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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4. 반올림 보도자료/논평]
첨단전자산업 노동자의 백혈병, 림프종 등 산재인정 잇달아
- 여러 유해화학물질의 복합적, 지속적 노출로 인한 산업재해로 인정
- 4월에만 3명 인정. 2007년부터 현재까지 11년간 29명 산재인정(공단 15명, 법원 14명).
- 역학조사 및 산재입증 등 위해 많은 시간 소요돼. 산재인정 쉽게 되도록 제도 개선해야.
-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등 유해화학물질 정보 접근권 보장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지켜야
첨단 전자산업 노동자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등에 대해 공단과 법원에서 산재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 26일 법원의 조정권고 결정으로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故김기철 님의 백혈병이 산재인정 된 것에 이어서, 4월에만 3건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산재인정 된 3건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선 지난 4월 20일 근로복지공단은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을 거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여성노동자의 ‘비호지킨 림프종’이 벤젠 등 유해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산업재해라고 판정하였다.
19일에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엘지전자 평택공장의 데스크탑(CD-ROM) 등 전자부품 조립검사업무를 수행한 여성노동자에서 발생한 재생불량성빈혈에 대해 업무수행 중에 납과 접착제 등 취급하면서 환기시설이 미비한 가운데 여러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해당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 산재라고 판결하였다.
4월 9일에도 한화테크윈(구 삼성테크윈) 창원공장에서 카메라 렌즈코팅 및 반도체 리드프레임 도금업무를 수행하던 남성 노동자에서 발생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재해자가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신너에 불순물로 포함된 벤젠에 노출, 고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벤젠,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되어 해당 백혈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아 산업재해로 판정했다.
위 3건 모두 반도체 등 첨단 전자부품을 생산하다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한 백혈병 및 유사질환에 대한 산재인정인 것이다. 이로써 2007년부터 현재까지 11년간 반올림 등이 신청한 첨단산업분야 백혈병 등 희귀질환 산재신청 사건 중 29명(근로복지공단에서 15명, 법원에서 14명)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반올림에 제보된 약 400명의 피해제보, 그 중 95명 신청 건에 비해 아직 미비하고 더딘 인정이지만, 삼성의 적극적인 방해와 자료은폐, 노동자 입증책임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관련 피해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워 얻어낸 결실이기도 하다.
○ 역학조사 및 산재입증 위해 많은 시간 소요돼. 산재인정 쉽게 되도록 제도 개선해야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이 과거처럼 줄줄이 불승인하던 구태를 벗어나 첨단산업분야 희귀질환 산재판단에 관하여 대법원 판정기준을 고려해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시작한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산재입증책임이 노동자 측에 있는 점과 산재인정까지 최소 수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신속한 인정을 위한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산재신청에 따른 재해조사(역학조사)에만 최소 1~2년 이상이 걸리는데다가 이후 소송에까지 이르면 입증 공방으로 또다시 수년이 걸린다. 이는 신속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산재법의 기본 목적에 반한다.
심지어 앞서 산재인정 받은 경우와 완전히 동일한 케이스에 대해서도 또다시 역학조사를 한다고 1~2년을 지체하고 있다. 이미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받았던 백혈병 사망노동자 故황유미, 故이숙0 님과 같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똑같은 디퓨전 공정의 업무를 하였던 故김대0(74년생) 님이 또다시 같은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2015년에 사망하자 유족이 2016년 12월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바로 산재인정을 하지 않고 또다시 역학조사 기관에 조사를 넘겼다. 역학조사 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1년 6개월만인 오는 5월에서야 현장조사를 나간다고 한다. 앞선 사례를 인용해서 신속히 산재인정을 할 수 있음에도 1~2년을 허비함으로써 피해 노동자 가족에게는 고통을 가중하고 역학조사기관의 시간과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더욱이 그동안 역학조사는 업무관련성을 확인한다는 본연의 취지와 달리 삼성의 부실한 자료 제공이나 조사 지연에 속수무책이 아니었던가. 역학조사 등 관련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등 유해화학물질 정보접근권을 보장해 노동자 생명과 건강 지켜야
삼성전자처럼 유해물질 정보조차도 영업비밀이라 우기는 등 사업주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관련 행정청이 조사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는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2017. 8. 29. 선고, 2015두3867판결)에 입각하여 산재보험 판정제도를 당장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방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취급하고 노출되는 유해화학물질 정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회사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 고용노동부는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반도체 생산 및 수출을 통한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라는 측면이 반도체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보다 더 우선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은 국가와 기업의 이익 앞에 제물로 바쳐져야 한단 말인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빼앗으면서 얻을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의 이익은 누구의 이익이란 말인가.
최근 삼성 반도체,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거부 사태를 겪으면서 산재 입증을 위해 해당 자료를 정보공개 신청한 백혈병, 림프종 등 피해자와 유족들은 참담한 심정이다. 삼성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산재노동자와 나아가 지역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공개해야 한다’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2017누10874)을 존중하기는커녕 친삼성 언론들과 산자부를 동원하여 보고서가 공개되면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된다고 언론플레이에 열중하고 있다.
