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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뿐인 성주군에 들어서면
하늘마저 비닐 하우스에 빠진듯한 모습이다
얇은 비닐막속에 자라는 노란 참외란 녀석은 전국 백화점, 마트, 시장을 점령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도로 가장자리까지
점령하고 팔리니 지역 농산물로써 다른 지역의 농산물과 비교가 안되는 그야말로 대적불가의 농산물이다.
성주군은 남쪽으로는 고령군, 동쪽에는 낙동강 건너 대구, 북쪽에는 김천을 두고, 서남쪽에는 경남 합천땅인데 그 가운데 국립공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을 사이에 두고 합천하면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성주 하면 참외
팔만대장경과 ,참외 어느 게 더 유명한가! 질문하면 대부분 대장경은 몰라도 참외는 모두 다 안다고 하니
노랗게 질려버린다는 참외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이번 걸음은 전국 최고의 참외 단지가 자리하는 경북 성주읍으로 파고드는 이천 24km이며
개도 만원짜리는 물고 다닐지언정 흔해빠진 참외는 먹지 않는다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대구에서 성주군 도착
자가용은 성주 군청 앞 유료 주차장에 세워두고 택시로 자두나라 김천의 감천 유역과 참외나라 성주군 백천 유역을 가르는 지맥길인 별미령에 도착한다.
이짜로 가면 백마산을 거쳐 금오산으로 가는 길이요
저짜로 가면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흘러와 수도산에서 이어지는 빌무산이고 그 옆에 내가 가야 할 고당산이다.
짜잘한 거리의 2,2km 고당산까지 길이 좋아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올라오는 지맥길에는 누군가 대빗자루로 등산로를 싹 쓸어 놓은 듯했고
그 길을 고이 즈려 밟고 올라와 고당산에 도착한다.
잡목으로 인해 주위 조망은 없지만 그나마 하늘은 열려있어 하늘 한번 쳐다보며
오늘 갈길은 사방천지에 이신(神) 저신(神) 많아도 여기신께 비는게 당연한 도리쯤으로 알고
여기신(神)께 오늘 하산시 까지 안전을 기원드린다
지맥길은 이짜서 저짜로 이어지고
성주읍으로 가는 이천의 발원지는 이곳 삼거리에서 시작한다.
지나간 경로
음!~ 오늘도 쉽지 않을 계곡길이 기다리고
일단 한쪽발부터 내 땅인양 쓱~~~ 밀어 넣고
아직은 그렇게 울창하지 않은데
내려온 곳이 보이고
이천 발원지로 추정하며 물은 이곳에서 흘러 벽진면-성주읍-월항면 대산리까지 24km 흘러가
금오 지맥길인 활기재 인근의 사드봉 서남쪽에서 흘러온 백천과 만나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계곡길에 뜻하지 않게 만난 고목인데 기(氣)가 철철 넘쳐흐르고 위압감이 상당하다.
단풍나무 종류인가?
그게 뭐든 울퉁불퉁 기가 넘쳐 흐르는 모습에 주눅이 들어 합장하고 갈길 간다.
밀림 속에 빤스 한 장 걸쳐 입은 타잔이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정글이 되어 버린 계곡
어딜 가던 머리부터 들이밀고 진행하다 보면 배낭은 걸리고 자빠지고 꼬구라지고
물맛은 좀 더 내려와 보게 되는데
이 물이 흘러가며 성주 참외를 만드는 고마운 물이 된다.
무슨 덩굴나무가 이렇게 진을 치고 있는지 돌아갈 곳도 보이지 않고
이런 까칠한 녀석들과는 싸우기보다 피하는 게 상책이라...
계곡은 울창하지만 수량은 거의 없는 편이고
오래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
언제일까?
