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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3년 6월 17일
◆화요공부방 전산 김주원 교무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회상을 연지 이십 팔년에 법을 너무 해석적으로만 설하여 준 관계로 상근기는 염려 없으나, 중·하근기는 쉽게 알고 구미호(九尾狐)가 되어 참 도를 얻기 어렵게 된 듯하니 이것이 실로 걱정되는 바라, 이 후부터는 일반적으로 해석에만 치우치지 말고 삼학을 병진하는 데에 노력하도록 하여야 하리라.]
교도님들은 대종사님께서 법을 쉽게 설하셨다고 하면 이해가 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쉽게 설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육조 스님께서는 이 법문을 듣고 견성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금강경 공부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래 행위입니다 상당히 고원한 법문처럼 들리죠?
우리 상시 응용주의사항 1조에 [응용할 때에 온전한 생각하기를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우리 교도님들 생각에 응무소주 이생기심하고 어떤 말씀이 더 쉬우신가요?
대종사님 말씀이 더 쉬우신가요?
온전한 생각이라는 말이 뭔 말이신지 아시죠
응무소지 이생기시는 이놈의 말은 해석을 해도 중한바가 없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 두 말이 같겠습니까? 틀리겠습니까?
이 두 말이 같습니다.
그러면 대종사님께서 법을 쉽게 해석해줬다는 말이 근사한 말씀이죠?
그런 관계로 법을 쉽게 해석해 준 관계로 사람들이 구미호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알아 듣지 못하면 높은 법인거 같고
온전한 취사하라고 하면 금방 알아 듣는다 말입니다.
그러니깐 알아 듣고 구미호가 되었다,
정말로 알아 듣고 그것을 행하면 되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깊은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불법을 시대와 상관없이 대중화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대종사 당대의 정전을 만들 때는 아주 쉽게 하셨습니다.
쉽게 하시니깐, 한학에 능하신 제자 분이 정전이 품위가 있어야지,
쉬운 한글로만 정전을 만드느냐고 일상 수행의 요법을 하면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이런 문장을 심지오란자성초라고 해야
정전 답고 품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대종사님께 가서 간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 두 번 들어주시다가 어느 날, 그 옆에 접시물이 있었는데,
너가 아는 소견이 이 접시물에 있는 물이라면
내가 아는 것은 태평양의 바닷물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견의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다 불법을 알고 생활에 활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대종사님께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활용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불교정전을 하실 때, 정전을 지웠다고 썼다 지웠다가 썼다가 하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모르셔서 지웠다 썼다 한 것이 아니라, 아시는 것을 쉽게 풀이 하기 위해,
오해하지 않게 쉽게 할 수 있을까라는 서원이 있기 때문에
지우개로 지운 부스러기가 옆에 수북히 쌓였다고 합니다.
당신은 해 놓고 다음에 당신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무 내가 법을 쉽게 일러주니깐 사실은 쉽지만, 쉬운 것은 아니고
평이한 것이지만, 평이한 것이 아닌데 그 속에 다 뜻이 들어 있는데
사람들은 겉 넘어서서 구미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이 법문을 해 주신겁니다.
청운회 훈련을 하러 청운회원들이 왔는데
감상담 시간에 청운 회원이 올라오셔서 말씀하시는데
교리를 달통을 하셨습니다. 저 뒤에 제가 앉아서 들으면서 참 교리를 잘 하시기는 하시는데
주제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감상담이라는 것은 내가 여기에 들어와서 교리를 배워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말하는 건데
교리만 말씀하시는 설법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주제와 맞지 않다 생각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머리 좋은 사람은 몇 번 보면 다 할 수 있는데 그
말씀을 실제로 체득해서 그것을 내 것 삼아서 활용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하였습니다.
그 감상담을 듣고 제대로 된 감상담을 하시는 구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도 교법을 내셨을 때도 실천을 하기 위해서 내셨기 때문에
어떻게든 가능하면 쉽게 간단하게 평이하게 내 주신 것입니다.
교리를 대할 때 아는 것을 목적으로 대하면 포인트가 다릅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두어번 읽어보면 아는데
대종사님 법은 알라고 내 주신것이 아니라 하라고 내주신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평이하게 , 간단하게 내 놓으신 겁니다
저는 제 마음에 기쁜 것이 저는 이런 법문을 받들었기 때문에
대종사님께서는 재가 공부법 따로 출가공부법 따로 내 놓지 않으시고
재가나 출가나 똑같이 하도록 내 놓으셨는데
대종사님께서 법문이 꽃이 피는 것은 출가에서 도인이 많이 나오는 것 보다는
재가에서 도인이 많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법이 가가유생불이다라고 해서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대종사님의 염원입니다.
법신불 앞에서 기도만 한다면 부처님이 되겠습니까?
