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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지 3 성막의 중심인 분향단을 체험함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눅 18:1,3) 12.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행 12:12)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출 40:34) |
성막 안으로 가기 위한 번제단과 물두멍을 체험함
성막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노정을 계시한다. 성막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번제단과 물두멍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번제단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헌신하는 것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물두멍을 통하여 빛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날마다 죄를 정결케 씻음을 체험하기를 기뻐하신다.
1. 번제단: 헌신- 재가 됨 우리는 회막문을 통해서 바깥뜰 안으로 들어간 후 번제단에 도착한다. 여기서 희생 제물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자르고 단 위에 불살라 재로 태워진다 (레 1:5-9). 번제단에서 우리는 헌신을 체험한다. 번제단의 체험이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희생 제물이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누가 “주여 나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 나를 태우시어 재가 되게 하십시요”라고 말하겠는가? 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미래와 삶의 소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다 (갈2:20). 누구나 교회에서 기둥이 되거나 주님의 종이 되어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주님을 따르고 헌금도 내지만 기꺼이 재로 태워지려고 하지 않는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따를 때 우리가 먼저 재가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마 16:24-25). 출애굽기 29장 2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그것을(요제)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두 드리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완전히 태워진다면 우리는 다만 “주여 나는 나의 일생을 당신께 드립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2. 물두멍: 하나님의 빛으로 계시를 봄 우리는 번제단을 거친 후 물두멍을 지난다. 물두멍은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인 놋으로 만들어졌다 (출 38:8). 거울은 반사하여 비추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빛가운데 생활하는 것을 예표하고 거울로 상대방에게 빛을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빛에 의해서이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구원자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빛을 통하여 우리는 죄를 깨닫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흘리신 그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실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행 2:36-38, 히 9:14, 요일 1:7-9). 이러한 깨달음은 하나님의 빛으로 인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없다면 누구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하거나 거역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구원자이신 주 예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빛이 그들을 비출 때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당신이 나의 구원자가 되시어 나를 구원 하소서. 주님 나는 당신이 진실로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죄인에게 빛을 비춘 결과이다. 빛은 죄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죄를 자복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갖게 한다 (롬 5:1, 8-10). 3. 물두멍: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바울은 디도서 3장 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여기서의 중생은 마태복음 19장 28절에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란 단어와 동일한 헬라어 단어이다. 중생은 어떤 것의 한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말한다. 중생의 씻음은 거듭남으로 시작해서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과정으로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계속된다. 즉 중생의 씻음은 우리의 옛사람에 속한 옛 본성의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 버리며,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새로운 것-새사람의 거룩한 본질-을 우리의 존재 안으로 공급한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우리의 온 생애를 통해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한다. 우리는 매일 일상 생활에서 세상의 걱정과 실패와 자신의 연약함과 낙심과 좌절에 봉착한다. 때때로 우리의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이러한 어두움이 몰려올 때 우리는 성령의 탄식으로 주님을 부르며 죄를 자복하며 기도해야 한다 (롬 8:26). 놀랍게도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와 같은 빛 비춤과 씻음과 새로움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유지하도록 우리는 매일 물두멍이신 주님 앞에 가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이 강건하게 되고 새롭게 될 필요가 있다. 분향단은 성막의 체험에 있어서 중심이다 우리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해서 하나님을 따르기 위한 초기 필수적인 체험을 하지만 최종적으로 성막인 성소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야 성막의 중심 체험으로 완결된다. 1. 헌신은 과정이며 종착지이 아니다 그러면 초기 우리 거듭남의 체험을 예로 들어보자. 거듭난 것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거듭남은 단지 거듭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거듭남의 체험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야 한다 (마 6:33).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일 목적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거듭난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헌신을 한다. 헌신은 매우 귀한 체험이다. 만약 우리가 분투하고 발버둥 친 후에 우리 자신을 드린다면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바깥뜰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서 성소와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온전히 조성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이 매번 우리에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다. 어떤 젊은 형제가 거듭난 후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고 눈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놀라운 변화이다. 