때는 무작정 몇백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조선 세조 계유정란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만고의 충신이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지켰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가 있었으나 근래에 한 분 더 추가되어
사칠신(死七臣)으로 추가되었던 김문기 선생이 포함되었는데
그분들의 후손이 살아남아 이곳 성주군 벽진면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본관이 김녕 김씨로 알려졌으나 후대에 들어 경주 김씨라고 하는데 어떤 문파가 맞는지 김녕 김씨와 경주 김씨 문파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그때는 숨죽이고 살았던 시기라 서로 아니라고 그리고 모른 척했지만 지금은 만고의 충신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집안사람이지...라며
밭으로 추정되는 곳도 있고
논으로 추정되는 곳도 있고
언제까지 사람이 모여 살았는지 나무 굵기로 봐서는 70년대 초까지 사람이 살았을 걸로 보인다.
주위에 뭔가 별다른것들이 있나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고 이름모를 산새소리만 정적을 깨트린다.
계곡으로는 수량은 아직도 얼마되지 않고
그 흔한 나도 폭포, 비 와야 폭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몇 번 구부러 지고 자빠졌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고
초여름의 계곡을 빠져나오니 단정하게 이발한 감나무골의 자두나무가 반기는데 열매는 어디가고 잎사귀만 달려있다
5톤짜리 물통인데
우리 인간은 1년 평균 720리터
10년이면 7천200리터
죽을 때까지 저런 물통 8개에서 9개 정도 마시고 염라대왕님 면전(面前)으로 끌려간다
그렇게 오래 살고 싶어 했던 당대의 숱한 왕들과 불로초를 구하고자 세상 끝끼지 돌아다녀야 했던
진시황 역시 저런 물통 10개는 끝내 비우지 못했으니 너무 억울해할 것 도 없는 세상이다
밭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내려오면 첫 집이 나타나는데 바로 축사가 있는 곳
살기 좋은 곳은 모두 소, 돼지, 닭을 키우는 세상이니...
세상은 돌고 돌아가는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니 금계가 노랗게 질린 듯 반기고
소가 오줌을 싸든 말든 물은 그런대로 깨끗하고
일명 공구리폭포다
계곡의 물소리는 언제나 옳다.
전국 어느 계곡을 가던 계곡의 물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분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비오는날 시골집 처마에 물 떨어지는 소리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대자연이 내는 소리 중 가장 시원한 소리일 듯
할매분들께서 아침 운동을 나오셨다가 나이 많은 뽕나무 아래에서 오디를 줍고 계셨는데 그냥 갈 수 없어
까맣게 익는 녀석들만 골라서 몇 알 주워 먹고 할매분들께서 뽕나무의 오디가 많이 주워 드시게 힘껏 흔들어 주고
내걸음 간다
이쯤에서 범상치 않은 마을 주민을 만나 단종 복위로 죽음을 당한 충북 옥천 출신의 김문기 선생과 그 후손이 살았다는 계곡에 대해서 듣는다.
이 분은 언젠가 저하고 한번 더 만나야 할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그게 언제일지
달창(達倉) 마을 앞에서
오디 줍던 할매분들은 달창 마을의 어르신이 이셨으며 마을에 재미난 전설이 있나 여쭈어보니 그런 게 없다고 하신다
달창이란 유래는 조선시대 때 국세 현물(쌀, 보리 농산물) 보관 창고가 있어 달창이란 유래가 된듯하다.
달창 마을 앞에서 본 이천풍경
봉학저수지를 지나며
멀리 용암면의 칠봉산이나 대항산 방향으로
저수지 둑으로 외래종인 금계가 토종식물을 모두 몰아내고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일부러 심은건지 그렇지 않은지 몰라도
너를 보면 언제나 노랗게 질린다.
너의 길은 외래종 꽃길이고
저짜까지 꽃길이라..
나이 드신 마을 주민을 만나 재미난 이야기 한 자락 듣고 가는디
"언제던가 요즘처럼 논에 물을 가두고 써레질을 하고 난 다음 모내기를 할 시기에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에 논에 물고를 보러 가는데 멀리서 마을 주민이 논둑에 앉아 흙탕물을 마시고 있더란다.
그래서 멀리서 -야!~야!~ 니거서 뭐 하니! -하니
"예!~ 아제요 여있는 친구하고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 합니더" ...