우리 교법은 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진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훈련을 해서 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전에 누가 종교를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할 려고 다니는데
원불교는 매일 공부하라고 한다고, 이것도 외워라, 저것도 외워라,
발표하라 하시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겠다 생각이 드는데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그 자녀가 공부를 어렵지만 그 공부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사는 것하고
공부 귀찮으니깐 먹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사람이 나중에 자력이 서지나?
이치가 모두 똑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조금 늦어도 펼친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정법을 이야기 할 때 쉬운 것이 좋지 어렵다고 안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70~80년 전에는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지금은 굶는 교무가 없습니다만
그 때는 생활도 어렵지만 굶는 교무가 있었습니다.
지금 살아 계신 교무신데 그곳에서 교화를 하셨는데 초창기라 쌀이 떨어졌는데,
부교무께 교도들에게 절대 쌀 떨어졌다고 하지 말라고 하자 부교무가 정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2일을 굶고, 법회날이 되자 교도님이 와서 식사는 하셨냐고 하자
부교무가 대답도 안하고 뭔가 이상해서 쌀통을 보자 쌀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만큼 초창기 교화가 어려웠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부산에 가셨을 때 제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하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정법 교화는 사람들에게 이른 거 같으니깐 교화의 방편을 하나 써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무슨 방편을? 하고 대종사님께서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원상이 검은색이였습니다. 검은색을 걸어 놓자,
원불교라고 해서 불교인줄 알고 들어왔다가 앞에 타이어같은 것이 있으니깐 그냥 나가버리는 것을
보고 법신불 일원상을 모셔두고 한 쪽 구석에다가 조그만한 부처님을 모셔두면
그것도 부처님이면 부처님이니깐
부처님보고 절하는 사람, 일원상을 보고 절하지 않겠냐고
이 교무님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대종사님께 말씀을 드리자
대종사님께서는 그 부처님을 봐야 제도 받을 분은 그 부처님을 모시고 제도를 받고
우리 일원상 부처님을 보고 제도 받을 분은 우리에게 올 것이다 하셨습니다.
아직 인지가 덜 깨어서 그 부처님을 더 큰 부처님으로 아시겠지만,
나중에는 부처님의 마음을 모시는 이 일원상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이 교화이지만,
사람을 모으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대종사님 교법을 통해서 정법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수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해도 정법 세계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인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전에 처음 총부에 들어왔을 때, 작은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그거는 1년 뒤에 가봐야 2년 뒤에 가봐야 컸는지 안컸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뿌리를 내리고 수십년을 커오니깐 지금은 낙락장송이 되었습니다.
원불교 교화는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호박잎 크듯이 쭉죽 크면 좋긴 좋겠지만,
진리라는 것은 쉽게 얻은 것이 오래 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교법은 훈련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하나가 마음의 변화가 오고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교무님이 교화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면 그렇게 훈련을 엄청나게 시키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훈련을 많이 하시나요?
제가 아는 교당 중에 제일 많이 훈련을 시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훈련을 많이 한다는 것은 교도를 제일 괴롭힌다는 것이지요
어찌 싫으신가요? 좋으신가요?
훈련을 하시니깐 힘은 들고 해도 뭔가 법력이 나옵니다
그게 우리 대종사님 법입니다
그 전에 어떤 교도님들이 대산 종법사님을 만나 뵈러 나오셨는데
대종사님은 누구를 위해서 나왔냐 하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일체 생령을 위해서 나왔다는 것이 정답이지요
저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교도님께서도 일제충생을 위해서 나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을 받들 때, 일체중생을 나왔다고 말하는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멀었다
대종사께서는 나를 위해서 나오셨구나하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야
그때서야 대종사님을 바르게 모신 것입니다
대종사님이 나를 구제하러 나오셨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가정이 구원을 받고 세계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구아주 즉, 대종사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 이런 마음이
내 마음에서 알기 위해서는 훈련 없이는 절대로 이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내가 완전히 탈바꿈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몇 살이나 먹어 보이시나요?
제가 금년에 환갑입니다. 들어온 세월이 40여년이 되니깐 이제야 철이 드는 거 같아요
이 법을 만나지 않았으면, 이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지금은 절감을 합니다
구아주, 거의 나를 구원해 주셨구나 이렇게 받아들어야 합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열반하시기 1년전쯤 이 법문 하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가만히 열반 준비를 하셨겠죠
[우리 모두 세세생생 수양연구 취사 삼학 공부로 위로 불지를 구하고 아래로 모든 중생을 제도합시다]
말은 평범한 말씀같지만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 우리가 할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모두 세세생생에 걸쳐 수양, 연구, 취사 삼학 공부를 해서
위로 불지를 구하고 아래를 일체 중생을 제도합시다
삼학공부를 하면 중생제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정산종사께서는 [마음공부 잘해서 새 세상의 주인이 되자]라고 하셨습니다
오는 새 세상의 주인이 되자라는 것은 평범한 법문이지만 너무 좋아요
대산종사 법문 가운데 [새 천지 열렸으니, 새 사람이 되어서 새 세상이 되자]
원불교를 알면 새 천지가 열린 줄을 알아야 대종사님이 어떤 어른이신지, 원불교가 어떤 곳인지,
우리 교법이 어떤 교법을 아는지 아는 것입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면 철든 사람입니다.
