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치는 겨울밤에 읊은 배고픈 생각 셋째(大雪寄景三)
2024년 1월 20일
출처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석북집(石北集)』, 권3, 「대설기경삼(大雪寄景三)」
신광수 선생께서 한강 하류에 있는 경기도 교하에서 가난하게 사셨는데 늦은 나이 38살(1750년)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그냥 시골에 사셨다고 합니다. 가난하였기에 당시 백성들의 가난한 삶을 많이 읊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신께서도 가난하셨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외롭고 갑갑하고 답답한 사정과 심정을 잘 아시고 읊었습니다.
이 시의 제목에서도 말하듯이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밤에 가난한 사람 누구나 점층적으로 벌어지는 상황과 심정을 알려줍니다. 아마도 시를 몇 수 지었는데 이것만 남겼습니다.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추운데 땔나무도 없는지 가을에 불쏘시개로 모아놓은 가랑잎으로 군불을 때고 있습니다. 또 배고픈 것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눈보라 치는 추운 밤에라도 한강에 나가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겠다고 읊었습니다. 또 물고기 잡는 것도 시원치 않았는지 가까운 친구에게 양식을 부탁하러 길을 가고 싶으나 눈이 많이 내려 길도 덮여 보이지 않고 또 부탁하는 서신도 보내지 못하였나 봅니다. 그렇다고 배를 타고 친구를 찾아가 양식을 꿔오고 싶지만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가만히 잘 있는 가까운 친구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시에는 가난한 사람의 궁색한 모습이 점층적으로 높아졌다가 결국에는 포기하는 심정이 절실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번역문을 보면 눈 내리는 겨울밤에 외딴집에서 군불 때면서 조용히 불멍하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이해하였습니다. 아마도 번역한 사람들도 우리나라 몇십 년 전의 가난을 잊었는지 배고픈 사람들 심정을 모르는지, 신광수 선생이 가난한 모습과 심정을 읊은 시 번역문이 뜻을 잃었기에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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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 내리는 겨울밤에 읊은 배고픈 생각 셋째(大雪寄景三) :
오늘 낮에는 산속에도 눈보라가 몰아치는데,
몹시 추운 강가에는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하얗게 눈 덮인 외딴집이 추워서 가을에 모아놓은 불쏘시개 가랑잎으로 군불 때고,
(배고프니) 작은 배를 타고 추운 밤에라도 나가서 반드시 물고기를 잡아야겠네요.
우거진 숲은 끝없이 넓은데 눈이 많이 내려 오가는 길마저 덮여 보이지 않는데,
십리 길이 아무리 가깝더라도 어떻게 서신을 보내 양식을 부탁하겠습니까?
가까운 벗에게 배를 타고 삿대를 밀어 찾아가지 않으렵니다,
그래야만 조용히 잘 있는 벗을 흔들어 번거롭게 하지 않겠지요.
今日山中惡風雪, 一寒江上復如何?
白屋獨燒秋後葉, 孤舟應得夜來魚(漁).
千林極望無行逕, 十里何由見尺書?
莫向山陰回小棹, 故人搖落正端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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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風雪惡 : 중국 시인들은 夜來風雪惡이라고 쓰는데 조선 시인들은 惡風雪라고 쓰는 관습이 있습니다.
一寒 : 一은 모든 것(一切)을 말하고 모든 만물이 춥다는 뜻이므로 몹시 아주 뜻일까요.
復 : 復은 아뢰다 동사입니다.
白屋, 秋後葉 : 白屋은 지붕에 하얗게 눈 내렸다는 뜻이고, 秋後葉은 주인이 게으르거나 눈이 많이 내려 땔나무를 해오지 못하여 가을에 불쏘시개로 모아놓은 낙엽을 불 땐다는 뜻.
魚 : 魚는 동사그물질하는 漁입니다. 아마도 끼니가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기에 아직 강물이 얼지 않았는지 아무리 눈 내리는 겨울밤이더라도 나가서 물고기 잡겠다는 뜻.
千林, 行徑 : 나무가 아주 많다는 뜻이며 곧 우거진 숲이고, 行徑은 오가는 길.
何由 : 由는 방법 수단이므로 어떤 방법으로 곧 어떻게 뜻이네요.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는 뜻.
山陰棹 : 원나라 유명한 시인 王冕이 「寄存道崔隐君」 “何日乘清興?山陰棹雪舟”에서 山陰縣에 사는 벗 崔隱君을 만나려고 배를 타고 가고 싶다는 뜻.
搖落 : 『楚辭, 九辯』:“悲哉秋之爲氣也!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 杜甫 , 「謁先主廟」」:“如何對搖落,況乃久風塵。” 搖落은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며 搖動와 같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