예컨대 산자부가 삼성의 요청대로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판단한 내용 중에는 측정위치도(삼성과 산자부의 표현으로는 ‘레이아웃’이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상 표현으로는 ‘측정위치도’이다)가 있는데, 이는 세부적인 도면이 아니라, 단지 조사자가 측정한 지점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임의로 그린 평면도에 불과하다. 네모 몇 개에 측정위치를 그려넣은 것을 가지고 국가핵심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자의적이다 못해 말문이 막힌다. 이미 대전고법 판결에서 측정위치도에 대하여 영업비밀이 될 수 없는 개략적 도면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으나 삼성과 산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대전고법 판결 이후 유족과 대리인이 받아본 2007~201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는 2010년 이후부터 측정위치도가 모두 없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고용노동부에 확인해본 결과, 2010년 이후 전산입력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업주와 측정기관이 보관하고 있는 원본 보고서와 달리, 노동부에 보관된 모든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에는 2010년부터 측정위치도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측정위치도가 빠진지도 모른 채 보고서를 보관, 관리해 온 고용노동부도 문제이지만, 산자부의 국가핵심기술 판단은 측정위치도가 포함된 삼성 보관 보고서에 대한 판단으로, 직업병 피해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로 받을 수 있는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것을 가지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용노동부가 국가기밀을 유출 한다’는 식의 선정적인 기사들과, 공공의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보다 삼성의 곤란함을 더 걱정하는 산자부, 삼성의 이해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일부 전문가들의 일방적인 삼성 편들기 앞에서, 산재입증을 위해 해당 보고서를 정보공개 신청했던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길을 잃었다.
산재보상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피해를 예방하고 누출이나 화재 등 만일의 사고 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와 주민 및 관련 기관에게 공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정보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기업의 이윤이나 국가경제의 발전에 중요한 핵심기술이라 해도 그것이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안전과 건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핵심기술을 담고 있지 않음이 이미 법원의 판결로 확인되지 않았던가. 삼성은 공익을 해치는 소모적인 논란을 부추기지 말고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 정부와 국회는 영업비밀 주장을 남용하는 기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권과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하라.
2018. 4. 24.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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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산재인정 판정 내용 요약
1)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노동자(85년생, 여) ‘비호지킨 림프종’ 산재인정.
- 2018. 4. 20.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반도체 조립공장인 온양공장 QA품질부서에서 6년 7개월간 근무한 김00님의 비호지킨 림프종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함.
- 김00님은 퇴직 후 3년 2개월만인 2012년 4월 비호지킨 림프종을 진단받고 2015. 3. 31. 산재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음.
-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산재인정 이유로, ①마스크 등 보호장구 착용이 미흡한 상태에서 고온작업(100도 내외)을 수행하였고, 근무했던 시기를 고려할 때 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등과 첨단산업분야에서 발생한 희귀질환의 업무관련성에 관한 대법원의 판정기준을 고려 하여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비호지킨 림프종 발병과 관련된 직업환경요인으로 벤젠, 산화에틸렌, 방사선, TCE 등이 알려져 있음)
2) (구)삼성테크윈 창원공장 렌즈코팅 및 반도체 도금업무 노동자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산재인정
- 2018. 4. 9.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산재인정 판정 (산재신청일: 2015. 12월)
- 판단근거 : ① 반도체 리드프레임 생산과정에서 불순물로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의 노출을 배제할 수 없고 최근의 농도는 낮다고 하더라도 과거 20여전 전에 사용했던 신나와 같은 세척제에는 벤젠 등의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렌즈 성형 시 에폭시가 고열에 의해 가열될 때 열분해산물이 발생할 수 있어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 ② 보호장비가 제대로 있지 않은 기간이 길었다는 점, ③ 역학조사가 현재의 노출만을 조사하고 있어 과거의 노출은 기존 연구결과에 의존해 볼 때 노출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④ 1988년 2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카메라렌즈 증착과 세척작업, 리드프레임 도금작업과 세척작업에서 작업부산물로 생성된 포름알데히드와 신나에 부산물로 포함된 벤젠에 노출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와 신청상병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3) 엘지전자 평택공장 노동자의 재생불량성빈혈 산재인정.
- 2018. 4. 19. 서울행정법원 판결(김주현 판사, 2016구단17552 요양불승인처분취소)
- 판결이유(요약) :
① 관련법리 :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과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두1066 판결 참조).
② 판단이유 : 원고가 엘지전자 평택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고온 납땜 및 접착제 등 취급 과정에서 환기시설이 미비한 가운데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여러 유해화학물질들이 개별적으로는 누적 노출량 자체가 많지 않았더라도 과로 및 스트레스 등이 결합하여 누적적으로 작용해 재생불량성빈혈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밖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에서 PCB분진에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포름알데히드, 디메틸포름아미드 등의 다른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노출량은 산정하지 아니하였고 원고가 CD-ROM용 PCB 납땜 업무를 할 때의 역한 냄새의 원인이 무엇인지, PCB분진의 구체적인 성분이나 노출수준이 어떠한지에 관하여도 구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