그때서야 교법이 내 마음에 오는 것입니다.
마음 부활, 각자의 마음을 거듭 살려내자
부모님에게 받아왔던, 원불교를 만나기전에 살아왔던 그 마음 그대로
거기에다가 조금만 리모델링을 해서 그대로 가는 것은 대종사님 제자가 아닙니다
가지고 왔던 마음을 대종사님 법 만나서 완전히 뒤 바꿔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판을 다시 짜야합니다
옛날에 어른이 교당을 잘 다니니깐 주위에서 저 사람 원불교에 미쳤다고,
저 사람은 원불교에 환장했어라고 하자 이 것은 안 좋게 한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그 소리를 그 교도님이 들으시고는 참 감사합니다하셨습니다.
환장을 하고 싶은데, 환장이 안되어서 이러고 있는데 환장했다고 축원을 해 주고 있으니깐
정말 감사하다고 하더랍니다
완전히 불보살 장부와 중생의 장부가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장부가 바꿔지나요?
공을 들여야 합니다. 공도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저는 두가지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는 일과를 통해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일과라는 것은 아침에 수양정진, 점심에 보은 저녁에 참회반성이죠
정기 일과가 있죠, 아침에 조석심고 저녁에 일기 이렇게가 정기일과인데
일과를 통해서 아침 선시간, 저녁 수양시간 일기시간, 이런 것을 정해 놓고
꾸준히 우리가 하루 온종일 아침 한끼, 점심 한끼, 저녁 한끼만 먹는데
그것만 잘 챙겨 먹어도 건강 유지하고 살듯이
생활 속에서 하는 공부가 마디가 있습니다 맥없이 주르륵 흐르면 맺힌 것이 없습니다.
그 마디가 일과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아침 일과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딱 맞으면 중간이 조금 어떻게 되어도 자꾸 힘이 납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지위가 있는 교도님 한분이 오셨는데
자기 전에 염불 7번만 해보세 라고 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몇 분 걸리셨나요?
그걸 제가 옆에 들으면서 기왕 할 것을 5분이나 하라고 하지 왜 7번하라고 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을 하니깐 7번이 7번이 아니였습니다.
습관을 들이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저녁을 묶어 주신 겁니다.
7번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묶는 것인데
한번 하고 두 번 하고 하다가 7번이 10번되고, 10번이 20번 되는 것이지요.
체험을 통해서 좋은 줄 알면 그게 습관이 되겠죠
일과를 딱 정해 놓고 아침에 한 시간 저녁에 얼마라고 하지만
그것을 다 못해서 짦은 시간이라고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공을 들여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면 일과를 통해서 잘 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그것과 동시에
하루를 살면서 쓰는 마음을 챙겨서 그 마음에 하나하나 공을 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대종사님 공부법이자, 이것이 삼학공부입니다.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해나가는데
삼학에 대해서 여러 가지 대종사님께서 해주신 법문도 있고 수 많은 법문이 있는데
그 많이 받든 법문 가운데 제 경우에 표준 잡기도 쉽고, 챙기기도 쉬운 법문이 있었습니다.
수양은 멈추고, 가라앉히고, 맑히고 연구는 문견, 사색, 수증 취사는 참고, 끊고, 행하고
저는 그때가 30대 때인데 법문을 받들고 삼학공부가 딱 잡혔습니다
이 법문을 받들고 이 공부가 너무 좋았습니다
정신수양은 멈추는 것이다
멈춘다는 것은 마음이 딱 동해서 나갈때 어쩌란 것일까요?