하지만 그가 수십년이 지나 봉사와 진리면에서 많이 발전했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거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만일 당신이 초기에 그를 만났다면 그가 주님을 열정적으로 섬기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후 그는 하나님과 달콤하고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왜 그렇게 변했는가? 그가 헌신하지 않고 시간과 물질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반대로 그는 성실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잘 섬긴다. 하지만 주님과 거리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는 아마도 헌신이 그의 목적지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헌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을 통하여 성소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진실로 헌신한 사람은 결코 헌신의 체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헌신은 과정이요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2. 분향단은 성막에서 중심되는 체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후 계속해서 합당하게 생명이 자라야 한다. 헌신 없이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고 성소 안에 있는 높고 하늘에 속한 가치를 누릴 수가 없다. 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의 떡과 빛을 앙망하는 사람은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해서 헌신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서 진설대 (임재의 떡상)에 있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의 공급을 누리기 시작한다 (요 6:35). 그 때 우리는 생명 공급의 목적인가를 물어야 한다. 생명 공급은 우리가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기 위해서 강화되고 공급받는 것이다 (요 8:12). 우리가 생명의 떡을 누리면 누릴 수록 생명의 빛이신 금등대가 우리 가운데 더욱 빛을 비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금등대에서 분향단을 체험하도록 인도하신다 (마 26:36-42, 요 17:1-26). 3. 분향단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함이다 분향단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한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고전 3:9). 즉 하나님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함께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우리도 역시 원한다. 우리는 주님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임할 수 있도록 시대를 바꾸고 하나님의 간증을 일으키는 자들을 얻도록 주님의 길을 여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마 6:10).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자유롭게 수행하시어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 지도록 기도로 동역해야 한다. 분향단에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경륜과 움직이심과 일과 운행하심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열매들을 맺게 된다. 기도로 산출된 열매들은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 간증, 복음, 진리와 생명의성장등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자유롭게 운행하신다. 분향단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4. 분향단은 자매들의 분깃이다 (눅 18:1, 3, 행 12:12) 분향단의 중요성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며 주님의 생각을 생각하며 주님이 일하시고 수고하시는 것들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자매들이 분향단에서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것은 매우 기쁜 것이다. 교회에서 자매들의 기능 발휘는 주로 애찬을 준비하거나 아이들 또는 성도들의 필요를 돌본다. 또한 자매들도 신언을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지키는 것도 매우 필요하다 (고전 14:1, 31, 35). 교회의 행정을 결정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장로나 인도하는 형제의 기능에 비해서 자매들의 위치가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자매들은 기도의 기능면에 있어서 더 높은 것이다. 형제들이 장로가 되어 교회의 행정을 돌보지만 자매들은 기도를 한다. 형제들이 설교를 하지만 자매들은 기도를 한다. 형제들이 많은 일에 책임을 맡을지 모르지만 자매들은 기도를 한다. 자매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움직이심과 하나님의 간증과 하나님의 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자매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기도는 자매들을 위한 특별한 은혜이다. 자매들은 분향단의 기도를 가질 수 있다. 자매들은 하나님의 뜻과 교회와 복음 전파와 하나님의 왕국과 교회의 간증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한 무리의 자매들로 인하여 교회는 사탄의 수많은 맹렬한 공격을 모두 이겨낼 것이다. 이들로 인하여 남편들도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믿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가장 달콤한 간증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매들은 분향단에서 기도의 분깃을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보아야 한다. 자매들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자매들과 함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자매는 집회를 인도하거나 어떤 행사를 주관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다만 기도를 하는 것이다. 자매들은 온 교회가 부흥될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자매들의 기도가 부족할 때 여러가지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생기게 된다. |
영광스러운 성장의 과정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다”(출 40:34). 결국 우리의 성장의 과정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는 먼저 바깥뜰에 들어가서 번제단 과 물두멍을 체험한다. 그리고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진설대와 금등대와 분향단을 거친다. 우리는 정욕을 인하여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예할 뿐 아니라 (벧후 1:4),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골 1:13).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되고 연결되고 합병의 실제를 성막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결코 한 발자국 먼저 나아가면 안된다. 우리가 많이 자랐다고 번제단과 물두멍과 진설대와 금등대와 분향단의 체험을 중단할 수 없다. 이 길에서 우리가 더욱 자라고 체험할수록 우리의 성장의 과정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번제단에서부터 물두멍, 진설대, 금등대, 분향단을 거쳐 언약궤에 이를 때까지 영광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인도하고 계신다. 즉 바깥뜰에서 성소를 지나 지성소까지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 분향단이 지성소에 놓임
우리는 “주님 저는 계시와 체험에 있어서 많이 알지 못할 지라도 분향단에 관한 나의 체험만큼은 많이 자라게 도와 주소서. 주여 어느 날 나의 분향단의 체험이 성소에서 지성소까지 자랄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더하시어 분향단에 대한 우리의 체험이 지성소까지 자라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