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평이 어제 국빈 방문하였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이제 한층 더 가까워졌다.
미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북한은 중국 외교의 상징인 펜더를 표적으로 사격연습을 했다는 보도다.
중국이 저희보다 한국을 먼저 국빈방문하는 데 대한 투정치고는 너무 과격 살벌하다.
그런 와중에 일본은 북한에 대한 대북제제를 완화하였다.
일본과 북한이 시진핑 방한에 때맞춰 깨춤을 추고있다.
또한 일본은 미국의 비호아래 엊그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헌법을 통과시켰다.
고노담화를 부정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더니 이제 유사시엔 한반도에서도 전쟁개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베는 좌충우돌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칼춤을 추고 있다.
미국은 덩달아 손 안대고 코풀 수 있으니 쌍수들고 환영이다.
돈 한 푼 안들이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으니 그아니 좋을쏘냐?
한미일(韓美日) 공조의 힘은 한 풀 꺾인 게 분명해 보인다.
바야흐로 동북아에서 새로운 짝짓기가 시작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아주 어려운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최근의 시대상황이 420여 년 전의 임진왜란 때와 많이 닮아 있다.
시진핑은 서울대 특강에서
“이순신 장군과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했다.”라고 하며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양국은 항상 서로 도와주면서 극복했다.
400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말하며
임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했음을 강조했다.
필자는 산행과 임란전적지 답사를 하루일정으로 엮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상주 노악산 산행의 전단계로 구포 부민병원에서 가까운 ‘구포왜성’과 노음산으로 향하는 25번 국도상에 있는 ‘임란북천전적지’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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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30여 분 일찍 버스를 탔다.
벼르고 벼르던 '구포왜성'을 이참에 답사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덕천동역에서 내려 화명동 방향으로 올라와 마을버스를 이용 '빙상센터' 다음 정류장인 '구룡사'에서 하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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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내리면 'S오일'주유소가 있고 나즈막한 산자락 아래에 구룡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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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구룡사 아래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개구멍이 있어 산악회버스를 타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막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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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는 구포왜성과 빙상센터를 연결하는 육교다. (빙상센터에서 올라도 된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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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를 지나 임도를 따라 오르면 넓은 분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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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과 석불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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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되어 있는 구포왜성(龜浦倭城)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김해와 양산간의 연락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쌓은 왜성으로 김해성에 딸려 있다.
김해 죽도성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전략상의 요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감동포성이라고도 불리워진다.
금정산의 줄기가 끝나는 곳에 쌓았으며 서편으로는 낙동강을 끼고 그 밑에 배가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성벽은 나사모양으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좁히면서 올려 쌓았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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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은 신라시대 황룡 장군이 침략한 왜구와 맞싸우며 성을 지키다가 군사 500명과 함께 전사한 전설이 있어 의성(義城)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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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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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을 무력으로 침범하여 숫제 주인행세하듯 성을 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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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서쪽 낙동강에 선착장을 두어 선박으로도 군사를 이동할 수 있도록 했으니...
성벽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혀 올렸는데 성의 상단부에는 10m 높이의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왜성은 이렇게 각도를 완만하게 쌓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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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내부의 중심부엔 묘기 한 기가 섰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이동 중의 버스에 타기로 하였지만 서두른 덕택에 여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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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버스가 대는 부민병원으로 가기 위하여 낙동고 쪽으로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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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니 구포왜성이 있는 낮은 산자락(고속도로 진입로)이 보인다.
상주 임란북천전적지(尙州 壬亂北川戰跡地)는 노악산 남장사로 가는 이동로상에 있다.
노악산(노음산) 산행의 전단계로 남상주IC에서 내려 3번 국도를 타고 올라왔다.(상주IC에서 와도 수월하다.)
임진왜란(1592) 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일(李鎰)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1만 7천여 명에 대항하였으나
무기의 열세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였다.
이곳에는 순국한 8명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는데 이일·이경류·박지 3충신과 김준신·김익 2의사를 충의단에 함께 모셨고, 권길·박걸은 현지단에, 김종무는
충열단에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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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 관광지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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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악산과 임란북천전적지와 천봉산을 알기 쉽게...
![](https://t1.daumcdn.net/cfile/blog/231C5B4353B8FF481A)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적지 정문인 솟을삼문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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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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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인 '임란북천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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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商山館)을 내려다본다.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고을마다 설치되었다.
전패(임금을 상징하는 나무 패, 지방 객사에 전자를 새겨 세워 그 곳 관원이 배례하던 나무 패)를 안치하고 목사가 부임하면 이 고을에서 오랫동안 무사히
근무하기를 빌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대궐을 향하여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절을 하는 향궐망배(向闕望拜) 의식을 행하였다.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모든 관원이 여기에 모여 참배하였다고 하며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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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조선국사호의사김준신사의비>
김준신(金俊臣)의사는 청도인으로 이곳 판곡(板谷)에서 태어났는데 판곡은 고려조 이후로 청도 김씨세거지였다.
