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토) 고린도전서 2:1-9 찬송 333장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지혜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원인이 된 세상 지혜를
비교 대조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세상 지혜를 내세우고 자랑하며 분쟁하는 것이
지극히 어리석은 일임을 지적한 어제 말씀(1:18-31)에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 자신이 고린도에서 전한 복음은
세상의 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 근거한 것이며
그 하나님의 지혜는 성령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는 ‘사람’ 즉 어떤 특정 지도자를 내세워(1:12절)
교회 분열을 획책하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1~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 증거에 임했던
전도자로서의 자신의 자세를 상기시키고 있다.
즉 바울은 고린도 전도에 임하면서 말과 지혜로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증거하기로 작정했었다.(1-2절)
당시 헬라인들은 철학적 지혜와 언변이 뛰어났으며
바울 역시 그러한 헬라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러한 지혜와 지식을 버리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하기로 한 것은
주(主)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며(빌3:8)
아덴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행 17:22-34)
바울은 아덴에서 능란한 화술과 철학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으나
소수의 무리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실패를 바탕으로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와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아가 고린도 전도에 임하는 바울의 심리 상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혹시라도 그의 세상적 지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리우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되
세상의 지혜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만을 온전히 의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러한 전도 자세야말로
세상적 지혜를 좇으며 자랑하기를 좋아했던 고린도인들로 하여금
구원이 세상적인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 곧 복음에 있음을 깨닫게 하여
겸손하게 복음을 의지하게 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4-5절)
그런데 바울이 이처럼 고린도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의 자세를 상기시키는 것은
그가 그토록 인간적인 언변과 사고를 경계하며
복음을 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본적 사고에 젖어 분쟁을 일으킨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6~9절에서는 바울이 지금까지 전한 복음이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말한다.
먼저 이 지혜는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인간의 지혜와는 비견될 수 없는 것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6절)
또한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미리 정하사 감추어 두신 것이며
죄악된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 섭리이다.(7절, 벧전1:18-20)
나아가 이 지혜를 유대의 관원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음을 범했다.(8-9절)
하나님의 지혜는 ‘역사성’과 ‘비밀성’을 갖고 있으며
결코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시(啓示)하셔야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이 강조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를 자칭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처럼 영적으로 순결하며 단순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계시하신다.(눅10:21)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함께
부활하여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삶이다.
나
그리고
공동체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빌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