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노래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의미를 각인한 노래들을 매주 2회씩 연재한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노래'란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송창식 '왜 불러' (1975)
문화의 암흑기를 뚫고 솟아오른 '시대의 사진' 같은 노래
표면적으로 ‘왜 불러’는 1970년대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곡이다. 1975년 발표된 이 곡은 장발과 생맥주, 통기타로 표상되는 대한민국 20대의 낭만을 무덤덤하게 포착해낸 ‘시대의 사진’과도 같은 노래로 회자된다. 그러나 사실 맥락은 좀 더 깊은 곳에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 노래가 탄생한 1975년은 박정희 정권의 예술탄압이 본격화된 바로 그 해였다.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예술문화윤리위원회(예륜)는 국가질서와 사회윤리를 강화한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곡들을 금지시켰다(대마초 파동으로 수많은 음악인이 구속된 것도 이 해였다). 그야말로 상식 이하의 국가검열이 행해지던 시기였다. 별세계에서 행해졌던 전설 같은 이야기 따위가 아니었다. 이 땅에서 불과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이런 뒤숭숭한 시대적 분위기를 정밀하고 유머러스하게(슬픔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담아낸 영화다. ‘왜 불러’는 영화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었던 노래다. 머리를 기른 젊은이가 도망친다. 경찰이 그의 뒤를 쫓는다. 그 장면에 흐르던 노래가 바로 송창식의 ‘왜 불러’다. 지금 봐도 멋진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추격 씬 중 하나다. ‘저런 시절도 있었구나’라고 미소를 짓지만 이내 싸늘한 무언가가 가슴에 얹힌다. 힌트는 노래 제목에 있다. 왜 국가는 나를 호명하는가? 왜 경찰은 나를 추격하는가? 노래는 아주 근원적인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지적한다. 우리는 국가장치에 포획된 존재가 아닌가. 노래는 그것을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씁쓸하게 남는 것은 초고속 성장과 발전 뒤에 숨겨진 야욕의 얼굴이었다. 예언과도 같이 이 노래 역시 금지곡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그 사유는 놀랍게도 "주인공이 경찰관을 따돌렸기 때문"이었다(말하자면 공권력을 멋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노래의 선정이유에 대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노래는 ‘사랑이야’ 보다 울림이 강하지 못하고, ‘토함산’만큼 찡한 순간을 전달하지도 못하며, 짝꿍 ‘고래사냥’보다 유명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곡을 시대를 빛낸 명곡 리스트에 올려놓기로 했다. ‘왜 불러’는 송창식의 곡이 얼마든지 정치적 컨텍스트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지금 ‘세시봉 콘서트’를 통해 ‘추억마케팅’의 일환으로만 소비되는 가객 송창식의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는 곡으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1978년생인 나는 영화와 노래를 한참 나중에 접했다. 명작은 그런 시간적 구획을 우습게 건너뛴다는 얘기를 진작부터 들어왔다. 그걸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으나 계기는 섬광처럼 찾아온다는 것을 ‘왜 불러’는 증거했다. 노래를 들었을 때의 전율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송창식의 다른 곡들에 대한 선택을 철회하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아마도 그건 중학교 2학년 때, 지역 유선방송의 프로그램 속에서 건져 올렸던 보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타이틀은 ‘바보들의 행진’이었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곡은 ‘왜 불러’였다.
이제, 개인적 감상에서 벗어나 질문을 던진다. 송창식은 왜 오랫동안 이어져야 하는가? 구질구질한 설명을 노래로 대신해줄 수 있는 소수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7080’이라는 분절기준으로 그를 재단하는 현재의 풍토를 나는 썩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불러’는 충분한 평가를 받았다는 연유 아래 아직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한 가수 송창식의 대표곡이자, 문화의 암흑기를 뚫고 나와 우뚝 솟아오른 가요사의 봉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