그 마음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누가 내 비위를 딱 거슬려서 울컥하고 나갈 때 나가고 나서 그 다음은 공부가 미진한 사람이고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보다 좋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이지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멈추려고 하려고 하다가 그 앞에서 멈추든지,
질질 끌려가든지 그 속에서 수양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마음을 써 놓는 것을 보면 마음을 멈춰야 할 경계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멈추는 것이 상당한 마음이 발현이 되고나서
끝나고 나서 챙기는 사람, 마음이 발현이 될 때 그 마음을 챙기는 사람 등
그때 공부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자꾸 공부를 해서 하다보면 내 마음이 흔적이 훨씬 잘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수양에서 멈추는 공부가 우리 일상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에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 없이 수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은 구미호에요
겉으로만 수양을 하고 실지로 수양을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가만히 겅계에 한번 멈추는 것이 100시간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 힘이 더 큰 것이다
멈추는 것이 작은 경계에서 멈추는 것이 무난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밥을 먹다가 밥을 흘렸을 때 뭐라고 할려고 하다가 마음을 거둔 것이 이것도 멈춘것이지요
솔직히 뭐라고 해도 큰 야단은 아니지요
하지만 멈추기 어려운 경계가 있습니다
누가 내 돈 10억을 돈을 사기쳐서 가지고 가던가, 애지중지 하던 무엇이 없어져 버렸다,
믿었던 친구가 뒤에서 나를 욕을 한다든가 하면 이러면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이런 경계에서는 멈추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럴 때 멈춰야 합니다
그전에 2차 방언을 할 때, 교단에 돈은 없고 일은 해야 하니깐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때 대산종사께서 감독으로 가서 지도를 하시는데
넘어오는 것 중 제일 쓴 것이 뭡니까? 쓸개죠
넘어오는 쓸개를 씹어서 삼켜라 그런 마음으로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런 경계에 한번 마음 들여서 멈추고 나면
다른 여타 경계는 수월하게 넘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멈추는 공부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큰 마음이든, 작은 마음이든 공부삼아서 해야합니다
각산종사께서 공부하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대산종법사님께 멈추는 공부에 대해서 받들고
자신은 서랍을 열 때 항상 멈췄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쓰는 서랍이니깐 그냥 무심코 열 수 있는데
멈추는 것을 단련하기 위해서 서랍을 열때 한번 멈췄다 여는 훈련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나중에 멈추는 습관이 생기더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멈추는 공부 아시겠습니까?
이거 해야 합니다
해 보시면 상당히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동심이라고 하는데, 동하지 않는 공부를 하는데
동하지 않은 공부가 말은 멋있지만 결국은 멈추는 공부입니다
나타나는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공부이지만 이것이 깊어지면 나중에 깊은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말해도 소용없고
멈추는 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이 멈추는 경지가 자꾸 깊어지고, 그 마음이 체득이 되는 것입니다
멈추는 공부를 오래오래 하다보면 대 부동심이 길러지는 것이다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힘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첫째는 멈추는 것,
그 다음에 수양의 두 번째는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가라앉힌다는 것은 둥둥 뜬 마음을 하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성질이 나서 한마디 쏘아 붙일려고 하다가 그 마음을 잡은 것은 멈춘 것이고
멈춘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잡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할 때 단전에 기운을 가라앉히는데 가라앉히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라앉히기 위해서 염불도 하고 선도 하고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독경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무언가를 합니다
가라앉히는 공부도 오래 하면 안정성이 생겨납니다 가라앉히는 힘이 생깁니다
처음에 맘을 잡아서 선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처음에 단전에 기운을 모을려고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됩니다
어느 틈에 풀려버리고 어느 틈에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고 하고 또 하면 마음이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것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가라앉히는 공부를 선 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꾸 해야 합니다
어느 분들은 일이 없고 염불이나 영주를 하면서 공을 들이시는 불들이 계시는데
어떤 방법이 되었던 마음 가라앉히는 공부를 해야합니다.
제가 살다보니깐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편안하게 있는 거 같은데 머리에서 기운이 확 풀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전에는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긴장을 하고 살면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하기를 시켜야 합니다
2부
수양에 있어서 멈추고 가라앉히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 번 째는 맑히는 것입니다
맑힌다는 것은 욕심이 나는 마음이 났을 때 제거 하는 마음입니다
이 공부를 하나에서 열 백 천만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공부라는 것이 해보면 오래 오래 공을 쌓는 것입니다
일 년 몇 년 십년을 해서 된다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하는 것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육십년 한도로 공을 쌓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육십년을 하다가 하기 전에 죽겄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육신년 한도로 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길게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씩 철이 나고 생각을 하니깐 육십년도 참 빠른 세월이고, 짧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의 마음을 먹고 이렇게 하려면 정성을 들이되 얼마만큼 들었나 세볼 필요도 없고,
항상 오래오래 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도 특이한 서원을 들여서 특이한 정법으로 하는 사람은 큰일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평범한 가운데 오래 하는 사람이 큰일을 하다고 하였습니다.
한 두번 해서 힘이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깐 곡식을 키우는데 밭이 풀도 나고 곡식도 심고 하는데
곡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풀을 뽑는데
풀을 뽑는 목적이 곡식을 잘 키우기 위한 목적이죠
그런데 힘을 타버리면 풀이 어느 정도 있어도 없는 것과 같고 그것이 힘을 못쓰는 것이 되는 것이죠
생각해 보니깐 공부가 안된다고 해서 걱정을 할 시간에
걱정을 한다고 해서 공부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만 하고 마는 것이지요
힘만 더 빼는 것이지요.