-친구가 어디있노- 하니
"여기 앞에 있잔은 겨"
노인장께서 아무리 봐도 친구는 없고 검정 고무신에 흙탕물을 떠서 마시더란다.
야야!~ 고만 정신 차리라 하니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 어제저녁 무렵에 논에서 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도깨비한테 홀려 밤새도록
도깨비 하고 막걸리를 마셨는데 술잔은 고무신이요 막걸리는 흙탕물이라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천을 건너
오늘은 노랗게 질릴일만 남은 듯
돈이 얼마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계시는 농부님께 인사를 드리니
참외 하나 드시고 가라며 노랗게 익은것 세 개를 주셨고
"이건 땀이요 노력이 댓가인데 제가 이걸 받아도 되나요" 하니
괜찮다며 가는 길에 맛나게 드시란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며 배꼽인사 드리고
한입 베어 물어보니 우리집 인근의 대형 마트나 시장표와는 확연하게 다른맛이다.
참외하나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내려오는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커피 한잔하고 가라며 집으로 오란다.
주위로는 대부분 참외 농사를 지으시는데 이분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수입은 참외랑 별반 다르지 않고 하신다.
비날하우스는 포도 농장이며 오는 7월이면 수확을 하신단다
커피 한잔 들고 한 손에는 먹다만 참외 반쪽을 들고 내려오는데
아주머니께서 성주로 가면 차를 태워 주시겠다며 다시 한번 친절을 베푸신다.
정중히 사양하고
하천은 그린의 융단길
녹색의 긴머리결에 곱게 가르마 하고 가는이를 반긴다.
뒤돌아 보니 지맥길인 빌무산이 지척이고
난쟁이 코스가 벌써 꽃을 피웠고
니!~가을에는 우얄라꼬 이러노
좋은 사람이 온다꼬
그래서 꽃길인가
외래종이던 토종이던 꽃은 언제나 마음속에 갑이다.
가야산
정견모주,석화성,대장경
비가 오려나 정상을 보여 주지않고 산인양 구름인양 저러고 있다
백두에서 벗어난 가장 멋진 산이라는 북녘의 묘향과 칠보
그리고 남한의 낙동강을 품은 청량과 해인사를 품은 가야
가야는 언제나 멋진산이건만 그렇다고 자주 찾는산은 아니다.
때로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좋고
지나는길에 아!~하 가야산이지...
비엣남에서 온 참외 하우스 노동자님들
월급은 200이며 두 분은 모두 비엣남에서 결혼을 해서 각각 아들, 딸 둘씩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큰 희망을 가지고 참외 농사를 짓는다고
한국의 하천길은 언제나 멋지고 아름답다
넓은 하천에 형형색색의 물풀과 들꽃들이 피어있고
고운 모래 톱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어떨 때는 혼자보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하는데
지금이 딱 그럴 때다
칠보산이나 대황산 방향으로
그러고 보니 오늘 하천길에 쓰레기를 본적이 없다.
사칠신(死七臣) 김문기 선생의 후손이 살았다는 참나무골에서 시작되는 이천
물도 깨끗 하천길도 깨끗하니 이정도면 역대급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국에서 가장 더러운곳이 영광의 불갑천이고
쓰레기 하나 없던 창녕의 화왕의 눈물이라는 계성천
역대급의 맑음을 자랑하던 영양의 장파천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한강의 동강과 낙동강 청량산 구간
아름다운 진경산수의 12폭포를 간직한 내연산 광천
사람을 먹여 살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들녘의 만경과 동진
그리고 이곳 성주의 이천은 물도 깨끗하고 쓰레기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어디가서든 자랑할만 하다하겠다
가야와 독용산 자락이 고개를 내밀며 훗날 다시 찾아오라 하고
그 옛살 중국에 사셨던 노자선생께서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이르는 말인데
그분의 물 사상은 어디서 왔을까
그분이 보지 못했던 물에 대해서 보려고 길을 찾은지 수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물에 대해서 모르는것 투성이다.
