몸이 풀리겠지 싶었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아침까지 그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그러나 일거리가 밀려 있었다. 조그만 시사잡지에 써 주기로 한 잡문 원고의 마감일이 벌써 이틀이나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발뺌을 할 수도 없는 일, 한 번 수락한 일은 죽을 지경이 아닌 이상 기한 내에 처리해 준다는 게 그녀 나름대로의 원칙이기도 했다. 청탁한 원고가 마감기한을 넘겨서까지 들어오지 않을 경우처럼 난감한 일도 없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일을 시작하면 새벽 네 시까지는 얼추 끝낼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시 두 시간 정도는 눈을 붙였다가 출근할 수 있으리라.
물이 끓기 시작했으므로 그녀는 큼직한 사기컵에 분말 커피를 떠 넣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서너 차례로 나누어 비워 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간 커피의 짙은 용액이 아릿하게 위벽을 긁어댔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셔대는 커피, 때론 그것이 식욕을 감퇴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거식증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지도 오래고, 그렇게 하지 않고는 시간을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커피를 다 마신 그녀는 개수대로 가 사기컵을 헹궈 엎어놓은 뒤 타월을 목에 두르고 욕실로 향했다. 주위는 조용했다. 마치 모두가 잠들고 자신 혼자만 깨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들어 바라다보면 아직도 불 꺼지지 않은 창들이 많았고, 저 아래로부터는 늦은 귀가를 하는 것인지 이따금씩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함께 카도어를 여닫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모두가 아득한 저편의 일처럼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일들이었고, 지금 이 시간 깨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일 터였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물이 받혀지기를 기다렸다가 손을 담그고 얼굴을 적셨다. 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웠으나 더운 물을 보태지는 않기로 했다. 그 차가운 물이 정신을 맑게 해 줄 거였다.
그녀는 천천히 손바닥으로 물을 퍼올려 얼굴을 적시고 또 적셨다. 그렇게 서너 차례 반복했을까. 문득 미간이 시큰하며 싸아한 전류가 흐르는 듯 싶더니 무엇인가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였다. 빨간 코피가 세면대 속으로 뚝뚝 떨어져 잉크방울이 그러하듯 번져가고 있었다. 세면대의 하얀 사기질로 인해 그것은 차라리 투명했다.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자괴감도 함께였다. 이럴 때의 쾌감과 자괴감은 동류항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오래도록 세면대를 내려다본 후에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바로 앞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러나 아득해 보였다.
욕실을 나와 화장지로 콧구멍을 틀어 막은 후 거울 앞에 앉아 로숀을 찍어 발랐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가 갓전등을 켜고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그러기까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어서 일을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 하나만이 거미가 실을 뽑아내듯 길게 이어졌을 뿐 그 외에는 습관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을 이어나간 것이다.
입력되었던 문서를 호출해 내자 화면 가득 문자들이 배였되었다. 커서를 끝 위치로 이동시키고 이제까지 작성한 원고를 이백 자 원고지로 환산해 내었다. 원고는 겨우 다섯 장 정도에서 중단된 채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스물 다섯 장을 더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밀려 오는 허기증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시계는 이제 자정을 넘어 거의 한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깨가 몹시 시려웠다. 그녀는 덮어쓰고 있던 스웨터를 목 위까지 끌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으나 마땅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아침에 먹다 남긴 우유만이 덩그라니 철망 위에 얹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우유를 꺼내고 냉장고 위에 얹어 두었던 식빵을 봉지째 들고 식탁 앞으로 가 앉았다. 그러나 식욕은 일지 않았다. 단지 식욕과는 다른 허기증으로 그것들을 삼킬 뿐이었다.
이 시간이면 언제나 그랬다. 욕구가 일지 않더라도 무엇이든 삼켜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어쩌면 담배를 피우는 행위와 같을지도 몰랐다. 한 조각의 빵과 한 컵도 못되는 우유로 뱃속이 채워질 리 만무하였지만 그리고 나면 허기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 것은 마른 빵조각을 뜯어 입 속에 구겨넣고 나서 우유를 한 모금 마시려 할 때였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초인종 소리로 인해 요동쳤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던가? 그렇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잘못 들은 것일까……, 하는데 다시 한번 초인종이 울렸다.
그녀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일어섰다.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 시간에 찾아 올 사람도 없었다.
