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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남양주 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반윤희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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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文壇- 祥雲 반윤희 (수필가/시인/서양화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회원/전 중랑 작가회 대표, 수필집 다수)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깊은 만남을 갖는 사람은 불과 10여 명도 안 되는 것 같다.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의 극소수의 사람과 깊은 만남을 우리는 가질 따름이다.
그 밖의 만남은 모두 옅은 만남이요, 일시적인 만남이요, 피상적인 만남이요, 만나나 마나 한 만남들이다. 10여 명의 사람과 우리는 깊은 실존적인 만남을 가질 따름이다. 우리는 그 10여 명의 사람을 神이 내게 주신 은혜요, 선물이요, 운명으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극진하게 대해야 한다. 그것은 불교적 표현을 하면 전생(前生)의 한량없이 깊은 인연이다.
길가에서 옷자락 한 번 스치고, 얼굴을 잠깐 보고 지나쳐 버리는 무연(無緣)의 중생들이 많다. 그들은 나와 아무 깊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남남이다. 그러나 그런 하잘것없는 인연도 전생에 5백 번 만난 사람이라야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교사상은 인연법이고, 기독교 사상은 관계법이다.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의 밥을 먹으면서 일생 동안 같이 살아가는 부모, 자식, 아내, 형제, 자매는 아마 전생에서 수억 번 만난 깊은 인연의 결과요, 산물일 것이다. 우리는 전생의 기억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은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우리는 10여 명의 인간과의 깊은 만남 이외에 고인(古人)들과의 두터운 정신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은 주로 독서를 통해 이뤄진다. 독서는 옛사람과의 깊은 정신적 만남이다
나는 고인을 볼 수 없다. 또 고인도 나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고인을 만난다.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원효(元曉)도 만나고, 퇴계(退溪)도 만나고, 만해(萬海)도 만난다. 또, 공자(孔子)의 음성도 듣고, 노자(老子)의 말도 듣고, 도연명(陶淵明)과 상봉(相逢) 하고 손자(孫子)와 조우(遭遇) 한다.
또 예수를 만나고, 석가를 대하고, 플라톤에 접하고, 괴테와 해후한다.
만일 책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분들과 정신적 만남을 가질 수가 없다. 시공을 초월하여 동서고금의 위인들과 깊은 정신적 만남을 갖는 길은 오직 책을 통해서뿐이다.
그러므로 책처럼 위대한 것이 없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고 옛 시인은 읊었다.
나라가 망해도 산하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나라가 무너져도 책은 남는다. 책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요, 말씀의 집이요, 사상의 창고요, 얼의 결정체(結晶體)다.
누구나 고인(古人) 들과 깊은 정신적 만남을 갖는다. 그것도 인생의 큰 인연이다. 서로 인연이 깊었기 때문에 그분을 좋아하고 그 어른의 말에 감명을 받는 것이다.
인생은 너와 나의 깊은 만남이다. 만남처럼 소중한 것이 없고, 만남처럼 뜻깊은 것이 없다. 만남이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나는 사십 대 초반에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부처를 만났고, 십칠 년 동안 금강경을 매일같이 쓰고 읽으면서 철학에 심취해 작가가 되었으며, 오십칠 세에 남편 병간호하면서 에덴요양병원에서 예수를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욥기’를 ‘시편’을 세 번 이상 썼으며, ‘성경 구약 신약을 세 번째 쓰고 있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순종하며’ 97년 7월에 결혼시킨 아들 며느리와 이십칠 년째 울고 웃으며 잘 살고 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고, 부처는 자식이 원수라고 한다. 자식 때문에 애 간장 녹이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지. 억만 겁의 원수가, 원수, 갚으려고 태어나는 것이 자식이요. 수 만생의 원수가 부부로 만나는 거라고 한다. 원수를 사랑해야만 업을 벗을 수 있는 것이 불교다. 원수를 사랑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기독교다.
불교에선 자식이 없는 자는, 업이 없는 자라고 하고, 기독교에선 죄 없는 자 자식 없는 자라고 하니, 일맥상통이지 않는가 한다. 우주 만상에 오로지 나라는 존재가 하나밖에 없으며, 내세가 있다 한들, 천국에 간다 한 들, 지금 이 순간, 이생만 하리오! 이왕에 온 세상 연극 한바탕 멋들어지게 하고 가야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제일이란다. 하시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며, 일가친척들에게 늘 베풀고 사셨으며, 평생 관세음보살을 주문하면서 사시다가 97세에 주무시다가 배꽃 같은 얼굴로 영면하셨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내 어머니이지만, 평생 가르쳐 주신 교훈을 의지하고 살면서, 내 어머니처럼 살다가 떠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을 가질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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