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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全永期 ]
분야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출처
디지털고령문화대전-전영기
정의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성산(星山). 시조는 전호익(全虎翼)이며, 7대조 전이갑(全以甲)은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太師)가 되었다. 파조이자 5대조 성산백(星山伯) 전순(全順)은 공양왕 대 헌납(獻納)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향리에 은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찰 전현노(全玄老)(주1)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참의 전전중(全殿中)이다. 할아버지는 학행으로 참봉에 제수된 전난이고, 참찬좌부승지를 증직 받았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억령(全億齡)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 군수(郡守) 박사림(朴士林)의 딸이며,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의성김씨이다.
활동사항
전영기(全永期)[1536~1618]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환으로 위중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여 반나절을 더 살게 하였다.
시묘가 끝난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암(松庵) 김면(金沔), 모계(茅溪) 문위(文緯),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학암(鶴巖) 박정번(朴廷璠)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후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동지들과 경학을 강구하고 후학을 지도하여 향리의 사우(士友)들이 추중하여 읍지의 인물 편에 기재되었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덕곡면 금시암(琴施庵) 선영(先塋)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통정대부 의금부도사에 증직되었으며, 후세에 사우(祠宇)를 건립하여 제향하였다.
참고문헌
『성산전씨세보(星山全氏世譜)』(성산전씨(백)파보편찬위원회, 1991)
『고령군지』(고령군지편찬위원회, 1996)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영기 [全永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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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조선왕조실록
문종 1년 신미(1451,경태 2)
8월27일 (임진)
01-08-27[04] 사헌부에서 박이창ㆍ한확ㆍ김맹 등을 노적한 곡식을 오손시킨 이유로 처벌하도록 청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평안도 삼화현(三和縣) 호도(虎島)에 노적(露積)하여 둔 쌀과 콩이 비가 셈으로 해서 그 절반이 오손(朽損)되었습니다. 전ㆍ후등(前後等)을 막론하고 해당 고을 내에 감사(監司) 박이창(朴以昌)은 〈중국에서〉 회환(回還)하기를 기다려서 마땅히 탄핵하여야 할 것이요, 감사 한확(韓確)과 수령관(首領官) 김맹(金孟)ㆍ김안민(金安民)과 차사원(差使員) 함종 현령(咸從縣令) 박삼(朴參), 용강 현령(龍崗縣令) 이한겸(李漢謙)ㆍ강효충(姜孝忠), 증산 현령(甑山縣令) 전현로(全玄老), 삼등 현령(三登縣令) 김사의(金思義)와 도전운사(都轉運使) 고득종(高得宗), 종사관(從事官) 문송수(文松壽) 등이 마음을 다하여 조치(措置)하고 간수(看守)하지 않아서 부패 오손하게 하였으니, 아울러 모두 부당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사유(赦宥) 전에 있었던 관계로 추론(追論)할 수 없으나, 지금의 감사 조서안(趙瑞安)은 삼화 현령(三和縣令)이 노적가리에 비가 센다는 사연을 가지고 재차 보고하였으나 조서안이 이를 즉시 계문(啓聞)하지 않았으니, 역시 부당합니다. 청컨대 성상께서 헤아려 결단(決斷)하소서. 또 휴손(虧損)된 미곡은 해당 관리 및 감고(監考) 등에게 그 수량에 따라서 추징(追徵)하게 하시어 후일을 경계토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에 명하여 이한겸ㆍ박삼ㆍ강효충ㆍ김사의ㆍ문송수는 파직(罷職)케 하고, 박이창ㆍ조서안ㆍ한확ㆍ고득종은 논하지 말라 하고, 전현로ㆍ김안민ㆍ김맹은 이미 파직되었으니 역시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
【원전】 6 집 426 면
【분류】 *재정-창고(倉庫) / *인사-관리(管理) / *교통-수운(水運)
[주D-001]노적(露積) : 곡식을 한데 쌓아 둠.
[주D-002]오손(朽損) : 더럽히고 손상함.
[주D-003]휴손(虧損) : 모자람.
[주D-004]감고(監考) : 조선조 때 궁가(宮家)가 각 지방 관청에서 전곡(錢穀)의 출납(出納)을 맡아 보던 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