얼핏 공항동에 살고 있는 현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는 뭐가 있었다. 일찍 결혼을 한 탓인지, 아니면 여자가 너무 나이가 어린 탓인지 툭하면 부부싸움을 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부부싸움도 저희들 선에서 끝낸다면 괜찮겠지만 이건 그렇지가 않았다. 아닌 밤에 홍두깨격으로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해어지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고, 금방 헤어질 것처럼 굴다가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찾아가 보면 언제 그랬냐 싶게 헤헤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세요?”
그녀는 잔뜩 긴장한 채 물었다. 그러자 저편에서 나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누구의 목소린지 분간되지 않았다.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자 저편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김준규.”
긴장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한 더께의 절망이 내려앉았다. 이 시간에 그가 찾아오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김준규라는 이름 자체가 현경을 절망케 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언제나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절망감으로 다가오곤 했었다. 가슴 속 한구석에 결빙되어 있던 그 무엇이 그의 이름을 듣게 되노라면 해동기의 단애처럼 푸슬푸슬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녀는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고 나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도어의 잠금장치를 풀고 밖으로 나섰다.
그는 벽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쩐 일이야?”
그가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현경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제서야 그가 시선을 거둬 들이더니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떼고 바로 섰다. 담배를 찾기 위함인지 주머니를 뒤적였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비척거리는 듯했다. 주머니를 뒤적이는 그 모습이 몹시 흐트러져 보였다.
“술 마셨어?”
그러자 그는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한참 만에야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담배갑이 끄집혀져 나왔다. 그 담배갑에서 역시 배배꼬인 담배를 꺼내 정성스럽게 폈다. 또한 술냄새도 맡아지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세워 둘 거니?”
그가 다시금 고개를 들어올려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현경은 그제서야 가로막고 있던 문에서 비껴섰다.
그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현경은 그를 뒤따르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스웨터를 끌어올렸다.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자. 그녀는 다짐하듯 생각하였다.
거실 한쪽 켠의 식탁 앞에 가 앉은 준규는 그제서야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당겼다.
현경은 얼른 식빵 봉지와 우유팩을 치우고 재떨이 대용으로 오목한 접시에 화장지를 깔고 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서 가져다 놓았다.
“매일 이런 식이니?”
그가 뭔지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의 마른 빵과 우유를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아냐, 출출한 것 같아서 그냥……. 그런데 이렇게 늦게 어쩐 일이야? 더군다나 아무런 연락이 없이. 갑작스레 초인종이 올려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올 거 같으면 전화라도 했으면 좋잖아.”
“전화를 하면 네가 오라고 했을 것 같아?”
“그야 모르지만…….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술까지 마시고.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 거야?”
“운전을 못할 정도는 아니야. 그것은 내가 판단해. ……그렇게 다그치려 들지 마.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니잖아. 그냥 오다가다 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예전처럼 말야. 일부러 시간을 내서 커피를 마시러 올 수도 있고, 그냥 이유 없이 들를 수도 있고……. 안 그래? 그런데 지금 넌 뭐니? 찾아와서는 안 될 사람을 대하듯 하고, 벌써부터 돌려 보낼 생각이나 하고……. 그럴 필요 없잖아.”
뜻밖에도 그가 목소리를 높였으므로 현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소리 때문일까, 그는 피우던 담배를 다소 신경질적으로 눌러 껐다. 그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십대의 반항아 같았다. 흐트러진 머리칼, 오만한 듯 치켜올린 턱, 쏘아보는 듯한 눈길 등이 그랬다.
현경이 한 동안 아무 말 못하고 있자 그는 미안해, 하고 말 끝을 흐리며 다시 새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금 전 밖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꽤 술을 마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차를 몰고 왔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준규가 왜 이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웬지 힘들게 느껴졌다. 말하자면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우물에 돌을 던지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인가 침잠에서 깨어나야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던져지는 돌은 그녀를 피곤케 했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었다.
“준규 씨, 차 마실 테야? 커피는 그렇고……. 인삼차가 있는데.”
현경은 애써 자신을 다스리며 일어섰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두 눈을 들어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개수대 쪽으로 다가가 주전자에 물을 받고 가스불을 켰다. 찻잔을 꺼내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인삼차를 꺼냈다. 느린 동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며 애써 밝은 목소리를 말했다.
“준규 씨, 아무래도 요즈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애. 왜? 회사 일이 잘 안 되는 거야? 그렇잖음 이 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 올 리가 있겠어?”
“말했잖아. 그냥 왔다구. 정말 무슨 일이 있다면 널 찾아오지도 않아.”
“그냥이라는 건 말도 안돼. 더군다나 집안에선 기쁜 일도 생겼는데.”
