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창세기49장 25-33절)『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 오리로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49장 25절『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엘 샤다이)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샤마임)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샤마임은 하늘 위의 축복을 의미한다. 이 축복은 두번 받는다. 첫번째는 작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고, 두번째는 큰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태홈 아래에 쭈그리고 있는 품과 태의 축복이다. 태홈은 빛이 없는 흑암 물덩어리다. 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독생 하신 하나님의 품이라고 표현되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물덩어리를 성령이 감싸고 운행하시므로, 이 물덩어리는 샤마임과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빛이 없으므로 무저갱과 같은 곳이다.
태(라함)는 자비를 의미한다. 라함은 불쌍히 여겨서 주는 복을 의미한다. 라함 안에는 율법이 들어있다. 하나님 나라에서 힘차게 세상으로 내려와 흙집을 입고 인간이 되었으나, 하나님 나라를 다 잊어버리게 되므로, 고통가운데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구원의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태홈 아래 있는 라암이다. 복의 형태는 빛(그리스도)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서는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표현된다.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약속이 율법 안에 있다. 그래서 라함 안에 있는 것이다.
49장 26절『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하라)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올람) 산(가부아)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나지르) 자의 정수리로 돌아 오리로다』부여조는 잉태하다는 의미다. 하라는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오는(태어나는) 축복을 의미한다. 첫사람 안에서 오는 축복보다, 마지막 아담 안에서 돌아가는 축복이 낫다라는 말이다. 낫다 라는 단어를 파자하면, 기멜(율법)과 베트와 레시가 된다.
올람은 하늘에 속한 단어다. 가부아는 산으로서 성전과 우상이 산당을 표현하는 여러 산들이 있다. 올람과 가부아가 경계로서 존재하는 모습이다. 경계로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물질세계라는 것이다. 물질세계가 존재하는 한, 모두가 하늘의 구원을 받는다 라는 말이다. 그 구원의 축복이 요셉의 머리(우두머리) 의 복이 형제들에게 돌아간다. 물질세계와 하나님 나라의 경계가 존재하는 한 하나님 나라에서 오고, 다시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지르는 구별되다 라는 의미다. 구약성경에서 나실인은 바로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 데려가는 사람은 나실인이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은 나사로이고, 벤냐민이 된다. 나실인의 모임(카할)이 바로 여호와의 총회다.
49장 27절『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보케르)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예레브)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사야 53장 5절에서도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 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파)』라고 말하고 있다. 라파는 치료받는 의미다. 즉 세상에 들어와 죄인된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찟긴 것은 세상에 있는 죄인들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세상에 있는 죄인들이 베냐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있게 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9:41)』
보케르는 빛이 온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시는 것이 보케르다. 아침에 빼앗은 것을 먹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의미다.『저녁(예레브)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이 말은 자기가 먹은 것(예수를 영접)을 어둠에 있는 자에게 나누어준다는 의미다.
49장28절『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쉐베트)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다바르)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열두 지파가 다 쉐베트라는 의미다. 각각의 지파도 쉐베트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큰 쉐베트가 된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다. 열두지파는 열지파가 베냐민이 되고 요셉(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아비가 아세르의 이것 저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아비가 분리하신 4와 6을 의미한다. 다바르는 하나님 나라로 데려간다는 축복이다.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이 말의 원어는『아세르 이쉬를 축복하고 축복하였다』라는 것이다.
이쉬는 아담으로부터 이샤(여자)를 끄집어내고 남은 한편이 이쉬(남자)다. 이쉬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세르 이쉬는 분리하는 이쉬로서, 데리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이쉬라는 의미다. 데리고 가는 이쉬에게 축복했다는 것인데, 축복을 두번했다. 이쉬로 인해서 작은 이스라엘과 큰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49장29절『그가 그들에게 명하여(짜바)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살았다는 말은 영이 살았다는 의미다. 열조는 영이 산 백성들이다. 히브리인으로 성읍에 거하는 백성이다. 성읍에 있는 백성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인데, 아브라함과 이삭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모여진 카할 백성들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메아라)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렛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아세르)에 대해서는 창세기 23장 8-9절에서 말한다.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굴을 내게 주게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아세르 굴은 분리하는 굴(무덤)이다. 막벨라 굴은 이층 구조로 되어있다. 굴에서 하나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하나는 음부로 분리된다. 그래서 아세르 막벨라 굴이 된다. 이 막벨라 굴은 아세르 가나안 땅에 있다.
49장30절『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막벨라 굴이 마므레 땅 앞에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13장 18절에서『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 하여 단을 쌓았더라』모레 세겜 땅이 후에 마므레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마므레는 하나님의 말씀이 분리되어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에는 상수리 나무가 항상 함께 한다. 상수리 나무는 다른 곳에는 에셀 나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바로 생명나무인 것이다.
창세기 23장 19절에서는『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헤브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세워지는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사백 세겔을 주고 밭을 사서 무덤을 만들었는데, 창세기 23장 16절에서『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라고 말한다. 사백이라는 말은 타브(~을 마친다)라는 의미다. 땅에서 자기의 일을 마친 사람은 사백 세겔을 지불한 것이다.
49장31절『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장사된 곳은 막벨라 굴이다. 라헬은 여기에 장사지내지 않고, 베들레헴에 장사지냈는데, 베들레헴은 벧엘(하나님의 집)과 레헴(율법)의 합성어다. 베들레헴은 율법 속에서 나타난 성전이다. 참 성전은 그리스도이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장사지냈다는 것이다. 막벨라 굴에 장사지낸 것과 베들에헴에 장사지낸 것은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49장 32절『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미크네) 것이니라』미크네는 말씀으로 샀다는 의미다. 막벨라 굴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백세겔(흙집)을 낸 자들만 가는 곳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체를 가지고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된 자들만 가는 곳이다.
49장33절『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카라) 그 발(레겔)을 침상(미쉬카브)에 거두고(아사프) 기운이 진하여(가바)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카라는 성취하다는 의미다. 야곱이 명령하는 모든 말이 끝났다는 것이다. 침대는 미쉬카브라는 단어다. 여기서 샤카브는 땅에 누워잔다, 간음한다는 의미를 갖는데, 샤키브는 말씀 안에서 무엇인가를 다시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사프는 세상에서 샤카브 하던 그 발을 침대 안으로 불어모았다는 것이다. 세상 안에서 자기의 발은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바는 기멜(삼) 바브(육) 아인(안식:칠십)의 합쳐진 단어다. 삼이 있는 율법을 가지고 세상에서 칠십(안식의 말씀)을 이룬 것이 숨을 거둔 것이다. 무트는 사백세겔을 내고 아브라함의 품(음부)로 가는 자들이고, 가바는 바로 안식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의미한다. 백성(열조) 안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호와의 총회의 백성으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