걱정을 할 시간에 경전 한번 더 보고 선을 한 번 더 보고 내 마음의 삼대력을 키우는데 공을 들이면
안일한 습관을 점점 달래서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날엔가 없어져 버려요
살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요 마음이 나면 그때 뿐입니다 탁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니깐 오래오래 해야 합니다
수양의 힘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늘 공부삼아 해야 합니다
연구는 참 중요합니다
세상 같이 못사는 사람이 멍청이입니다
맘 좋은거 필요 없습니다
사람은 연구력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지혜라는 것은 닦아지는 것입니다
고정된 것이 아니고 지혜도 닦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를 닦는데 문견, 사색, 수증 세가지의 길이 있다라고 하는것이지요
문견이라는 것은 듣고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듣고 보고 배우는 대상이 한정이 없습니다
진리를 알아다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가깝게 하는 것이 경전을 통해서 보고 듣고 하면서 지혜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지나가면 세상을 경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세상을 경전을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진리를 깨달은 경전으로 바른 마음의 표준이 나오면
경전이라는 것이 책만 경전이 아니라, 진짜 산 경전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천지은 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 땅에 있습니다. 천지은이 정전 안에 있습니까?
경전 안에 사은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천지은을 알기 위해서 정전에 밝혀주신 천지은을 보고
천지은이 고마운 것인줄 아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일러준 말씀을 바탕 삼아서 실지 천지은을 보면서 천지은을 밝혀내 내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실지 공부입니다
문견공부가 처음에는 경전을 가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실지 경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사람 사이의 관계가 시비이해의 터전이잖아요
거기에서 판단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문견공부입니다
문견공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혜를 개발해 가는데에 문견만 가지고는 까닭하다가는
지식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지혜로 바꿔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문견 공부를 해서 안 다음에는 사색 공부가 따라야 합니다
사색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법문을 받들어도 왜 그런 법문을 하셨는지 사색해 보는 것입니다
나 혼자 다시 굴려보는 것입니다
사색 공부가 있어야 내 안에서 굴러져야 내 것으로 자꾸 바뀌는 것입니다
그 전에 완도에 정도리가 있는데 그 곳에 돌들이 동글동글 합니다
처음에는 저는 돌들을 실어다가 놓은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무엇이 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바닷물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바닷물이 오랜 세월 하다보니깐 돌들이 아주 반들반들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영리한 것인데
이것을 한번 굴려보고 또 굴려보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빛이 나는 것입니다
제가 산에 올라가다 보면 산에 가서 가파른 곳에 나무가 있는데
대게 그런 나무를 보면 껍질이 반질반질합니다
처음에는 누가 윤을 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윤을 낸 것이 아닙니다
올라가는 사람이 한번 잡고 내려가는 사람이 넘어질 거 같으니깐 한번 잡고 하는 것이
이 사람도 잡고 저 사람도 잡고 쌓여서 윤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탑 둥근 원석에 석수 하시는 분이
이 돌을 십만번만 갈고 닦으면 어떤 거울보다 밝은 빛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받들고 그게 진리다
그래서 법문을 십만번만 연마 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내가 십만 번을 해야 겠다고 계산을 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말씀이 십만 번 까지 가기 이전에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색공부, 내 마음을 굴려보는 공부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이 깊어지고 지혜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하는 것을 그냥 듣고 마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사색 공부는 왜 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영생이 있다고 한다 , 영생이 무엇이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수증(修證)공부 , 닦아서 증득하는 것입니다.
수증공부라는 것이 두 가지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천입니다.
내가 안 것이지만, 실제로 해봄으로써 확증을 하는 것입니다
불공을 하면 인연이 좋아진다라고 배웠다고 그것이 맞다면 그것을 알아서 실제로 해봐서
그것이 된다면 거기에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선진 어른이 절친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음해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어떻게 생각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음해하는 말을 했다고 하자
마음 고생을 하다가 법사님이 나를 위안해 주시겠지 하고 찾아 뵙는데
다 들으시고 하는 말씀이 “가한테 더 잘해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 상대가 잘못 했다고 혼내주실 줄 알았는데
그 사람에게 더 불공을 하라는 것을 듣고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좀 차리니깐 그 어른 말씀이 생각이 난 것이
그래도 어른 말씀을 따라야지 생각 하고
그 사람 좋아하는 물건도 사주고, 내가 사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불공을 들이니깐
그 상대방에게 한 달 정도 하니깐 내가 정말 잘못했다라고 화해를 하고
그 동지하고 평생을 낙 없는 법동지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종법사님을 말씀을 받들지 않고 미워한다면 똑같이 이 회상에 살면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 분은 경계를 겪으면서 원수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을 확증을 한 것이지요.