“기쁜 일이라구?”
“곧 애 아빠가 될 거잖아.”
“애 아빠?”
그가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왜 웃음이 그래? 준규씬 기쁘지 않아? 몹시 기다려 왔잖아.”
“기다렸지. 또한 기쁘기도 하고.”
“그런데 왜 그래? 정말로 기쁘다면 벌써 집에 들어갔어야 하잖아. 경희가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을 텐데.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생각해 봤어? 더군다나 차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것하고 여기 오는 것하고는 별개의 일이야. 날 그렇게 다그치려 들지 마. 최소한 우리 둘이 만날 때만이라도 경희 얘기는 안 할 수 없는거냐? 너는 언제나 그랬어. 나를 만나기만 하면 경희 경희…….”
문득 그가 일어서더니 피우던 담배를 눌러 껐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물이 끓기 시작했으므로 현경은 낱개 포장된 인삼차 봉지를 뜯어 찻잔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는 스푼을 챙기고 설탕을 챙겼다.
헌데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가스불을 끄려고 손을 뻗으려는데 등 뒤로 그가 다가오는 듯 싶더니 이내 어깨 위로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흡사 팽이를 돌리듯 그녀의 양 어깨를 잡아 돌려서 바로 세웠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 허나 그것도 잠깐 뿐, 눈길을 마주하던 그가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차라리 현경은 눈을 감았다. 그에게서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왜 이제야 벽을 허물려고 하는 것일까? 벌써 오래 전에, 적어도 사오 년 전에 했어야 될 것을 왜 이제와서 감행하려 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가스불을 끄고 찻잔에 물을 부어야 된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그들은 말이 없는 가운데 층계를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섰다. 준규가 앞섰고 현경이 뒤따랐다. 두 계단 쯤 사이를 유지한 채였다.
층계는 흡사 터널이나 동굴 같았다. 그만큼 깊고도 아득해 보였다. 빨려 들어갈 듯한 적막이 거기 머물러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었다.
시계는 적어도 두 시를 넘어 가리키고 있을 거였다. 그 텅 빈 공간에 층계를 내려서는 발자국 소리가 크렁크렁 공명되었다. 앞서 내려가고 있는 준규의 등이 문득 왜소하고도 공허해 보였다.
그의 차는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한 채 현관 앞 화단 쪽으로 어정쩡하니 멈춰져 있었다. 드문드문 밝혀져 있는 가스등의 불빛 탓인지 붉은색의 그것은 황갈색으로 퇴색한 듯 보였는데, 마치 짐승의 무리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나란해 고개를 쳐박고 잠들어 있는 차량들의 무리 속에서 그의 것만이 이탈되어져 있었다.
그는 왜 그렇게 늘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정쩡하니 머물러 있는 것일까? 현경은 그의 차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자신을 찾아 왔다가 돌아 가는 것도, 아득한 시간이 저편 변산 해수욕장에서 그처럼 술취해 백사장에 누워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날 경희와 함께 사라졌던 것도, 여동생을 대학에 보내며 밤늦도록 인테리어 사무실에 남아 까칠한 얼굴을 문지르곤 했던 것도 모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일 터였다.
그가 키를 꺼내 카도어를 열며 잠깐 뒤돌아보았다.
“갈 수 있겠어? 웬만하면 그냥 놔 두고 택시 타고 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현경은 말했다. 그는 술기운이 완전히 깨어 있는 듯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파트를 나서서 처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층에서부터 맨 아래층에 이르도록, 출구를 빠져나와 어정쩡하니 서 있는 차에 이르도록,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필요치 않았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이고, 시간 역시 정물처럼, 혹은 긴 여백처럼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
그가 짧게 말했다. 이어 몸을 구겨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여백처럼 남아 있던 이제까지의 시간에 비하면 턱 없이 간략한 말이었고 또한 행동이었다.
카도어를 닫는 소리가 잠들어 있던 공기를 울리고, 그는 간단하게 저편으로 갇혀져 버렸다.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그대로 미끄러져 나갈 것 같던 그가 윈도우를 내리더니 말했다.
“바람이 차가와. 들어가 봐.”
현경은 빤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가 잠시 차를 후진시키다가 앞으로 미끄러뜨리며 한 마디 더했다.
“나 간다.”
그 말과 함께 차는 앞으로 쭈욱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떠나면서 그가 잠깐 손을 들어 보였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차가 저편 모서리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보다가 현경은 돌아섰다. 차가운 바람에 어깨가 시려왔으므로 걸치고 있던 스웨터를 목 위까지 끌어올렸다. 비로소 몸이 오소소 떨려왔다. 그가 떠나 버린 공간이 시리도록 목도되었다.