물은 무한 용기를 지녔고
가장 여리고 약한 존재지만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도 하고
세상만물에 바라는건 없으나 모든걸 주는게 물이다.
하늘 빛이나 비닐하우스 빛이나 서로가 닮아있고
고려의 안동장군 이미숭 장군의 전설을 간직한 미숭산과 북두산 그리고 가야로 이어지는 산길이 병풍처럼 보이고
하천의 물은 모래와 함께 맑게 흐른다.
안동과 더불어 양반땅이라는 성주읍으로 들어와
성밖숲에서
천연 기념물 성주 성밖숲 왕버들 나무 군락지
행여나 성주를 찾으신다면 꼭 성밖숲을 찾아보시기 바라고
성밖숲은 대략 300-50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모두 52그루가 성주군민으로 부터 철저한 보호를 받는다.
나무는 조선시대 성주읍성 서문 밖에 만들어진 인공 수림으로써 비보림수(裨補林藪)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된 수해 방비림이기도 하다.
성밖숲에서 가장 큰 500년된 왕버들 나무
성박숲 앞에는 수중보를 설치해서 그런지 물이 많이 더러웠는데
왜 물을 가둬 더럽게 쓰는지
때로는 물이 많아서 아름답게 보일수도 있지만
물이 적어도 맑은 모래와 어우러진 물이 더 아름답게 보일때도 있을텐데
길게 이어지는 하천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인근의 동방 사지7층 석탑을 만나러 간다.
아주 오래전에 성주읍 동쪽에 동방사(東方寺)가 있었는데 1592년도 임진왜란때 불에 타고 없어진 절로써
성주의 기운(氣運)이 이천따라 빠지는것을 막고자 세운 지기탑(地氣塔)이라 전한다.
텅빈 절터에 하늘인양, 땅인양 외로이 서있는 탑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말하는것 처럼 들린다.
이천이 백천과 만나는곳에서
백천은 사드봉에서 흘러와 초전면 그리고 월항면과 선남면을 지나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멀리 백마산과 사드봉이 자리하는곳에서 백천이 흘러와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이곳에서 이천을 마무리하지만 이천은 깨끗하고 마을 주민분들의 쓰레기 안버리기 생활 실천으로
아주 깨끗한 모습이었다.
인심좋고 깨끗한 양반고을 성주읍과 벽진면 주민분들께 감사 드리며
성주분들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펼쳐진 초록의 융단 중앙에.. 자로 잰 듯한 가르마..ㅋㅋㅋ
그 사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ㅋ
노랗게 질린 참외라니.. 노랗게 질린 금계라니..
방장님 덕에 이제 성주는 노란색으로 기억 될듯한데..
늘 방구석 일열에서 대한민국 구석구석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방장님의 글..
오늘도 덕분에 ㅋㅋㅋ 합니다!!🤣
얼라리, 김문기 선생은 지금 내가 사는 동네 사람인디유. 묘도 여기 있고.
그치만 그짜서도 한때 살긴 사셨나 보네유. ^^
그건 그라코, 하천 원류찾기는 원제까지 하시는규?
이러다 물귀신 되시것슈. 암튼 대단한 걸음입니다. 욕보셨슈~~.
제가 사는 근처에 있는 비석을 다시 찾아가보니 묘비가 아니라 현창비. 그것도 옛날 게 아니고 현대에 와서 세운것. 그 비석 옆에 있는 묘도 김문기 본인의 것이 아니고 그분 후대의 묘. 제가 제대로 확인도 않고 말했네요.
높고 깊은산보다 낮은 산들이
잡목이 더 많고 덩굴식물들은
더더욱 많은것 같습니다.
당연히 계곡으로 내려가면
나뭇가지에 걸리고, 덩굴식물이
배낭이나 옷가지를 붙잡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노란 참외가 이뻐보이고
맑은 하천이 깨긋해 보이는건
성주지역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든길 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고향 성주를 왕림하셨구랴~
그림속에 타임스템프를 좀 찍어주시라
비실이도 가끔씩 찾아 볼수 있게시리
바가지 쪽박나지않게 조심 하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