이게 수증입니다
또 하나는 이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 생각으로 아는 세계와
생각이 없는 가운데 알아지는 세계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려고 하니깐 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수증이라는 것은 생각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할 수 없는 자리에
생각이 없는 가운데 의두를 걸어서 일심으로 의두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의두라는 것은 분석해서 통해서 아는 것도 있지만 분석하지 않고 뚫고 들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대산종법사님 어머님이 열반하시기 전에 가니깐
내가 원이 하나가 있다, 죽기 전에 나에게 가르쳐 달라고 대종사님께 성리품을 받들었는데
진짜 모르겠다고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지신 3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죽기 전에 원을 하시는데 가르쳐 드려야 하는데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서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맛을 모르는 사람한테 ‘신맛이 신맛이다’라고 하는 것이 알려주는 것이 가르쳐 주는 것인데
신맛을 먹어봐야 이것이 신맛이다라고 아는 것이지요
신맛을 모르는 사람이 알았을까요? 그러니깐 못 가르쳐 드렸습니다
수증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번 두드려도 모르고, 네 번 다섯 번을 가르쳐도 모르듯이
진리 연마를 할 때에 반드시 수증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반드시 두드려서 뚫어야 합니다
수증을 누가 해야 합니까?
출가 교역자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래된 교도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세월에 관계가 없습니다
삼학 공부는 처음 들어온 사람도 이 공부를 해야 하고 오래 된 사람들도 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취사. 참고 끊고 행하고
취사 공부는 이론이 아닙니다 참고, 참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아야 할 것은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참 병환이 나서 30대에 아프실 때에
의사가 밥 먹는 적을 절제하라고 하셨을 때,
그 때 당신은 돌을 먹어도 소화가 되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밥 한공기를 하지고 하루를 때우라고 하니깐
고문 받는 사람이 젤 어려운 고문 중 하나가 며칠 굶어 놓고 옆에서 밥을 지으면
밥냄새가 들어오면 정말 미친다고 해요 그렇듯 식욕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한 공기를 하루에 나눠먹으라는 것이 이것이 눈에 보이면 절대로 나눠 먹을 수가 없다
먹을 만큼만 주고 치워 놨다고 주고 해야지하면서 의사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대산종사께서 가만히 생각하면서 공부한다는 사람이 밥 먹다가 더 먹을까봐 치우고 치우고
하는 것이 쓰겄냐 하고 그래서 선반위에 올려 놓고 먹을 만큼만 먹고 하면서
참는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끊어라
아닌 습관, 악행, 이것은 끊어야 합니다
옭은 것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학 공부인데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 공부를 한마음 날 때,
절대 큰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공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사는 이 속에 다 공부가 들어있습니다
그 속에서 마음을 써 나갈 때 공부가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수양하고 연구하고 취사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작은 것 하나하나가 쌓여 가는 것입니다.
공부 요결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기로써 해 나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정전도 다 공부하시고 많이 하셨다고하셔서
그런 공부를 하는 것에 내 마음 변화시키자는 것이고
실지공부에 큰 원을 세우고 해나가시길 부탁드립니다
◆ 질 문 ◆
김명선: 삼학 중에서 저에게 있어서 수행이 젤 힘든다고 생각이 드는데,
아침에서 일어나서 좌선을 하는 것이 힘든데요, 대산종사님께서는 염주를 7번 하라고 했는데
전산님께서 아침에 일어나서 좌선을 하기 힘든 재가교도를 위해서 비법을 전해주시다면요
전산님: 비법이 없다고 했는데, 대종사님 법은 비법이 없습니다.
우리 일과 시간이 있는데, 저녁 늦게 생활상 문제가 있고
설사 그런 시간을 5시에 일어날 것을 6시에 일어나더라도 일어 났더라도 심고 올리고,
그 시간에 조금 시간을 내서 좌선을 하면서 그 시간을 띄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올 김용옥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젼에 나와서 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엎드려 뻗쳐를 하는데
손가락을 세워서 50번을 한다고 하니깐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해 보았는데 나는 2개도 못하는 것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대종사님께서 영육쌍전을 하라고 했는데 그래서 아침마다 하게 되었습니다
요가를 하고 2개를 하던 것이 10개를 하고 나중에는 35개까지 하였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하다보니깐 관절이 좋지 않게 되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도 아침에 잠깐 일어나서 하는 것인데 그거 해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깐
늘어난단 말입니다 제대로 하면 더 좋지만 설사 못할 형편이면 시간을 잡고 꾸준히 하고
또 시간 나서 더 하면 늘어 난다는 것입니다.
일반교도: 쉬는 시간에 제가 법문을 되새기면서 감상을 적었는데요. 저는 50이 넘어서야 김제원 교무님을 만나 나를 찾겠구나라는 자각을 했고 2년 동안 찾아 다니면서 법문을 받들었습니다.
오늘 법문을 받자 오니, 제 본래 습관대로 허둥지둥 받든 법문이 더욱 정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십 평생 평생 맘에 들지 않던 나를 이 법을 완전히 바꿔버려야 완전한 원불교인이 된다는 말씀에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제원 교무님을 뵙고 공부에 대한 희망을 얻었는데 오늘 더 큰 스승님을 뵙고 더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50이 넘으니 삼학 중에 연구에는 능히 났지만 수양과 취사에 하자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런 제가 삼학을 병진하기 위해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어야 삼학을 제대로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참고로 아침 좌선, 사경과 헌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전산님 : 구체적인 수행을 잘 하셨는데 삼학 가운데 뿌리가 수양입니다
수양이 뿌리고 연구 취사가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만 도는 것,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삼학이 병진되어야지만, 진정한 지혜가 나오고 진정한 취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수양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깊은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순차가 수양 연구 취사 다시 수양 입니다.
