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릉과 일본의 추억)
그는 얼마 전에 홍유릉(洪裕陵)에 갔다.
그가 옛날에 살았던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려 삼십 년 전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지공선사의 반열에 올랐는데, 30대의 젊은 시절로 유턴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이 실감난다.
삼십 년 전에 거기에서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는데, 1200만원(?) 정도였다.
지금 전세가 얼마인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억대로 보면 된다.
그러니까 대충 잡아서 10배 이상 오른 셈이다.
과거의 장소를 기억하려고 홍유릉(洪裕陵)에 갔다.
삼십 년 전에 처자식과 자주 놀러가던 곳이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에 걸어서 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제 입장료도 내지 않아도 된다. 지공선사라고.
들어가면서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세 번씩이나 변했을 세월이 흘렀으니까.
첫눈에 들어오는 홍유릉(洪裕陵) 석의물(石儀物)
엄격히 말하면 홍릉(洪陵) 석의물(石儀物)
무려 삼십 년이나 흘렀는데 옛날과 똑같다.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등등
제향공간 뒤에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무덤이 보였다.
‘명성왕후’를 생각하니 ‘나 가거든’ 노래가 떠올랐다.
동시에 ‘뮤지컬 명성왕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 일본 낭인들이 궐 안에 난입하고, 홍계훈은 이들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다.
상궁들은 민비의 피신을 간청하나 민비는 고종과 세자를 두고 갈수 없다며 거부한다. 낭인들은 민비의 처소까지 침입하여 민비의 소재를 밝히기를 거부하는 궁녀들을 참살한다. 마침내 민비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파란 만장한 일생을 마감한다. ))
홍릉(洪陵)에서 명성왕후의 무덤을 보고 홍유릉을 나오면서, 오래 전에 일본에 여행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해외여행을 많이 가지는 않았다.
그저 중국 몇 번,
일본 한 번,
뉴질랜드 한 번,
말레이시아 한 번.
그의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
어떤 친구는 일본을 안방 드나들 듯 자주 간다.
그래서 그는 그 친구에게 일본에 숨겨놓은 애인이 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피식 웃기만 하고 말았다.
어떤 친구는 일본에 갔다가 지진을 만나 혼났다고 한다.
지인의 소개로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지인의 말로는 경비가 안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인의 말을 믿고 여행경비가 들지 않는 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여 저녁에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제2일 아침에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하여 일본을 구경하고 저녁에 배를 타고 제3일 아침에 부산에 도착하는 패키지여행을 하였다.
이를테면 무박3일 여행을 한 셈이다.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하여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갔다. 어느 고궁(공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깨끗했다. 놀랬다.
그가 우리나라 공원이 약간 지저분하다는 것을 항상 보고 느낀 때문일까?
공원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는데, 조심스럽게 먹고 쓰레기 처리를 완벽하게 하였다.
일단 분위기가 깨끗하니까, 거기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그와 일행은 오후에 어떤 도시에 왔다.
도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정리가 잘 되어있다.
건물 벽을 보니, 도시는 오래된 것 같은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고, 뭔가 차분한 것 같았다.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뭔가 바삐 서두는 분위기에 젖어 살았는데.
저녁 무렵 여행을 마치고 부산 가는 배에 올랐다.
이렇게 짧은 일본 당일치기 여행이 끝나는구나.
그런데 지인이 공짜 여행이라고 했는데, 나는 돈을 다 지출했다.
그는 지인에게 왜 공짜 여행인가 물어 보았다.
지인은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까 점심 공짜로 사주었는데.’
그는 지인이 그냥 사준 것으로 알았는데. 지인이 자기 돈으로 밥을 사주긴 했지.
왜 지인이 밥을 공짜로 사주었을까?
여행 일정을 돌이켜 보았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들어갈 때, 짐을 좀 들어주었다.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 일본제 밥솥을 들고 나왔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는 세관통과를 위한 운반책 노릇을 했구나. 그리고 밥 한 끼 얻어먹었구나.
씁쓸했다.
지인은 그를 운반책으로 사용하였구나.
그는 그나마 마약 운반책으로 부력먹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았다.
일본 공짜 여행은 조금 즐거웠는데, 지인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일본 여행은 가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추억보다 지인에 대한 추억이 먹구름으로 머리에 남아 있어서.
