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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같은 주 성령”
우리가 드린 찬양은 국립합창단 전임 작곡자였던 전경숙(아래 사진 참조)이 찬송가 184장(불길 같은 주 성령)을 편곡한 곡이다. 일반적으로 편곡자가 편곡을 할 때는 나름대로 여러 기교를 섞으려는 시도를 하는데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그런 시도가 너무 과하여 짬뽕과 냉면, 혹은 우동과 스파게티, 더 심한 경우에는 이 네 가지가 함께 뒤범벅이 된 국적 불명의 이상한 곡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곡은 낙지와 갈비를 섞은 ‘낙갈비’처럼 전혀 다른 재료가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경우도 있고... “불길 같은 주 성령”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은 대체로 무난한 곡이었다.
“불길같은 주 성령”은 부흥회가 되면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찬송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아실 터.
나는 이 곡을 부를 때마다 우리의 '민족성'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원곡은 3/4박자로 되어 있지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작곡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중간에 우리 맘대로 박자를 변형하여 부르는 대표적인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곡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도들은 처음에는 제대로 부르다가 점차 마음이 급해져 후렴에 들어서면 성령의 오심을 재촉하다 못해 결국 한 박자씩 생략하여 “불로 불로”를 2/4박자로 변형시켜 불러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찬송은 성령이 오심을 잠잠히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참지 못하고 서두르는 우리 민족의 ‘조급성’이 투영된 곡이라고나 할까?
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대예배 찬양대 지휘자건, 학생 찬양대 지휘자건 간에 상관없이 자기가 맡은 찬양대 순서가 있는 예배에서는 지휘자가 무조건 앞으로 나가 회중 찬송 지휘를 했었다. 그런데 이 찬송이 걸리면 낭패 중의 낭패였다.
예배 시간 전에 “이 곡의 여기는 교인들이 틀리게 부르기 쉬운 곳이니 이 부분을 칠 때는 일부러 크게 쳐 달라”고 반주자에게 특별 요청을 하고는 앞에 나간다. 그러다가 자주 틀리는 부분에 가서는 일부러 팔을 크게 흔들어 교인들이 지휘자를 보며 “불로(둘 셋), 불로(둘 셋)”하도록 해도 교인들은 지휘자의 지휘보다는 성령 임재의 ‘간절함’과 이제까지 부르던 ‘습관’에 젖어 아예 눈을 감고 악보 무시, 지휘자 무시, 반주자 무시로 부르는 통에 지휘자는 3/4박자로 지휘하다가 “불로 불로” 부분에 가서는 결국 2/4로 지휘를 하고, 반주자도 어쩔 수 없이 한 박자씩 줄여 쳐야 하는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나는 게 다반사였다.
하여간, 교인들은 처음부터 잘못 배운 습관을 버리고 악보에 있는 대로 부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는데 물론 지금도 완전히 고쳐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회자가 찬송을 틀리게 부르면 아무리 반주자가 제대로 친다고 해도 교인들 역시 틀리게 부를 수밖에 없기에 아예 회중 찬송을 부를 때는 예배 사회자가 아닌 음악을 전공한 지휘자가 찬양을 인도한다.)
이왕 찬송 얘기가 나온 김에 약간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하자면...
내가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던 시절, 행정을 담당한 수석 부목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자기 설교순서가 되면 어김없이 259장(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을 불렀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이라 그런지 찬송을 부를 때면 언제나 마이크에 입을 바짝 대고 크게 부르기 일쑤였다.
1절 가사를 잘 보면,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더러운 죄 회개하는 능력을...”이라고 하는 통에 교인들도 다 그렇게 따라 불렀다. 내가 처음에 그 교회에 갔을 때 ‘어? 내가 잘못 들었나?’라며 귀를 의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매번 똑같았다. 그래서 ‘회개’가 아니라, ‘희게’라고 불러야 한다고 일러줘도 그때뿐이었다. 이 친구는 찬송을 부르면 늘상 그렇듯이 오른손 바닥으로 강대상을 탕탕(!) 두드리며 “더러운 죄 회개하는 능력을...”이라고 불러 내가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었다.
지난주에 뜬금없이(?) 성령에 관한 찬송을 부르게 된 것은 그날이 ‘성령강림절’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교회 절기에 맞춰 선곡하는 수고의 손길에 다시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절기로는 ‘성령강림절’이었지만, 교회의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아마 돌아오는 주일이 ‘교회설립기념주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더 집중하려는 의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추신: ① 돌아오는 주일에는 예배 전 찬양으로 “거룩한 성”을 찬양하기로 했다. 늘 해오던 것이라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하나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악보 챙기는 것도 잊지 말고! ^^ ② 지지난 주에는 허창호 장로님이, 지난주에는 허남숙 권사님과 이돈영 집사님이 간식을 제공하셨다.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