오정원: 가라앉히기를 말씀하실때 자신도 모르는 긴장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저 같은 경우 중도를 잡아서 할려고 하는데 한 없이 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적당한 긴장상태로 마음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잘 하고 있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전산님 : 잘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의 기질 변화를 해 나갈 때는 가라앉기를 하라는 것은 풀어지고를 떠나서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풀어지라는 것은 주의심의 문제입니다.
자유롭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방금 본인이 말씀하신대로
주의력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주의심을 챙겨서 관리할 필요가 있고
천성적으로 세심한 사람들은 조금 놓기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황원공: 교당생활을 하면서 교무님께 자주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요 교무님이 가르쳐 주신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편한데, 언제부터는 이렇게만 하면 자력이 없어져서 큰일이 되겠다고 해서 고민이 되었는데요. 큰 스승님들은 다 알고 계셔서 길들을 제시해 주시는데요. 그것만 따라간다면 옳은 길을 가는 것이지만 자력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산님: 종교라는 것은 생명이 신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신에서 시작해서 신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것도 그것을 믿고 왜 그런가 하는 것하고 그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천연차입니다.
우물을 팔 때, 대산종사 법문 쓴 분이 계신데, 하선 은생수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우물을 파라고 하셨는데,
한참 파도 우물이 나오지 않자,
종법사님이 진리를 아셔도 우물이 있는 곳까지 알랴 하고 하나 둘 떨어져 나갔습니다.
결국 둘이 남아서 삽으로 팠습니다.
마지막에 큰 돌덩이가 나왔습니다. 같이 파던 사람도 여기에는 우물이 나올 자리가 아닙니다.
하면서 가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산님 한 분이 남았는데 정을 가지고 나와서 돌을 깨자 은생수가 나왔습니다.
동산님도 중간에 가버렸다면 은생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공부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분이 진짜 진리를 깨친 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믿고 시작을 하세요 그것이 신입니다.
믿고만 있으면 자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알던 것이 나중에는 각행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마음이 열려 가지고 , 그 양반 경지까지는 못갈 수도 있어도
본인 스스로 깨쳐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문혜은 : 아까 수양하는 방법으로 알려주신 것 중에 멈추면 가라앉히고 맑히고라고 하셨는데, 그 마음이 멈추어 있는 것이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가라앉히라고 하셨잖아요. 사회적으로 그 마음 해결하는 것에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따로 있다든지 하는데요. 저는 스스로 멈추는 것으로 끊임 없이 이해를 하고, 맑히는 것으로 그 기억을 잊자라고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맞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말하는 스트레스 해소법과 원불교에서 말하는 이 방법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전산님: 사회에서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저는 잘 모르니깐,
제가 보자면 사회에서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기질적인 면을 활용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수양이라는 것은 신성수양입니다
신성수양이라는 것은 마음과 기운과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풀려야 기운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기운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근본을 말하면 기운이 근본이 아닌 마음이 근본입니다
마음의 습관이 그대로 있고 기운으로 적당히 풀리면 그때는 풀어져도
경계가 있으면 또 마음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양을 하자는 것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마음의 길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방법으로 멈추고 가라앉히고, 맑히는 방도인데,
우리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어떤 자리로 돌려 놓자는거냐면
원래 요란함이 없는 자리까지 돌려 놓자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습관력이 녹아나는 자리입니다.
공부하면서 성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일원상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대한 이해를 알아야 하고, 마음에 대한 표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말씀 하신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 방법이 아니고 더 깊은 공부가 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명선: 요즘에 시험이 몰아치고 할 때면, 기존에 아침에 좌선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있어도 잘 안되는데, 물질 세상에서 사는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죽어서 갖고 가는게 서원하고 업하고 복이라고 하셨는데 서원 업하고 복을 더 쌓기 위해서 사는 건지, 물질이라는 것은 없어지고 허무해 지는 것인데, 살아가는 것이 저축하는 과정이고 선업을 짓는 과정이고 김명선이라는 것도 이생이 끝나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고 그런 것을 쌓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슬퍼질 때가 있는데 공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 같기도 하고, 법 공부를 하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슬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전산님: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진리를 아시는 분들이 이것이 허망하다 하시는 분들은 그런 측면이 있지만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서,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 이상으로 하다보니깐
그런 마음을 돌려주기 위해서 허망하다고 하는데
자꾸 허망하다고 하니깐 불교에서 공을 이야기 하면서 공에 떨어진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진리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종사님께서는 허망하다고 안 것도 이 복은 만사 만리의 근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이 몸이 색신불이다 이 몸을 잘 가꾸고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은 일원상 진리장을 잘 보면 저도 공부하면서 그런 허망한 생각이 들때도 있는데
그 때는 일원상 진리 장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중심이 서졌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진리에 대한 이해가 점점 되면서 그런 생각이 없어집니다.
