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금요일. 맑음. 계간 잡지를 낸다고
최 교수가 점심 때 만나자고 해서 인사동 식당에 나갔더니. 전에 말하던 계간 잡지 하나를 내기 위한 출판등록을 마쳤다고 하면서, 2년 정도 글을 한편 씩 연재하여 보라고 한다. 그러마고 하였다. 잘 되기를 빈다.
12월 26일 토요일. 맑음. 사칠 논변 왕복서를 다 읽다.
앞서 조금 읽다가 접어 두었던 김영두(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 옮김,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2003, 서울, 소나무, 국판 607쪽)를 대충 다 읽었다.
32세에 처음으로 서울에 와서 벼슬을 시작한 소장학자 기고봉은, 58세로 성균관 대사성 벼슬을 하고 있던 명성이 자자하던 노학자 이퇴계 선생을 방문하여, 학문에 관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이 두 분 사이에 10여년에 걸쳐서 100여 편이 넘는 편지가 서로 오고 갔다. 그 많은 편지들은 이퇴계 문집과 기고봉 문집에 대개 다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분들 사이에 나눈 사단·칠정 논변에 관한 왕복서간만 특별히 모은 《이선생왕복서二先生往復書》라는 책이 따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책들이 모두 퇴계학연구원과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미 다 완역되어 나왔다.
그러나 사상사 전공인 역자가 낸 이 책은 그런 번역들 보다가는 좀 더 말이 쉽고 부드럽게 다듬어져 있다. 이 책은 1부에서는 일상의 편지들 114편을 수록하였고, 2부에서는 학문을 논한 편지들 수 10편을 수록하였는데, 그중에는 일상의 편지들의 부록으로 학문을 논한 것은 따로 때어 학문을 논한 것으로 분리하여 놓았다. 그래서 전반에는 좀 내용이 쉬운 글만 모으고, 전문적인 내용은 뒤로 몰아놓아 우선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는 이 책의 뒷부분을 읽으면서 26세나 연하인 아들과 같은 제자에게 퇴계 선생이 얼마나 깍듯하게 예절을 갖추고 대하며, 상대방이 한 말에 대하여 얼마나 면밀하게 검토를 하고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고 번역도 잘 되고, 해설도 괜찮은데다가, 원래 두 분의 이론의 요지가 깊이가 있지만 명확하고, 똑 같은 말이 준 편지와 받은 편지에 되풀이 되고 있으며, 다음에 다른 편지를 할 때에는 앞에서 하였던 편지의 내용을 다시 또 요약한 경우가 많으니까, 생각보다는 이 논쟁의 핵심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중요한 고전을 한권 다 읽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