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언젠가부터 영 안에 부담이 있던 로마서 1장 11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8절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칭찬으로 편지를 써내려가다가 11절에서 바울은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인데" 라고 로마를 방문하려고 하는 자신의 참 목적을 말합니다.
바울은 분명 로마서 1장 8절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말로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 가운데 무엇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견고케 할 수 있도록 바울이 전해주려 했던 하나님의 영적인 선물은 도데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의 결핍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특히 젊은이)들 안에 있는 결핍과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제가 이해하고 발견한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의 결핍은 바로 "성령의 옮겨 부음(성령의 침례)"이였습니다.
믿는 이가 복음을 듣고 거듭난 후 성령의 옮겨부음을 체험해야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시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옮겨부음(성령의 침례)을 중생과 동일시(고전 12:13)하여 간과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결과 두뇌로 이해하고 확신하는 이론적이고 객관적인 신앙에 멈춰 있습니다.
만일 거듭남과 성령의 침례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라면 거듭남과 성령의 침례에 있어 시간차가 있는 두 가지 사례(행 10:44~47, 19:1~7)의 답을 찾을 방도가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답을 성경에서 발견함-
오랫동안 거듭남과 성령의 침례를 동일시하는 것과 각기 다른 체험이라는 견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다가 로마서 1장 11절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게 된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8절부터 10절 :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들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린도 전서 12장 28절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로마서 12장 6절부터 8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는 신기(神奇)하고 영감(靈感)적인 것이며 이는 성령의 옮겨부음을 얻을 때 발현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의 은사는 신기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으로 주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며, 고린도 전서에 기록된 아홉 가지 일은 다 사람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영감(靈感)을 얻을 때 얻는 은사들입니다.
로마서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은혜를 나타내고 몸 안에 지체된 그들의 본분(本分)을 다할 수 있도록 은혜를 믿는이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 기록된 은사는 신기한 것이나 영감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생명에 속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가 중요시하는 것은 능력이고, 로마서가 중요시하는 것은 생명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결론 :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을 방문코저 하는 목적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의 옮겨부음(성령의 침례)을 일으켜 그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는 가시적이고 초자연적인 은사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을 체험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과 같이 성령의 옮겨부음을 통하여 체험하고 소유할 수 있는 풍성한 성령의 선물(계시를 회복함)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누가 바울과 같은 심정이 되어 오늘날 교회 안에 결핍된 성령의 계시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