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두고 / 봄바다.
젊은 시절 까마득해 보였던 정년이 이제 코앞에 있다. 원해서 간 길이 아니었기에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학창시절 내게 상처를 남긴 나쁜 선생님들처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런 시절은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만 영향을 미쳤지만, 관리자로서 좀 더 넒은 안목으로 현장을 바라보니 내 한 마디의 파급력이 생각보다 컸다. 내가 의견을 내면 한발 앞서 나가고 또 오해하기도 해서 새삼 말의 위력을 실감한 시간이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자리에서,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을 어지럽게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아이들은 이런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갈 길은 없는지 진지하게 둘러보고 찾는 것이 요즘의 내 관심사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평소 잊고 살았다. 이 나이 되니, 가장 큰 위안은 자연이다. 일에 부딪혀 괴로워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쉽게 조언하지만, 나처럼 단순하고 다혈질인 사람은 그 시기를 참고 넘기기 힘들다. 젊은 시절엔 마음 맞은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처 준 이를 헐뜯으며 화를 해소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몰려오는 찜찜하고 무거워지는 그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힘들면 가까운 산을 찾는다. 홀로 걷다 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 잘못이 선명하게 보인다. 안타깝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그 과오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깊이 성찰하다 보면 그 방법도 떠 오른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의 나무며 들꽃을 본다. 걱정을 벗어 버린 이에게 보여지는 자연은 새삼스럽게 평온하고 아름답다.
작년 함께 근무한 ㅈ 선생님은 경력 10여 년 된 젊은 분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호른을 배운 꽤 수준급 연주자였다. 음악시간에 호른을 선보이며 수업을 진행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분이 어디서든 큰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특히나 그 반은 드세기로 소문이 나 있었고, 어려움이 생기면 곧장 교장실로 달려오는 수준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을 혼내거나, 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한 적이 없다. 교원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지휘 공부를 하러 광주에 오가면서도 항상 웃는 그분을 보며 음악이 주는 영향력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주는 여유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줄 아는 이의 차분한 태도를 보며 내 젊은 시절의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미래는 에이아이(AI),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한다. 앞으로 계속 관련 연구를 한다 해도 그것들이 인간을 능가하기는 어렵다는 말로 한사코 인간을 추켜 세우지만,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보지 않았던가! 그것들에 밀리지 않으려면 인간 고유의 특성을 더 살려 나가야 하리라. 함께 어울려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정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고자 아끼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태도, 예술을 즐기는 여유와 감동하는 문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 먼 미래 그들이 행복한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로다.
첫댓글 벌써 정년이라뇨?
말도 안 돼!
2년 남았으니 이제 곧 맞죠?
2년도 금방입니다. 야속한 게 세월이네요.
제가 다 아쉽네요.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면 항상 즐거운데, 아이들도 그러리라 봅니다.
이렇게 고민하시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이들은 행복할 거 같습니다.
정년 준비 잘 하셔서 제2의 인생 즐기시길 바랍니다.
2년밖에 안 남으셨다니 진짜 아쉽긴 하네요. 단순하고 다혈질인 선생님의 성격 너무 매력적이예요. 자신만의 가치를 지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 응원합니다!
정년까지 계속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남은 2년도 건강하게 잘 마무리 지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매력적이세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정년 후의 삶도 응원합니다.
인생 2모작도 자기개발을 하면 즐기면서 나날을 보내실 겁니다.
정년을 준비하는 단단한 마음이라니, 봄바다님과 한 울타리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꿈이 카랑한 목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