나라는 것이 결국 돌고 돌아서 나가 참 소중한 것입니다.
우주보다 소중한 것이 나입니다. 그 나가 어떤 나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뚱이 하나만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삶이 가난하냐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박순명: 믿는 마음을 강조를 하셨는데요. 신의에 대해서 의심이 많았는데 믿는 마음을 내라고 해서 내는 것이 아니고, 믿는 마음은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대도정법을 만났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생을 살면서 작은 회상에서 만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할지라도 이렇게 작은 회상이라고 믿으면 진급하는 기회가 적을 거 같아요
대종사님께서 자결하라고 하셨는데, 진짜 자결해서 사이비 종교가 된 종교가 있는데 만약에 그 사람들의 믿음만 순수 했다면 의심을 갖는 사람들보다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믿음이라는 것은 만약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는것이 믿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이것이 맞는건지 알고 싶습니다.
전산님: 승산법사님께서 만덕산에서 훈련을 하시면서 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묻자,
신이라는 것은 믿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은 신이 아니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이 말을 믿고 정말 명언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믿는 다는 것은 보통급도 신이 있고, 특신급의 신이 있고, 상전급이의 신이 있고,
출가위의 신이 있습니다.
최고의 신심이 가진 분은 여래위의 신심이니다. 여래위의 신심이 최고입니다
신심도 커 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심이 내냐? 신심이 우러나야지...
그건 아니고 신심이 우러나도록 신심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신심 공부는 안 믿는 마음을 믿는 마음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안 믿는 마음의 원인을 유추해 보면 자신의 업때문입니다
내가 이것을 시계라고 하면 믿습니다. 시계인줄 알기 때문에 믿습니다
파란 안경을 모두 씌여 놓고 이것이 노란색이다라고 하면 믿습니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왜 못믿느냐? 업이 가려서입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신이라는 것은 업이 그만큼 벗겨져야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신심이 생기냐? 별거 없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면 되는 것입니다. 요란하면 가라앉히고 요란하면 가라앉히고
안 믿는 마음이 나오면 자꾸 믿는 마음으로 돌리는 것이 신심 공부입니다
항마위 부터는 앎에 바탕해서 믿음이 커 나가는 것입니다
가장 신성이 지극한 어른은 정산종사, 대산종사입니다
그 어른들은 그런 신심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런 법력을 내신 것입니다.
신심을 돋구도 나가야합니다
정산종사 성탑에 가서 참회를 할 때마다 대종사님께 나 없이 바치는 신성을 가장 본받고 싶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입만 열면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주산종사님 3분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류현진: 모든 것이 변해 가듯이 사람도 변해 가는데, 내가 이 법대로 살아 보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공부심이 나다가도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지금 나의 신심이 계속 될 신심일까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지켜 나갈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전산님: 그 전에 정성이라는 것은 쭉 이어가는 것을 정성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약에 간단없이 이어가는 것만 정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정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간단이 있습니다. 한때는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떴다 하는 것이지요
저는 한번 힘을 얻은 것이 대산종사께서 정성이라는 것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어진 것이 다시 이어지는 것이 정성이다라고 하는 것을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10년이 끊어 졌다가 다시 이어지면 이것이 정성이다라는 법문을 받들고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더라고 다시 한 마음 살려서 이으면 그것이 중요하다
또 하다 또 하다 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 마음이 서서
제가 군대에 가서 훈련을 하는데 몸이 천근 만근입니다.
기상나팔을 불면 일어나서 생각이 드는게 한 달간 이렇게 군대가 힘든데 3년을 살까 걱정을 했는데
그런데 늘 힘든 것이 아니였습니다.
1년이 지나니깐 작년보다 똑같은 훈련인데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공부도 늘 똑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을 챙겨서 하다보면 됩니다.
너무 염려 마시고 법회만 잘 나오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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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길고 어려운 내용을 잘 정리하여준 소이연교우님 감사해요. 옮겨 보관합니다
이연교우가 너무 너무 수고가 많았어요. 다시 꼼꼼이 읽어봐야겠어요. 전산님 설법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질문도 답변도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참석 못하신 분들이라도 후기를 읽어야 할텐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이연교우님 정말 감사드려요~*^^*
이연이가 우리 교당의 법랑이네!! (왠지 교무님 버전 ㅋㅋㅋ)
감사해요~!!
대단히 감사합니다~~저도 옮겨서 살피고 대조해 가렵니다~~
따로 메모 했지만 한 눈에 다시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좋아요 감사합니다^^ 하다보면 됩니다. 라는 말이, 계속 맴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