홍유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올랐다.
진도가 떠올랐다.
진도대교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옛날에 진도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수영 쪽에서 명량(鳴梁)(울돌목)을 바라보았다.
‘명량(鳴梁)(울돌목)’
울돌목을 자세히 보니 조그마한 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후에 다시 보니 배가 낑낑 대고 있었다.
마치 짐을 몽땅 실은 화물차가 높다란 언덕을 향해 올라가면서 부대끼는 모습이었다.
결국 배는 멈추고 후진을 하고 있었다.
‘명량’ 영화가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그리고 12척의 배 뿐.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
일본군과 조선군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
조선의 이순신장군과 구루지마 왜군 수장의 최후의 일전.
조선의 이순신장군이 홈그라운드의 이점(명량의 물살 파악)을 안고 한판승.
‘명량’ 영화를 보는 순간 통쾌하였다.
마치 우리나라 축구가 3:0 으로 확실하게 일본 축구를 제압한 느낌이다.
이어서 그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는 중학교 시험에 응시했다. 옛날에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입학시험을 보았다.
중학교 전기 시험에 낙방했다.
할 수 없이 후기 시험에 응시하여 그 중학교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 중학교에서 3년간을 다녔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동일계 고등학교 자동진학!
참으로 어이가 없는 입시제도가 등장했다.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같은 교정(校庭)에서 6년간 생활했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학교 뒤편에 제단(祭壇)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은 유구무언(有口無言).
그도 유구무언(有口無言).
무엇일까?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그는 공부하는 학생의 본분을 잃지 않고, 그저 공부만 했다.
그가 그 중학교와 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서 팩트에 접근했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학교였다.
그렇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다닌 학교에서 그는 6년간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뒤편의 제단(祭壇)은 신사참배 제단(祭壇)?
신사참배(神社參拜)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 총독부는 신사의 건립을 계속 장려하여 1945년 6월까지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보다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이 세워졌다. 이것도 부족하여 각급학교 등에는 ‘호안덴[奉安殿]’을 세우고, 각 가정에는 ‘가미다나[神棚]’라는 가정 신단(神壇)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조선신궁 참배자만도 1940년에 약 215만 9000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000명에 이르렀다. ))
그가 6년간이나 다닌 학교가 일본인이 다닌 학교라니?
그렇구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니
학교 교문에서 학교 본관에 이르도록, 가로수처럼 심어진 나무가 벚꽃.
학교 뒷동산에 심어진 나무가 아카시아.
그는 약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인정을 하자니 약간 찜찜하고
인정을 안 하자니 뒤통수가 가렵고.
그렇구나!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어서 박주봉 배드민턴 일본 감독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배드민턴을 칠 때마다 박주봉 감독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오른다.
박주봉 감독은 왜 하필 일본 감독을 맡았을까?
그는 배드민턴을 칠 때 라켓의 헤드(머리 부분, 윗부분)을 볼 때마다 박주봉 감독의 얼굴이 떠오른다.
일본 감독만 아니면 되는데. 하필이면 일본 감독을 맡았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저 한일전만 하면 이를 악물고 이기려고 한다.
축구, 배구, 야구, 등등
그가 좋아하는 배드민턴도 일본에게 지면 더 화가 났다.
그런데 일본은 브라질 리우의 리우센트루 4관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덴마크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일본 배드민턴이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다
이 도약을 이끈 주역이 한국 스포츠팬도 잘 알고 있는 박주봉 감독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리스트로 한국에서는 배드민턴 영웅으로 불릴 정도니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박주봉에 대하여 사람들의 생각은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필이면 일본 감독이냐?’
어떤 사람은 ‘잘했다. 한국을 빛낸 인물이다.’
그도 박주봉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감독은 자기가 맡은 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직업의식이라고 할까’
‘그런데 하필이면 일본 감독을 맡았을까?’
그는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면서
일본에 대하여 이생각저생각을 하였다.
그렇구나!
일본은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이구나.
## 홍유릉을 보고 와서
사진1 – 홍유릉
사진2 – 진도대교
사진3 – 호안덴(신사참배)
사진4 – 배드민턴 라켓
[MV] 명성황후OST 나 가거든 – 조수미
https://www.youtube.com/watch?v=rEREXwJ2P9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