얼마 전, 다가오는 그의 가슴을 왜 밀어내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의 입술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서로의 입술을 포개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잠시 뒤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러나 주전자의 물이 졸아붙어 타닥거릴 때까지 숨죽여 그의 가슴에 안겨 있었던 것을 결코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만은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아직도 그 당혹스러움에서, 아니 처음엔 당혹이었지만 나중엔 침잠이었던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 한 채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세이는 듯이 하나하나 층계를 밟고 올라와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거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그러나 준규가 다녀간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빈 찻잔과 접시 속의 물젖은 화장지 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몇 개의 담배꽁초가 흔적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도리어 공동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밀어내지 못했던 그의 가슴과 스치듯 얹혀왔던 그의 입술처럼.
그녀는 빈 찻잔과 담배꽁초가 담겨 있는 접시를 그대로 놔둔 채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꺼 두었던 컴퓨터를 작동시키자 화면 가득 문자열이 나왔다. 커서를 끝 위치로 이동시키고 앞의 문장을 읽어 가며 다음 문장을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은 떠 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텅 비어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맥 없이 스페이스 키를 몇 번 반복해 누르다가 아예 전원을 꺼 버렸다. 더 이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니, 그 보다는 쉬고 싶었고 또한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 듯 했다.
그녀는 일어나 침대에다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매트리스에 얼굴을 묻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털면 죽어 나간 시간의 비듬들이 우수수 쏟아지리라.♧
< 계속>
오늘은 계룡파크 36홀 +@ 39,375보 완성
멀리 계룡산 천황봉 장군봉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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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계룡산 하면
우리나라 산중에 헬기장정성까지 발길이 닿은 곳
인생의 역사에 남을 추억입니다
산골일기,,,,,게으른 자연인,
비, 비, 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줄기차
게 내리는 빗소리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
리만이 들리고 간간히 개구리들의 합창
산새들 소리만 들리는 인적 없는 산골은
심심 하기만 합니다~^^
우비나 둘러입고 산책길에 나서서 계곡
의 흘러 내리는 물구경이나 해볼까도 하
지만 잡초가 우거진 숲을 헤치고 걸어가
는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내
포기를 하는 나, 이구먼요 ~!!
그러면 고기가 좀 남았는데 냉장고도 없
이 보관을 오래 할수도 없는디 점심때에
식사와 함께 냇가에 넙적한 돌판에 구워
서 발발이 녀석들과 한잔 하고 낮잠이나
한숨 잘꺼나 생각을 하지만 번거로운지
생각뿐 이지요!!
무었을 한다는 것이 귀찮기만 한지 그냥
좋아 하는 음악이나 틀어 놓고 멍때리며
보내는 것도 그런 대로 괞찬은것 같은데
요즘은 젊은 영혼들이 지나간 트롯트 노
래를 너무나도 잘 부르는 것에 빠져버린
나, 이구먼요~?!
비가 와도 내일은 속세에 나갈일이 있는
디 모르겠다,내일은 내일가서 생각을 하
자고 하는데, 속은 출출한데 짜빠구리나,
해 먹는다고 일어서는 나는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는것을 두끼로 줄여야 겠다고
생각을 해보는 비가 오는
@행운
그런데
행운 님의 하루는 엄청 시리 바쁠 것 같은데
일지를 읽어 보면 이렇게 한가한 시간들이
주변의 평풍 같은 산야들에서
평온을 찾아보게도 한 답니다
언제 한번 거길...
꼭 들려 보고 싶은데...
너무 산만하신 것 같아서리...
하루 세끼 꼭 챙겨드셔요
두끼는 배고파요 ㅎ
특히 긴긴 하절기엔요
저도 게으름에 두끼로 때우는데
아닌 것 같아요
세끼 다 챙겨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합디다
건강 해야지요
산골의 게으른
자연인의 하루 입니다~~~
*금산의 군북마을에 칠월입니다,,,
@행운 부지런하다는 인지가 되었는데
게으른자라니요 ㅎ
아이고
놀기도 힘들어요
놀다 왔네요...
@행운
야...
보리수 같아요
어쩜 저리도 빨갛게...
익으면 먹을 만하데 어려서 먹어봤지요
@양떼 네 개량종이라서 맛은 덜하고
하지감자도 그렇답니다.
본문소설을 읽어보시고
감평을 한번이라도
해보시길 바랍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