임진왜란이 반발하자 의사는 32세의 나이로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소집하여 솔령장(率領將)이 되었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칠곡 석전까지 전진하였다가 다시 상주 본진으로 돌아와 상주성 사수에 분전하여 많은 왜적을 도륙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임진년
4월 25일 장렬히 순국하였다.
당시 의사의 활약에 분노한 왜적들이 판곡을 찾아 김씨일문을 멸하려하자 죽어도 왜적의 손에는 죽을 수 없다하여 낙화담에 투신 자살한 김씨문 절부들의 넋도
오늘까지 낙화담을 밝히고 있다.
이에 노산 이은상선생이 1973년에 쓴 낙화담의적천양시(落花潭義蹟闡揚詩)를 소개한다.
임진년 풍우 속에 눈부신 의사모습
집은 무너져도 나라는 살았네
절사곡(節士谷) 피묻은 역사야 어느 적에 잊으리라.
설악(雪岳)높은 본대로 이르는 말
꽃은 떨어 져도 열매는 맺었다고
오늘도 낙화담향기 바람결에 풍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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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루(太平樓)
이 누각은 조선시대 1808년(순조8년)에 상주목사 정동교가 건립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성행한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당시는 왕산을 중심으로 쌓은 상주읍성 관아문의 내삼문 밖에 있었고 동헌의 문루로 사용하였다.
그 후 1920년 상주향교 동편에 있는 동산으로 옮겼고,1960년 향교서재 부근으로 옮겨 남산중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1992년 현재 위치에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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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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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 아래로 임진왜란 당시의 참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말없이 북천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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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선 순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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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걸(朴傑)순절단(殉節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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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전적지 상징탑 양옆으론 활을 든 군사와 삼지창을 든 의병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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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밟고 외삼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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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절문(景節門)을 올라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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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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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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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각에는 임진왜란(1592년) 때 이 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종사관 윤섬,박호,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심,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가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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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의사단비」는 1793년 (정조 17년)에 사액 받아 충의단에 비를 세웠는데 임란북천전격지를
조성하면서 태평루에서 충열사로 가는 길의 우측으로 단을 마련하고 근년에 세운 4기의 순국비
(박걸, 김종무, 권길, 충열사유허비)와 함께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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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순절한 판관(判官) 권길(權吉)(재임기간1591~1592) 사의비(死義碑, 총고181cm, 비신높이154cm, 폭67cm)는 창석(蒼石) 이준(李俊)이 선생이 찬(撰)하여 1698년 (숙종 24년)에 건립된 충렬사에 세었는데 충렬사가 훼철되면서 자산 아래로 1991년에 임란북천진적지를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비문의
내용은 마모로 인해 확인되지 않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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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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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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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삼문을 들어서면 충렬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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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공과 무명열사의 위패를 배향하고,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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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입구의 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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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敎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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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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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당시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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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놓은 활과 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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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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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銃筒)과 삼지창(三枝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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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무기류인 조총과 일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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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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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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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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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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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공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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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일기(西行日記)」는 김우굉(金宇宏 ; 1524∼1590)의 문집인『개암선생문집(開巖先生文集)』 권 3에 수록되어 있다.
을축년(1565년) 7월 3일에 을사사화의 주모자인 보우선사와 윤원형 탄핵을 두고 상소를 올리게 되는데 영남에서는 김우굉이 소두가 되어 23일 출발하여 30일에 도성에
도착하게 된다. 「서행일기」는 이때 각 지역에서 상경하여 8월 25일까지 연이은 상소를 올리는 과정의 일을 기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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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원잡기(筆苑雜記)는 조선 시대 서거정(徐居正)이 엮은 한문 수필집이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일화나 한담(閑談) 가운데 후세에 전할 만한 것을 추려 모은 책으로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일기 부잡록(日記 附雜錄)은 선조 25년(1592)부터 선조 30년(1597)까지 임진일기 상하와 남행록,진사록,문견록과 더불어 약 6년간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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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숭정 5년이면 임신년(1632년 壬申年)이다. * 숭정(崇禎)은 명나라 숭정제의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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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김일(金鎰)과 박걸(朴傑)은 生은 달라도 몰(沒)은 1592년으로 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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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朴호)와 김준신(金俊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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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무(金宗武)와 이경류(李慶流)는 모두 몰년(沒年)이 1592년 임진년으로 모두 똑같다.
문신(文臣) 무신(武臣)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오직 구국의 일념만으로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버린 8의사들.
요즘으로 치면 민관군(民官軍) 합동작전인 셈이다.
장풍파랑회유시 (長風破浪會有時)
직괘운범제창해 (直掛雲帆濟滄海)
‘거센 바람이 물결 가르는 그때가 오면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치리라’
-이백(李白)-
장마가 시작되었다.
일기는 찌뿌드드하여 장맛비가 왔다리 갔다리 해댄다.
산행후의 답사는 아무래도 기가 빠지는 법이라 산행전에 이렇게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나마 서둘렀다.
그리곤 다음 스케줄을 위하여 바삐 승차하여 노악산<☞ http://cafe.daum.net/phanmaum/FXy6/453>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